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들이 해외 매출 확대를 넘어 판매 주도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단순 제품 수출에 그치지 않고 현지 유통망과 영업 조직까지 직접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약가 인하와 제네릭 경쟁이 고착화된 국내 시장만으로는 성장 여력이 제한적인 만큼 수익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3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산업 시장 규모는 2024년 1조6700억 달러(약 2516조원)에서 2034년 3조 달러(약 4519조원)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한국은 세계 제약시장 매출의 1.7%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국이 47.8%, 유럽 주요 5개국이 14.4%, 중국과 일본이 각각 6.8%, 3.7%를 차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규모 차이가 크다.
해외 진출은 이미 국내 제약사들의 공통 과제가 됐다. 다만 최근에는 얼마나 많이 수출하느냐보다 해외 시장에서 판매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이 됐다. 유통 단계가 늘어나면 가격 정책과 시장 대응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도권 확보를 위해 직접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GC녹십자는 미국 시장 안착을 위해 2024년 1380억원을 투자해 현지 혈액원 운영사 ABO홀딩스 지분을 전량 인수했다. 원료 혈장 확보부터 완제품 판매까지 현지 사업 기반을 넓히기 위함이다.
미국 시장에 진출한 혈액제제 '알리글로'는 올해 1분기 349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약 4배 성장했다. 연간 매출도 2024년 486억원에서 지난해 1511억원으로 늘었다. 2035년 미국 시장 매출 10억 달러(약 1조5070억원) 달성을 목표로 제시한 가운데 알리글로는 핵심 성장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셀트리온은 2020년 유럽, 2023년 미국에서 각각 직접판매 체제를 구축한 뒤 현지 법인 중심의 영업망을 확대해왔다. 특히 미국에서는 생산과 공급, 법인을 통한 직판 유통망까지 아우르는 구조로 가격 경쟁력과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 대상 협상력을 동시에 확보했다. 직판 체계가 안착하며 유플라이마와 베그젤마, 트룩시마 등 주요 제품은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처방 1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SK바이오팜은 자체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를 앞세워 미국 직판에 성공했다. 국내 제약사가 자체 신약을 기반으로 미국 시장 직판 체제를 구축한 첫 사례다. 제한된 인력으로도 효율적 시장 공략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직접 판매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직판 성공의 출발점은 질환 선정에 있었다"며 "만성질환 대비 중추신경계(CNS) 질환은 약 80~120명의 정예 영업 인력만으로도 효율적 상업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판매 주도권 방식이 직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은 약국 중심 유통 구조가 강한 시장으로 꼽힌다. 동화약품은 2023년 베트남 약국 체인 중선파마 지분 51%를 약 391억원에 인수하며 현지 판매 채널 확보에 나섰다. 단순 제품 수출보다 유통망 자체를 확보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신흥국 의약품 시장은 브랜드 인지도가 중요한 구조여서 초기 입지를 확보하면 후발 주자임에도 점유율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평가다. 회사는 향후 베트남 의약품 시장을 발판으로 동남아 제약·뷰티 시장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많은 기업들이 해외 진출 시 빠르고 비용이 낮은 제품 수출부터 시작한다"며 "현지 소비자와 직접적인 관계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베트남 약국 체인 인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의약품은 국가마다 보험 체계와 규제가 달라 현지 판매망 구축 자체가 쉽지 않다"며 "초기 투자 부담은 크지만 안착 이후에는 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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