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신작 <상자 속의 양> 으로 돌아왔다. <어느 가족>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괴물> 등을 통해 가족과 상실, 인간관계의 본질을 탐구해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기술이 아니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가족과 그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는 존재의 의미, 그리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괴물> 그렇게> 어느> 상자>
<상자 속의 양> 은 사고로 아들을 잃은 켄스케 부부가 죽은 아들과 똑같은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집에 들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AI 기술이 일상으로 스며든 시대에 인간을 닮은 존재가 가족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묻는다. 상자>
미디어캐슬은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NEW 본사에서 <상자 속의 양> 국내 개봉을 기념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이 작품은 SF라기보다 죽은 사람이 돌아온 상황을 다룬 가족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AI가 제시하는 정답보다 인간만이 지닌 상상력과 불완전한 관계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상자>
다음은 고레에다 감독과의 일문일답.
Q. 전작 <괴물> 이후 약 3년 만의 신작이다. 상실한 가족을 AI를 통해 다시 마주하게 된다는 이야기의 시작은 무엇이었나.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 요즘 들어 AI가 인간의 기억과 감정의 영역까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다만 이 영화를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만들었다기보다는 개인적인 감정에서 출발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죽은 사람을 재현하는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경험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만약 지금 눈앞에 다시 나타난다면 전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돌아가신 분을 실제로 되살릴 수는 없지만 ‘지금 내 앞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이번 영화에서 그 감정을 그리고 싶었다.
Q. 영화 속 휴머노이드 아이들이 ‘로봇은 못하고 인간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한 쿠와키 리무 배우의 생각과 감독이 바라보는 인간다움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 이번 영화 <상자 속의 양> 에서는 인간이 마지막으로 지니게 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인간다움이란 두 가지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어떤 과정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고 또 하나는 상상력이다. 상자>
특히 상상력은 무언가를 보면서 전혀 다른 것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인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레몬나무와 올리브나무를 보면서 캐릭터뿐만 아니라 관객 역시 단순히 나무가 아닌 그것이 지닌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상상력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싶다.
Q.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과 매우 닮은 존재를 볼 때 어느 순간 불쾌감과 혐오감을 느낀다는 ‘불쾌한 골짜기’라는 표현이 있다. 영화 초반 휴머노이드 카케루를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의 꺼림칙함이 인상적이었는데. ‘카케루’의 외형은 어떻게 설계했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 기본적으로는 인간 그 자체처럼 보이도록 하고 싶었다. 다만 메이크업을 통해 피부 질감을 조금 매트하게 만들어 기계적인 느낌을 주려 했다. 무엇보다 부모가 카케루를 만났을 때 ‘혹시 영혼이 있는 게 아닐까’라고 착각할 정도의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인간과 닮아 있는 존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굉장히 많이 닮아 있을수록 닮지 않은 부분이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불쾌한 골짜기’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죽은 카케루가 휴머노이드 카케루와 닮은 점이 너무 많기 때문에 휴머노이드가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였을 때 부부와 주변 사람들은 더 큰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눈앞에 있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감각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후반부에서 그것을 ‘눈앞에는 없지만 곁에 있다’는 지점으로 도달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Q. 감독님은 그동안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주요 화두로 삼아왔다.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이번 작품에서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 작품을 준비하면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를 염두에 두고 제작하지는 않았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맞는 것 같다. 이 영화 속 부모는 각각 후회를 안고 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사과하고 싶어 하고 어머니는 살아 있을 때 했던 말을 후회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돌아온 뒤에도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인간은 그렇게 간단히 성장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부모도 사람도 후회를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과정을 한 페이지씩 넘겨가듯 보여주고자 했다. 그렇게>
Q. 그동안의 작품들에서 항상 아역 배우의 존재감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작품 역시 아역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잘 드러났는데. 이들의 연기를 잘 끌어내는 비결은 무엇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 기다려주는 것이다. 아역 배우들을 절대로 재촉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집중력을 잃을 때는 졸리거나 배고프거나 하는 식으로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래서 무리하게 촬영을 진행하지 않고 아이를 기다려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촬영 때도 쿠와키 리무 배우가 촬영 도중 잠드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 스태프가 “지금 리무는 충전 중입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모두가 기다려줬다. 그런 환경이 아역 배우들에게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Q. AI를 주요 소재로 다룬 작품인데, 제작 과정에서 AI를 활용한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또한 감독님은 평소 AI를 사용하는 편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해외에 나갈 때 번역 기능 정도만 쓴다. 다만 AI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면서 AI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각본을 챗GPT에게 읽혀봤다.
챗GPT는 처음에는 훌륭한 각본이라고 칭찬하면서 ‘인물상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보면 어떨까’라는 식의 여러 조언을 해주더라. 그런데 그 조언은 매우 옳았지만 재미가 없었다. 계속 옳은 이야기만 했다. AI의 충고를 모두 반영하면 아주 올바른 각본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모두 비슷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자신의 경험과 편견, 때로는 일그러진 시선까지 담아서 해주는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챗GPT와의 관계는 이 영화로 끝내려고 한다. 앞으로도 인간들의 힘을 모아 필름 영화를 만들고 싶다.
Q. 지난 작품 <괴물> 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숲과 나무가 주요한 상징적 공간으로 등장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숲’을 어떻게 활용하고자 했나.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 숲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 숲이 만들어내는 ‘지성’의 형태였다. 영화 속 숲의 집은 휴머노이드와 식물이 연결돼 하나의 집을 이루는 형태로 그려지는데 사실 인간은 그곳에 들어가 살기 어려울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지구상에서 인간이 두 번째 자리에 놓이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영화의 설정과 겹쳐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모를 뛰어넘고 무언가 더 큰 존재가 되는 모습을 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켄스케 부부의 앞날은 쓸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동시에 그것은 생성형 AI와 인간이 함께 살아갈 때 AI가 인간을 넘어서는 미래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숲의 집과 나무는 인간에게 위협적인 이미지로도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영화는 인간 아이와 휴머노이드 아이가 함께 숲으로 향하는 결말로 나아간다. 인간과 휴머노이드를 분리하지 않는 결말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 만약 숲에 가는 존재를 모두 휴머노이드로만 했다면 인간과 휴머노이드를 갈라놓는 이야기가 됐을 것 같다. 그런 식의 결말은 피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 숲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 기계와 나무가 모두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그리고 싶었다. 주인공 부부는 결국 그곳에서 살지 못하고 돌아오지만 누군가는 그곳에 남아 공존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질적인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이 영화의 희망이다. 단순히 인간과 휴머노이드를 나누고 서로 다른 세계에 머무르게 하는 방식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인간 아이와 휴머노이드 아이가 함께 숲으로 향하는 결말을 택한 것이다.
Q. 그렇다면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SF를 가미한 가족 드라마인가, 가족 드라마를 바탕에 둔 SF 영화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 누군가 내 영화에는 항상 죽은 사람과 아이가 등장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시선과 아이의 시선이 등장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 <상자 속의 양> 은 죽은 사람과 아이가 하나가 된 영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휴머노이드가 죽은 사람이자 아이인 존재다. 그리고 그 존재가 가족 안으로 들어오고 그것을 통해 가족이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다. 나는 이 작품을 죽은 사람이 돌아온 상황을 다룬 가족 드라마로 봐주시길 바란다. 결국 이 영화는 AI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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