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공간에서 고인과 재난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확산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역사적 비극과 사회적 참사를 희화화하거나 특정 인물을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콘텐츠가 잇따라 논란이 되자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일베 금지법'으로 불리는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법안 발의 직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면서 온라인 혐오 표현 규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이훈기 의원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반복적으로 유통되는 조롱·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 사회적 사건의 희생자를 대상으로 한 모욕·비하 표현을 불법정보로 규정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방치한 플랫폼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정명령이나 폐쇄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또 관련 게시물을 반복적으로 게시한 이용자에 대해서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는 처벌 규정도 포함됐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혐오 표현 문제를 언급하며 관련 대책 마련 필요성을 강조한 이후 추진된 후속 입법으로 해석하고 있다.
법안 발의 소식이 알려지자 온라인 공간에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찬성 측은 현행 제도가 사실상 사후 처벌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혐오 콘텐츠의 확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플랫폼의 자율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운영자와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반대 측은 혐오 표현의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정치 풍자나 사회 비판, 유머 콘텐츠까지 규제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으며 결국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혐오 표현과 풍자를 누가 구분할 것이냐", "정권이나 정치 성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논쟁의 배경에는 최근 온라인과 기업 홍보물 등을 둘러싸고 반복적으로 불거진 역사적 비극 희화화 및 특정 인물 비하 논란이 지목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달 스타벅스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인 18일 진행한 '탱크데이' 이벤트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행사명과 홍보 문구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무력 진압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역사 인식과 내부 검수 체계를 둘러싼 논란으로 번졌다.
무신사 역시 과거 광고 문구가 재조명되며 비판의 중심에 섰다. 무신사는 2019년 공개한 속건성 양말 광고에서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문구를 사용했다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 발표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았다. 논란이 재확산되자 무신사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담당 직원을 징계하는 한편 박종철기념사업회를 찾아 사과하기도 했다.
프로야구 구단 롯데 자이언츠 역시 지난달 공식 유튜브 영상 자막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제의 영상은 롯데 자이언츠 공식 유튜브 채널 '자이언츠 TV'에 게시된 경기 비하인드 콘텐츠였다.
해당 영상에서는 선수들이 동료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는 장면과 함께 검은 배경 위에 빨간 글씨로 '무한 박수'라는 자막이 삽입됐다. 그러나 자막 위치가 노진혁 선수의 성(姓)인 '노'와 겹쳐지면서 일부 시청자들에게는 '노무한 박수'처럼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해당 표현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돼 왔다는 점에서 논란이 확산됐다. 특히 상대 팀이 광주를 연고로 하는 KIA 타이거즈였고 노진혁 선수 역시 광주 출신이라는 점이 함께 거론되면서 특정 지역 비하 의도까지 제기됐다. 롯데 자이언츠는 즉각 사과 입장을 밝혔지만 표현의 의도와 사회적 책임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온라인상 혐오 표현과 조롱 문화에 대한 우려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한국의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호주에서 온 피터(Peter·25)는 "누군가의 죽음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게시물이 공유되는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며 "어떤 인물은 누군가에게 존경받는 존재일 수도 있는데 이를 희화화하고 놀림거리로 소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호주에서도 최근 몇 년간 자살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죽음이나 비극적인 사건을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문화는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헝가리에서 온 릴라(Lilla·26) 역시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헝가리 사람들도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하지만 특정 인물의 이름 자체를 조롱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비극적인 사건을 유머 소재처럼 소비하지는 않는다"며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역시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온라인 혐오 표현과 악의적 조롱 콘텐츠 확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독일은 2018년 '소셜네트워크 집행법(NetzDG)'을 시행하며 혐오 표현 규제에 나섰다. 해당 법은 페이스북, X(옛 트위터), 유튜브 등 대형 플랫폼 사업자를 대상으로 명백한 불법 혐오 표현이 신고될 경우 24시간 이내 삭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영국 역시 2023년 '온라인 안전법(Online Safety Act)'을 제정해 아동 보호와 혐오·유해 콘텐츠 규제를 강화했다. 해당 법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이용자 보호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캐나다 또한 온라인 혐오 표현과 폭력 선동 콘텐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상 혐오 표현 확산을 막기 위한 일정 수준의 규제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특정 커뮤니티를 직접 겨냥하는 방식보다는 보다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현선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 자체는 사회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필요하지만 특정 커뮤니티나 집단을 직접적으로 지목하는 방식은 법 적용 범위와 정당성 측면에서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특정 집단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혐오 표현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지만 타인의 존엄성과 사회적 피해를 방치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는 아니다"며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어느 지점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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