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김주현 기자] “아프니까 나약해지더라고요. 그때 한 친구가 ‘네가 제일 행복했을 때는 언제야?’ 물어봐서 생각해 보니 태어난 뒤의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더라고요. 그런데 자연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삶이구나’ 싶었어요. 아플 때 버티는 건 결국 제 자신이잖아요. 그게 외로웠어요. 그때 무계획으로 지하철을 타고 남한산성에 올라가 딱 풍경을 바라보는데 창피하게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를 그렇게 제일 위로해 준 건 자연이었어요. 번아웃이 오며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멀리 가지 않아도 보이는 아파트 화단 정원, 바람 불어 흔들리는 나무, 한강을 따라 걷는 그런 것들이 정말 선물 같았죠. 위로가 많이 돼요. 자연도 생로병사가 있듯 인간도 그렇잖아요? 자연과 인간은 같아요.”
최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문화매거진과 마주한 최경님 작가의 눈이 반짝였다. 지난달 20일부터 25일까지 갤러리 인사아트에서 개인전 ‘초록의 저편’을 마무리하고 소회를 밝히는 이번 인터뷰에서 작가의 ‘자연 예찬론’은 끊이질 않았다.
‘초록의 저편’은 최경님 작가의 추상회화를 처음 선보이는 뜻깊은 자리였다. 구상 작업에 집중해 오던 그는 “평소 정치나 사회문제를 건드리기도 했었는데 아프고 나니 정작 ‘타인에게만 관심이 있었지, 내가 나에겐 관심이 없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떻게 보면 가장 솔직한 작업이 될 수 있으니 그렇게 해야겠다 싶었다. 추상이란 덜어내는 데 집중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결국 압축이지 않나. 공기의 흐름, 흔들리는 바람과 감정, 자연 현상 같은 걸 추상으로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추상 작품으로 하는 첫 전시라 더욱 의미가 있었죠. 전시하는 동안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는 내내 상주를 했는데, 저에게 보여주시는 관심이나 질문이 너무 행복했어요. 그렇게 있으니 전시 끝나니까 공허함이 심하게 밀려오더라고요. 허전했죠.”
이번 전시를 위해 쏟아부은 시간만 장장 근 2년이다. 그 사이 몸이 아파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되려 “아프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번아웃이 왔을 때도 놓지 못한 것들을, 아프다는 이유로 ‘놓아버릴 수 있는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란다.
“나 이제 자유롭다, 작업만 할 수 있겠다… 그게 너무 기뻤어요. 작은 작업실을 얻었는데 (돈을 못 버니까) 안 가면 죄책감이 생기더라고요. 근데 원동력이 됐어요. 가서 놀더라도 작업실에 가자. 매일 작업에 임했죠.”
가족들의 열렬한 지지를 업고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연을 관찰한 최경님 작가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자아낸다. 자칫 난해할 수 있는 추상 작품이 대다수 관객의 마음을 위로했던 것도, 작가의 솔직담백하면서도 깊은 성찰이 담긴 덕분일 터.
“기억에 남는 관객분이 있어요. 어떤 분이 그림 앞을 못 떠나시고 손을 모으고 계시더라고요. 그분이 저에게 ‘전 몸이 아픈 가정폭력 생존자예요. 그런데 작가님 작품을 보고 위로를 받았어요’라고 하셨거든요. 그 피드백이 참 힘이 났어요.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완성된 건 아니지만 ‘나, 괜찮게 했구나…’”
그 관객을 떠올리며 잠시 숨을 고른 작가는 “그런 피드백이 좋은 의미로 무겁게 느껴진다”면서 “다음 전시 땐 지금보단 약간 밝고 명랑한 느낌도 보여드리고 싶다. 공감과 위로를 계속 가져가되 집에 돌아갔을 때 ‘밝고 행복한 그림’으로 기억되는 그런 작품도 해보고 싶다. 그것 또한 다른 방식의 위로가 되지 않겠느냐”며 미소 지었다.
“추상은 보는 사람 마음대로 해석하는 게 묘미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와플 기계 사서 정작 와플은 안 굽고 다른 거 굽듯 (웃음) 제가 어떤 작품을 내더라도 보시는 분들의 평가는 자유로운 거죠. 그래서 제가 지금 하는 걸 계속 하되 조금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평소 자연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작가는 산책하며 본 풍경을 촬영하며 해답을 얻는다. 이번 전시명을 비롯해 제법 서정적인 작품 제목은 시집, 문학 서적에서 차용을 한다. 의미 있는 제목을 지으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메시지를 조금이라도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다.
“작가는 그림만 그리면 되는 게 아니라 마케팅도 해야 하잖아요. 저는 그거에 약하더라고요. 제가 그림을 배우던 때만 해도 선생님께서 ‘그림 그리는 놈이 돈 밝히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그게 각인된 것 같아요. (웃음) ‘초록은 붉다’라는 제목처럼 초록의 보색이 빨간색이지만, 또 초록색 잎사귀가 빨갛게 익었다고 해서 변질된 건 아니듯 순수하면서도 어느 정도 상업적인 면도 있어야 하는데 어렵네요. 하하.”
작품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건 결국 그림”이라고 다시 운을 뗀 그는 “마티스도 힘이 없을 때 종이를 오려 작품을 하지 않았나. 저 역시 손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작품을 하고 싶다”며 “최근 유영국 화백의 그림을 봤는데 너무 멋있더라. 저도 ‘세월이 지나도 최경님 작가의 작품은 정말 멋있다’란 말을 듣고 싶다. 작가니까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최경님은, 조금 괜찮은 것 같아요. (웃음) 열심히 하니까 발전해 가는 모습이 스스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맥락 있게 발전해 나가는 것 같아요. 다음 개인전은 1년 반 후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그때도 완전히 신작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작가 약력]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26 초록의 저편(Beyond the Green), 갤러리 인사아트
2024 흔적(vestige), 갤러리THE FLUX 선정작가
[단체전]
2026 조형아트서울 (PLAS 2026)
2026 태도에 대하여, 스페이스 MOSOON
2026 성신 서양화회, 아지트 미술관
2025 클래시쿠스, 갤러리THE ARTE 청담
2025 SAAF, 마루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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