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흑자인데 원화는 추락했다… 원·달러 환율 1540원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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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흑자인데 원화는 추락했다… 원·달러 환율 1540원의 역설

뉴스로드 2026-06-03 06:47: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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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1540원선을 향해 다시 상승하고 있다. 올해 초 1430원대까지 내려갔던 환율은 3월 이후 재차 오름세로 전환해 최근 1510원대 후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달러 강세와 글로벌 자금 이동,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료=인베스팅닷컴]
원·달러 환율이 1540원선을 향해 다시 상승하고 있다. 올해 초 1430원대까지 내려갔던 환율은 3월 이후 재차 오름세로 전환해 최근 1510원대 후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달러 강세와 글로벌 자금 이동,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료=인베스팅닷컴]

원·달러 환율이 1540원 문턱에서 흔들리고 있다. 6월 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151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5월 말에는 장중 1538원까지 치솟았다. 외환위기 이후 보기 드문 수준이다. 이 숫자를 설명하려고 세계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꺼내 들면 오히려 혼란스러워진다. 배리 아이켄그린은 달러 패권을 말하고, 케네스 로고프는 부채를 경고한다. 모리스 옵스트펠드는 변동환율제를 옹호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그 한계를 지적한다.

문제는 이들 가운데 누구도 완전히 같은 답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달러를 보는 시각도, 부채를 해석하는 방식도, 환율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논리도 다르다. 지금 원화는 바로 그 불일치의 한가운데 서 있다. 한국 환율을 이해하려면 거장들의 결론보다 그들이 충돌하는 지점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달러화/연합뉴스
달러화/연합뉴스

▲환율은 경제보다 돈의 흐름을 따른다

경제학 교과서는 환율이 결국 펀더멘털을 따라간다고 설명한다. 경상수지와 물가, 금리 차이가 환율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모리스 옵스트펠드와 케네스 로고프가 발전시킨 신개방거시경제학도 같은 전제 위에 서 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이론보다 복잡했다. 1983년 리처드 미즈와 로고프는 어떤 거시경제 모형도 단기 환율 예측에서 랜덤워크를 이기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환율을 설명하던 이론이 정작 환율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후 시선은 경제지표가 아니라 금융시장으로 옮겨갔다. 가베와 마조리는 환율이 무역수지보다 글로벌 금융중개자의 대차대조표에 더 크게 좌우된다고 봤다. 시장이 위험을 감수하려 할 때는 자금이 신흥국으로 몰리고, 불안이 커지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는 이야기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국제결제은행(BIS)에서 제시한 '환율의 금융채널'도 같은 맥락이다. 달러가 약세일 때는 글로벌 은행들이 신흥국에 자금을 공급하고,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면 그 돈은 다시 미국으로 향한다.

지금 원화가 보여주는 모습이 그렇다. 한국의 경상수지는 흑자이고 외환보유액도 충분하다. 성장률 역시 주요국과 비교해 나쁘지 않다. 교과서대로라면 원화는 강세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다. 환율이 한국 경제보다 글로벌 자금의 움직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Fed]
[사진=Fed]

▲시장은 한국보다 미국을 본다

한국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다. 교과서대로라면 환율이 외부 충격을 흡수해주기 때문에 한국은행은 독립적으로 금리를 결정할 수 있다. 모리스 옵스트펠드가 설명한 트릴레마 이론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프랑스 경제학자 엘렌 레이는 2015년 "글로벌 금융사이클이 지배하는 시대에 변동환율제는 방패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환율제도와 관계없이 그 충격이 세계 금융시장으로 번진다는 것이다.

논쟁의 핵심은 하나다. 과연 각국 중앙은행이 생각만큼 자유롭게 금리를 결정할 수 있느냐다. 흥미로운 점은 옵스트펠드 역시 후속 연구에서 신흥국의 경우 레이의 주장에 상당 부분 힘을 실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시장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국내외 연구를 보면 한국 장기금리는 미국 장기금리와 갈수록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금리는 한국은행이 결정하지만 시장은 미국을 먼저 바라본다. 우리가 통화주권이라고 부르는 공간이 생각보다 넓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540원선을 위협하는 가운데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과 금융시장 안정, 가계부채 관리 사이에서 통화정책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540원선을 위협하는 가운데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과 금융시장 안정, 가계부채 관리 사이에서 통화정책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공동취재단]

▲선진국 경제, 신흥국 통화

국가부채를 둘러싼 경제학자들의 논쟁은 오래됐다.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금리가 성장률보다 낮다면 국가부채를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케네스 로고프와 카르멘 라인하트는 과도한 부채가 결국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 논쟁의 중심에 있지 않다. 한국의 위험은 정부 부채보다 가계 부채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 가계신용은 이미 1993조원을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부 회계장부보다 더 위험한 곳이 가계 회계장부라는 뜻이다.

여기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국제결제은행(BIS) 시절 강조한 비핵심부채 개념이 나온다. 호황기에 늘어난 민간의 레버리지가 위기의 씨앗이 된다는 이야기다. 환율을 잡으려 금리를 올리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도 가계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달러를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하다. 배리 아이켄그린은 달러 패권이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지만 현실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중동 전쟁이든 금융시장 불안이든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금은 다시 달러로 몰린다. 달러는 여전히 세계가 가장 먼저 찾는 안전자산이다.

한국은 이 구조에서 애매한 위치에 서 있다. 제조업 경쟁력은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원화는 안전자산 대접을 받지 못한다. 경제 규모는 선진국인데 통화 위상은 신흥국에 가깝다. 위기가 오면 엔화와 스위스프랑에는 돈이 몰리고 원화에서는 빠져나간다. 한국 환율의 구조적 약점도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사진=최지훈 기자]
[사진=최지훈 기자]

▲1540원은 경고다

1540원은 단순한 환율 숫자가 아니다.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약점이 외환시장에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한국의 경상수지는 흑자다. 외환보유액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원화는 흔들린다. 환율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만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금 흐름과 금융시장의 위험선호, 달러 강세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환율을 통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위기가 닥치면 자금은 다시 달러로 몰리고, 충격은 금융시장을 통해 빠르게 전파된다.

그래서 지금 한국 경제가 바라봐야 할 곳은 외환 전광판이 아니다. 20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다. 환율이 오를 때 진짜 위험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그 충격을 감당해야 하는 가계의 대차대조표에서 시작된다.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금융위기의 출발점을 인간의 심리에서 찾았다. 그는 "친구가 부자가 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사람의 판단력을 흔드는 일은 없다"고 했다.

호황기에 늘어난 빚과 과도한 레버리지, 군집행동이 위기의 씨앗이라는 뜻이다. 1540원은 위기의 원인이라기보다 경고에 가깝다. 한국 경제가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알려주는 신호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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