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만족도 증가에도 지도전문의 번아웃·진료 연속성 저하 과제
병원 신규 채용 난항으로 기존 인력 의존·가짜 휴게시간 등 편법도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전공의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행된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이 전공의의 피로를 줄이는 데는 기여했으나, 의료 현장의 혁신 대신 지도전문의의 희생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 치료의 흐름이 자주 끊기는 진료 연속성 저하 문제와 의사들의 수련 시간 부족에 따른 숙련도 저하 우려도 함께 고개를 들었다.
대한의학회는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 의뢰를 받아 이런 내용을 담은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 평가 연구 보고서(연구책임자 연세의대 박용범)'를 발간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2025년 하반기부터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 80시간에서 72시간으로 줄이고 연속 근무를 24시간으로 제한한 시범사업의 중간 평가다. 조사에는 서면조사에 응한 38개 병원과 전공의 209명, 지도전문의 149명, 간호사 117명이 참여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근무시간 단축으로 잡무가 줄고 휴식 시간이 늘어나면서 삶의 질이 크게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설문조사에서 시범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를 5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전공의들은 3.76점이라는 비교적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당직 후 적극적인 휴식 보장이 전공의들의 신체적 피로를 낮추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데 기여한 실질적 성과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는 수련 시스템의 근본적인 혁신이 아니라 병원에 남은 지도전문의들의 추가적인 근무와 업무 부담 전이로 버텨온 것으로 밝혀졌다.
대다수 병원은 전공의의 근무 단축으로 발생한 진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의사를 채용하기보다 기존 교수의 직접 당직 투입과 기존 인력의 근무 조정에 의존했다. 실제로 의사 채용 공고를 반복해도 지원자가 없는 구인난과 민간 병원의 재정적 부담이 겹치면서 구조적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로 인해 전공의와 지도전문의 간의 만족도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지도전문의들의 시범사업 전반 만족도는 2.28점에 그쳤으며, 자기 삶의 질 영향은 2.01점, 피로도 및 번아웃 완화 정도는 1.87점으로 매우 부정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전공의가 퇴근한 자리에 교수가 직접 들어가 환자 설명, 동의서 작성, 야간 당직 업무를 수행하면서 교수의 피로도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분석한다.
임상 현장에서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새로운 리스크도 부상했다. 전공의들의 교대 근무가 잦아지고 24시간 근무 후 의무적으로 퇴근하면서 의사 간 환자 인수인계 빈도가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환자 상태나 치료 경과의 정보가 누락될 위험이 커졌고 환자를 지속해서 관찰하기 어려워지는 진료 연속성 단절 현상이 나타났다. 환자 인수인계 과정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전공의는 2.56점으로 낮게 인지했지만, 환자의 최종 책임을 지는 지도전문의는 3.72점으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정산 기록과 실제 근무 현장 사이의 괴리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도전문의의 83.2%는 전산 입력 시간과 실제 근무가 일치한다고 보았지만, 전공의의 45%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공의의 약 67%는 병원이 근무시간 규정을 지키기 위해 가짜 휴게시간을 기록하게 하거나 전산상으로는 퇴근한 뒤 남아서 잔업을 하도록 유도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고 인식했다.
의사들의 실력을 키우는 수련 교육의 질 저하 우려도 깊어졌다. 근무시간 축소로 인해 전공의들이 수술실에 참가하거나 다양한 환자 사례를 접할 수 있는 절대적 수련 시간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의 임상 역량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지도전문의들은 4.38점의 높은 점수로 깊은 위기감을 표현했다.
보고서는 주 48시간 근무를 준수하는 유럽 주요국의 경우 수련 기간을 5∼8년으로 길게 설정해 교육의 질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은 수련 기간이 고정된 상태에서 시간만 줄여 미숙한 전문의를 양산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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