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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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요이

노블레스 2026-06-04 10:00:00 신고

요이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 작가다. 영상,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물과 몸의 감각, 그리고 체화된 지식과 생태적 기억이 어떻게 순환하고 변형되는지 따라간다. 하이드로페미니즘적 사유에 기반해 물을 추상적 개념이나 이론적 틀로 한정하지 않고 몸과 환경의 기억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매개로 바라본다. 2023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개인전 〈내가 헤엄치는 이유〉를 열었으며, 제25회 송은미술대상에 진출했고, 베니스 비엔날레 2026 본전시에 초청됐다.

20대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죠. 뉴욕에서 어떤 일을 했나요?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다니다가 20대 초반 미국 여행을 떠나 눌러앉게 됐어요. 언어를 넘어 시각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에 매력을 느껴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 편입해 시각디자인을 공부했고, 작가로서 활동은 예일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시각예술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환경 덕분에 영상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당시 작업의 주된 화두는 뭐였어요? 뉴욕에 살기 전까지 제가 아시아인이고 여성이라는 사실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겉모습만으로 저를 규정하는 시선을 자주 느끼면서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됐습니다. 당시 제 화두는 정체성과 번아웃이었어요. 아시아 여성으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해야 했고, 비자 유지를 위해 디자인 관련 일과 강의, 개인 작업을 병행했거든요. 사회의 속도에 맞춰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는 압박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 제주에 와 작업은 큰 변곡점을 맞이했죠. 제주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요? 번아웃이 심해지던 2020년 강의차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팬데믹으로 뉴욕이 봉쇄되면서 돌아가지 못하게 됐죠.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사회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고 제 속도를 찾도록 도와준 것 같아요. 제주에 와서도 한동안은 분주한 생활이 이어졌지만 헤엄치는 법을 배우며 몸의 리듬을 되찾고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갔어요. 그렇게 잠시 머물려던 계획이 어느덧 5년째 이어지고 있네요.

내가 헤엄치는 이유, 2채널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34분 36초, 영상 스틸, 2023. Courtesy of the Artist.
숨 오케스트라 Act 1-2, 단채널 영상, 5.1채널 사운드, 10분 10초, 영상 스틸, 2024. Courtesy of the Artist.

하도리에서 지내며 ‘물, 여성, 제주’를 주제로 예술 교육과 참여형 워크숍을 진행하고 바닷속에서 느낀 감각과 이웃 해녀들과의 관계를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드로잉 등으로 펼쳐냈어요. 특히 ‘우리 모두가 물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몸, 환경, 젠더를 함께 바라보는 ‘하이드로페미니즘’을 중요한 토대로 삼아왔죠.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배경이 궁금해요. 제주에서 헤엄치는 법을 터득하며 느낀 건 확실히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과 ‘몸으로 이해하는 지식’은 다르다는 거였어요. 몸으로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감각이 분명히 존재하더라고요. 내 몸속에 물이 있고 나 역시 물의 일부라는 사실을 체감하고 이를 언어로 풀어내고자 공부하는 과정에서 하이드로페미니즘을 다시 접했어요. 제게 하이드로페미니즘은 일종의 ‘리마인더’예요. 내 몸을 돌보는 일과 바다, 환경을 돌보는 일이 연결돼 있음을 상기시켜주죠. 개인을 넘어 우리를 둘러싼 전체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제 글쓰기와 말하기, 듣는 태도로 연결됐습니다. 그렇게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아가 바다와 생태,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어요. 제주에서 처음 헤엄치는 법을 배운 경험을 토대로 ‘내가 헤엄치는 이유’를 만들었어요. 바다를 마주하며 느낀 두려움과 경이, 과거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상처와 혼란, 물속에서 느낀 평화와 고독, 사라져가는 해녀 공동체에 대한 아쉬움 등을 편지 형식으로 고백하는 영상이죠. 물을 좋아하지만 헤엄은 못쳤어요. 어릴 때 중이염이 심했고, 성인이 되어 배우려 시도했지만 이상하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주에 와서 매일 바다를 마주하다 보니 몸의 긴장이 풀렸는지 어느 날 갑자기 물에 뜨기 시작하는 거예요. 물속에서 느끼는 감각에 완전히 매료됐어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죠. 왜 그동안 못했나 싶어요. 학창 시절 겪은 심한 경쟁,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축적된 탓일 수도 있죠. 사람은 원래 양수 속에서 자랐기에 신생아는 저절로 물에 뜬다고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잊고 있던 감각을 되찾은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영상 중간중간 작가님이 헤엄치는 모습과 해녀들의 일상이 한 화면에 나란히 재생돼요. 그 일상을 어떻게 담았나 궁금하더라고요. 해녀들과는 어떻게 가까워졌나요? 처음부터 작업을 목적으로 다가간 건 아니고, 이웃이라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보통 물질을 끝내고 나면 할 일이 많아요. 인근에 혼자 사는 할머니들을 종종 도와드리면 고맙다며 음식을 나눠주곤 하셨죠. 그날그날 안부를 묻고 하루를 나누며 관계를 이어갔어요. 헤엄치는 법을 배운 후엔 해녀들과 물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했어요. 당시 제게 물이 마냥 평온하고 신기한 곳이었다면 해녀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었으니까요. 그 차이에 대한 호기심으로 해녀학교도 다녔어요. 이웃 해녀들이 멘토처럼 물질을 가르쳐주는 실습 시간을 통해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전수받았죠. 인상적인 건 물속 지형을 읽는 감각이었어요. 해녀들 각자의 머릿속에 그만의 ‘지도’가 있고, 조수나 날씨에 따라 움직이는 방식이 모두 몸에 축적돼 있더라고요. 만날 약속을 일반적 시간이 아닌 ‘물때’로 잡는 것, 물속 ‘날씨’에 대한 고유한 표현도 알게 됐어요. 이를 제 나름대로 이해한 방식을 드로잉 작업으로 남기기도 했고요.
이웃 해녀들과 물질 연습을 하며 받은 인상에서 ‘숨 오케스트라’가 시작됐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해녀 실습을 마치고 물질을 하던 때였어요. 출발은 다 같이 하지만 각자 정해진 구역에서 혼자 하는데,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고 어둠뿐인 거예요.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오면서 몸이 굳기 시작했어요. 바로 그때 어디선가 숨비소리가 들려왔어요. 어찌나 또렷하던지 듣자마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전에는 숨비소리의 존재를 머리로만 알았는데 그제야 비로소 그 호흡의 무게가 와 닿았죠. 오래 참은 숨이 힘들게 터져 나오는 소리, 회복하려는 그 몸짓, 거기서 느껴지는 어떤 삶의 애환.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경험은 그 자체로 큰 위로이자 돌봄이었어요. 그날 이후 같은 정적도 다르게 느껴졌어요. 어떤 날엔 평안하게, 또 어떤 날엔 해녀들이 물속에서 치열하게 일하는 분투의 순간으로 다가왔죠.

