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업계가 내수 중심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빠르게 '수출 주도형'으로 체질 전환에 나서고 있다. 약가 인하 기조와 시장 정체로 국내 매출 확대가 쉽지 않은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 신약 판매와 기술료가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한 것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제약사들의 실적도 해외 성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고환율 기조가 이어지며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실적 개선 효과가 두드러진 반면 내수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성장 폭 확대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다만 국내 시장은 구조적으로 성장 여력이 제한적이다.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제네릭 중심의 경쟁 심화로 수익성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기존 '내수·도매 중심' 구조로는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약 성과와 로열티 수익이 실적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한양행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의 해외 판매와 기술료 유입으로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고, GC녹십자는 면역글로불린 제제 '알리글로'를 앞세워 북미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매출 성장으로 실적 구조를 바꾸고 있으며, HK이노엔 역시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케이캡'의 해외 확장에 힘입어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유한양행은 '렉라자' 기술수출에 따른 마일스톤과 로열티 유입이 본격화되며 연간 영업이익 1000억원 돌파가 예상된다. GC녹십자는 '알리글로'의 미국 시장 성장을 기반으로 2028년 약 3억 달러 규모 매출이 기대된다. SK바이오팜의 '세노바메이트'는 미국에서 연간 4억~6억 달러 매출을 내고 있으며, 올해 1분기 미국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8.4% 증가한 1977억원을 기록했다. HK이노엔 '케이캡'은 1분기 585억원 처방 실적을 기록하며 해외 확장 기대를 키우고 있다.
특히 고환율 환경은 수출 중심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원료의약품을 수입하는 구조상 비용 부담은 커지지만 달러 기반 매출이 이를 상쇄하면서 전체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시장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수혜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국내 제약업계 경쟁 구도가 기존 '내수 중심'에서 '수출 주도형'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이다. 단순 완제의약품 판매를 넘어 글로벌 신약 상업화, 기술수출, 위탁개발생산(CDMO), 바이오시밀러 등으로 사업 축이 이동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처방 시장은 기본적인 매출 기반 역할에 그치고, 실질적인 성장과 수익성은 해외에서 결정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신약과 사업 모델을 확보한 기업 중심으로 재편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의 '기술수출 중심' 성장 전략에 대한 한계도 지적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국내 신약 25년의 이정표와 블록버스터의 탄생'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4년까지 1조원 이상 규모의 기술수출 사례는 10건을 넘어섰다. 성과는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글로벌 제약사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국내 대형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간 협력 모델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이오벤처는 혁신 기술과 초기 연구 역량을, 대형 제약사는 임상 개발·허가·생산·유통 역량을 각각 보유한 만큼 상호 보완적 시너지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 기술이전을 넘어 자체 상업화 역량과 글로벌 파이프라인을 확보한 기업 중심으로 산업 재편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대형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간 협력 생태계 구축에도 촘촘한 전략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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