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3년 만에 기소 의견 송치…산업기술 수사 장기화 우려
엄정하고 신속한 사법 판단 남아…국가사업 리스크 관리 과제도
기술보호·사업안정성 모두 잡아야 할 시점
경기남부경찰청과 대한전선 당진사업장 / 연합뉴스 ⓒ포인트경제CG
[포인트경제] 기술은 기업의 자산을 넘어 국가 경쟁력이다. 수십 년의 연구개발과 막대한 투자가 축적된 산업기술은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전략 자산이다. 기술유출 사건이 단순한 민·형사 분쟁이 아니라 산업정책과 경제안보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경찰이 최근 대한전선과 관계자들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수년간 이어진 해저케이블 기술유출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경기남부경찰청은 대한전선 관계자와 설계·설비업체 관계자 등 총 13명과 법인 3곳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경찰은 동일 건축사무소와 설비업체가 LS전선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시공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를 대한전선 공장 설계에 활용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찰의 기소 의견이 곧 최종 결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전선은 의혹을 부인해 왔고, 최종 판단은 검찰과 사법부의 몫으로 남아 있다.
다만 이번 사안은 특정 기업의 유불리를 넘어 산업기술 보호 체계와 국가 전략사업의 리스크 관리 수준을 되돌아보게 한다.
△기술유출 수사, 엄정함만큼 중요한 것은 신속성
대한전선 기술유출 의혹 사건이 던지는 첫 번째 화두는 산업기술 수사의 신속성이다.
산업기술 유출 사건은 일반 형사사건보다 높은 전문성과 복잡성을 요구한다. 디지털 포렌식과 기술 분석, 국가핵심기술 여부 판단, 영업비밀 침해 검증 등 복합적인 절차가 뒤따른다.
그러나 전문성이 과도한 수사 장기화의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한국경찰학회 연구에 따르면 산업기술 유출 사건의 평균 수사 기간은 약 7개월이다. 반면 대한전선 사건은 2023년 의혹 제기 이후 약 3년 만에 경찰 단계 결론이 나왔다.
그 사이 업계에는 각종 추측과 해석이 난무했다. 기업들은 중장기 사업 전략을 세우기 어려웠고 시장은 불확실성을 떠안았다.
기술유출 수사는 엄정해야 한다. 동시에 신속해야 한다. 결론이 늦어질수록 피해는 특정 기업을 넘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다. 혐의가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하고, 혐의가 없다면 기업 역시 불필요한 의혹에서 신속히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진=뉴시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공장 설계 자료와 생산 노하우가 법적으로 보호받는 영업비밀 또는 산업기술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검찰은 기술적·법률적 쟁점을 다시 검토하게 된다.
해저케이블 산업은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대표 분야다. 만약 기술유출이 사실이라면 산업 질서와 기술 보호 체계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검찰은 산업계가 납득할 수 있는 객관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결론을 신속하게 내려야 한다. 수사의 엄정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모두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가 전략사업 된 HVDC…사업 안정성 확보가 관건
이번 사건이 단순 기업 분쟁을 넘어서는 이유는 시점(時点)에 있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현재 11조원 규모의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호남권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으로 연결하는 국가 전략사업이다. 향후 국내 전력망 구조를 바꿀 핵심 인프라로 평가받는다. HVDC(초고압직류송전) 해저케이블은 그 중심에 있다.
일각에서는 공급망 다변화와 경쟁 촉진을 위해 복수 기업이 참여하는 공동 발주 또는 공동 계약 방식을 주장한다. 그러나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결정은 또 다른 논란과 리스크를 낳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기업의 이해관계가 아니다. 기술유출 의혹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엄정하게 이뤄지되, 그 과정에서 국가 전략사업이 불필요한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사업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정부와 발주기관은 향후 사법적 판단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국가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계약 구조와 공급망, 대체 조달 체계를 선제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국가기간망 사업은 특정 기업의 법적 분쟁이나 경영상 변수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국가 전략사업 관리의 기본 원칙이다.
정부는 산업기술 수사가 장기간 표류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국가 전략사업이 특정 기업의 법적 분쟁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3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이 더 이상의 불확실성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이제는 검찰의 엄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동시에 정부는 국가 전략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보호와 사업안정성, 두 과제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Copyright ⓒ 포인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