요이 작가.

여러 사람의 호흡으로 이루어진 퍼포먼스를 구상한 이유는요? ‘숨 오케스트라’는 앞서 말한 정적에 대한 작업으로, 고요한 물속 그 전후의 호흡을 생각하며 숨소리로만 구성된 스코어를 떠올렸어요. 흥미로운 건 작업이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에요. 구전을 통해 전수받은 방식과 감각은 애당초 완벽히 재현될 수 없기에 퍼포먼스를 택한 것이기도 해요.
보존하고 싶은 마음과 함부로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경계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중요하겠어요. ‘내가 제주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질문이 늘 따라다녀요. 시간이 지나 해녀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언제 카메라를 들어도 되는지, 함께 나눈 이야기를 바깥으로 꺼내도 되는지 훨씬 조심스러워졌어요. ‘숨 오케스트라’에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해녀의 이미지를 배제한 것도 쉽게 이미지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제주도민이지만 토박이는 아니잖아요. 제 위치를 인지한 상태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 스스로 되묻고 있어요. 각자의 위치에서만 가능한 시선과 이야기가 있다 믿고 그 경계를 의식하며 작업을 이어가려고 해요.
작업이 해녀나 제주에만 한정돼 보이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확장 가능성은 늘 염두에 두고 있어요. 사실 저는 이곳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졌다기보다 여전히 외지인에 가까워요. 그런데 외부에서는 ‘제주 작가’로 규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있죠. 제 작업의 이유는 해녀나 제주라는 특정 대상에만 있지 않아요. 오히려 그 안에서 발견한 더 근본적인 질문들에 있어요. 이 복잡한 세상에서 어떻게 작은 위안과 희망을 찾을지 혹은 무엇을 기억하게 할지에 대한 이야기예요.

말하는 물, 쓰는 몸, 설치 전경, 2024–연작.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rever Gallery.

베니스 비엔날레 2026 본전시 초대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어요? ‘In Minor Keys(단조로)’라는 주제가 어떻게 다가왔는지요. 사실 제주를 떠나야 하나 고민하던 때가 있었어요. 해녀들과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부인으로서 경계를 느꼈고 ‘나만 이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거든요. 그때 초대 소식을 듣고 좀 더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느꼈어요. 제 작업은 보이지 않지만 들리는 것, 들리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 정적 속 다양한 감각을 말하는데 단조라는 가장자리의 소리, 즉 귀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작은 감각에 대한 주제와 연결된다고 느꼈죠. 지금처럼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묻게 되는 시기에는 꼭 거창한 선언만이 답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행간이나 시적인 방식으로 전해지는 감각이나 작은 제스처가 중요할 수 있어요. 베니스에서는 새로운 퍼포머들과 함께하는 ‘숨 오케스트라’ 사운드 설치를 중심으로 신작 영상과 드로잉을 함께 전시해요. 마지막 주에는 퍼포먼스가 예정돼 있어요.
예술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작업을 지속하게 한 동력에 대해 묻고 싶어요. ‘사라져도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커요. 해녀 문화는 종래엔 사라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다음 세대가 이어가려는 노력을 한다 해도요. 해녀들에게 물질은 생존을 위한 노동이었지만 지금 세대에겐 아니잖아요. 제주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끝을 보면서 시작하는 일이 슬픔이나 무게감으로 다가올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희망을 찾고 작업을 지속할지 계속 묻고자 해요. 비록 사라져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해도 우리 몸과 기억에 남은 감각을 어떻게 붙잡고 기록하며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요. 이건 결코 해녀 문화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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