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본부장, 3주 만에 또 브뤼셀 찾아 EU 고위급 상대 설득전
철강업계, 정부에 "최대한 많이" 호소…상황 녹록치 않아
(브뤼셀=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유럽연합(EU)의 철강 관세 대폭 인상이 4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국 등 주요 철강 수출국들이 무관세 물량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EU는 역내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내달 1일부터 관세를 물리지 않는 철강 제품 수입 물량을 기존의 연간 3천500만t에서 1천830만t으로 절반 가까이 줄이고, 이를 초과하는 수입 물량에는 현행 25%의 관세를 50%로 2배 인상하는 새 관세 기준을 적용한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새 관세 적용을 앞두고 이달 중으로 협상을 통해 국가별 무관세 물량을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 아래 현재 세계무역기구(WTO) 본부가 위치한 제네바에서 국가별 철강 쿼터 배분을 둘러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EU가 철강 관세를 인상하려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제28조의 관세 양허를 수정해야 하는 만큼, EU는 WTO 틀 안에서 협상을 통해 철강 관세 인상 문제를 풀어가려 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튀르키예, 인도, 중국, 영국, 우크라이나 등 EU에 대한 주요 철강 수출국은 이에 따라 한정된 무관세 할당량을 자국으로 조금이라도 더 가져오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제네바에서 진행되는 실무 협상과는 별도로 통상 수장이 3주 새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을 2차례 찾아 EU 고위급을 상대로 설득전을 펼치는 투트랙 전략으로 막판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달 11일에 이어 지난 1일 브뤼셀에서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과 재차 만나 EU의 철강 수입규제 조치에 대한 우리 업계의 우려를 전달하고, 한국산 철강 제품이 불합리한 제약을 받지 않도록 EU 측의 협조를 요청했다.
여 본부장은 지난 2일에는 철강 관세 인상 입법에 관여한 유럽의회 의원들도 만나 한국산 철강 제품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강조했다.
아시아 최초로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은 철강 관세 인상은 기본적으로 FTA 위반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FTA 체결국으로서 15년 동안 EU와 쌓아온 무역 관계의 신뢰가 이번 조치로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으로는 EU의 입장이 워낙 강경한 탓에 철강 관세 인상 자체를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인 만큼, 국내 철강 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무관세 수출 물량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한 협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국내 철강업계 관계자는 "무관세 쿼터 축소 등 유럽의 수입규제 강화 움직임에 따라 미국과 함께 국내 철강 업계의 양대 시장인 유럽행 수출 물량 축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정부에 무관세 국가 쿼터 물량을 최대한 확보해 달라고 계속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전체 무관세 물량이 47%가량 줄어들기에 주요 철강 수출국은 일단 EU행 무관세 수출 물량이 작년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을 상정하고, 이 물량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무관세 물량을 자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저마다의 논리를 총동원하고 있다.
지난해 EU에 약 311만t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적용 대상 철강 제품을 수출한 한국은 이 가운데 258만t은 국가별 할당을 적용받아 무관세로, 나머지 물량에 대해서는 관세 25%를 물었다.
EU의 새 관세 기준대로라면 한국의 무관세 할당량은 130만t가량으로 작년에 비해 반토막 수준으로 쪼그라들고 이를 초과하는 수출분에 대해서는 50%의 관세 폭탄을 맞게 돼 국내 철강업계의 수출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통상 당국은 한국의 경우 EU와 FTA 체결국일 뿐 아니라, 양질의 철강 생산국인 데다 공급망을 교란하는 국가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무관세 물량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EU 집행위원회와 그동안 맺어온 우호적인 관계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EU로의 주요 철강 수출국인 튀르키예, 인도, 영국, 일본 등도 EU와 FTA를 맺었거나 관세 동맹국으로 무관세를 적용받는 국가라는 점에서, EU로서는 FTA에 근거해 특정 국가에만 무관세 물량을 추가로 배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U와 FTA 체결국이 아닌 우크라이나의 경우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지닌 데다 러시아와 5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는 특별한 사정을 반영해 무관세 할당량 배분 시 다른 나라보다 좀 더 배려해야 한다는 EU 내부의 목소리도 크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업계의 기대에 부응하는 무관세 물량을 확보하는 것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다른 주요 철강 수출국에도 녹록지 않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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