컵은 물이 새지 않아야 하고, 의자는 앉기 편해야 하며, 비상구 표시는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사물의 기능은 명확할수록 환영받는다. 하지만 예술은 이러한 기능의 정반대에 위치한다. 불필요한 장식, 난해한 색감, 비뚤어진 형태, 설명할 수 없는 취향까지도 전부 예술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바로 그 비효율과 불필요함, 쓸모없음 속에서 자신만의 감각과 자유를 발견해 왔다.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는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잊고 있었던 질문을 다시 꺼내는 책이다.
세계 어느 문화권을 살펴봐도 예술 활동을 하지 않는 인간 공동체는 단 하나도 없다. 마치 언어처럼, 예술도 인간의 중요한 본질적 특징 중 하나다. 왜 인간은 생존과 직접적인 상관도 없는 일에 끊임없이 시간을 쓰는가? 왜 우리는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며 울고 웃고,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귀걸이를 고르고, 밈을 만들고 공유하는가?
이 책은 예술을 미술관 속 작품이나 소수 전문가의 영역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대신 티셔츠의 문구, SNS 밈, 농담, 물건의 장식, 각자의 몸짓, 헤어스타일, 향기처럼 우리의 일상 전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선언한다.
예술은 인간이 감정을 만들고, 타인과 연결되며, 지금의 이 현실 너머 가능성을 상상하는 방식이라고. 이 책의 핵심은 예술을 ‘감정의 기술’로 바라본다는 데 있다. 우리는 흔히 감정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로 인간은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본능적인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
사랑과 우정, 인간관계, 정치적 선택, 삶의 방향 같은 결정적인 판단 역시 이성보다 우선되는 감정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예술은 바로 그 감정을 대리 경험하게 만드는 장치다. 공포영화 속 한니발 렉터의 등장에 숨이 멎고, 소설 속 인물의 사랑 이야기가 내 일처럼 설레고, 오래된 음악 한 곡에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술은 현실의 위험 없이 감정을 연습하게 만드는 안전한 시뮬레이터다. 소설을 읽으면 감옥 생활이 얼마나 끔찍한지, 깊은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경험할 수 있지만, 그 대가를 실제로 견뎌내지 않아도 된다.
예술은 결국 인간 사이의 대화다. 때로는 타인과의 대화고, 때로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고, 서로를 이해하며, 혼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세계를 함께 만들어간다. 자신이 무엇을 정말로 좋아하는지를 발견하고 나면, 온갖 광고와 알고리즘이 이것을 좋아하라고 외치는 혼란한 현재의 세상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은 무거운 예술 이론서를 지향하지 않는다.
대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익숙한 사례들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놀이하듯 설명한다. 컵, 의자, 귀걸이, 헤어스타일, 지하철역 등 일상 속 구체적인 사례들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예술이라는 거대 담론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예술이라는 단어가 막연하기만 했던 독자에게는 가장 친절한 입문서가, 다양한 예술 장르를 향유해 온 독자에게는 예술의 의미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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