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시장에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가입자가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사전에 정해진 상품에 자동 투자되는 방식이 자리 잡으면서 관련 적립금 규모도 가파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약 53조원으로 집계됐다. 지정 가입자 수는 734만명에 달한다. 적립금은 1년 전보다 33%, 가입자 수는 16% 증가했다. 특히 개인형퇴직연금(IRP)을 중심으로 자금 유입이 이어지면서 시장 확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디폴트옵션 전용 펀드(O클래스) 설정액 1조3663억원을 기록하며 업계 최대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디폴트옵션 시장이 퇴직연금 운용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련 상품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자신의 적립금을 어떤 금융상품에 투자할지 선택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 미리 지정된 상품으로 자동 운용하는 제도다. 우리말로는 사전지정운용제도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직장인이 퇴직연금 계좌를 개설한 뒤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금융회사는 사전에 정해진 투자 상품에 적립금을 배분한다. 투자 경험이 부족하거나 금융상품 선택이 어려운 가입자들이 자금을 장기간 방치하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실제로 퇴직연금 제도가 시행된 이후에도 상당수 가입자들은 적립금을 예금이나 현금성 자산에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았다. 투자 판단이 어렵거나 손실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해 실질 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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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정부와 금융당국은 가입자가 별도로 상품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자산이 일정 수준 이상 운용될 수 있도록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는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 다양한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여러 유형의 디폴트옵션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TDF 중심으로 커진 시장
현재 디폴트옵션 시장의 중심에는 TDF가 있다. TDF는 타깃데이트펀드(Target Date Fund)의 약자로 투자자의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자산 배분 비중을 자동 조정하는 상품이다.
은퇴 시점이 많이 남았을 때는 주식 비중을 높여 수익을 추구하고,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채권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산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투자자가 직접 자산 배분을 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퇴직연금 상품으로 활용도가 높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디폴트옵션 시장에서 TDF를 핵심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표 상품인 '미래에셋전략배분TDF2035'는 지난 5월 11일 기준 설정액 2899억원을 기록하며 디폴트옵션 전용 펀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나타냈다.
이 상품은 2035년 전후 은퇴를 목표로 하는 투자자를 위한 상품이다. 투자자의 예상 은퇴 시기에 맞춰 자산 배분 비중을 조정하고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 자산 등을 분산 편입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따르면 미래에셋전략배분TDF2035의 O클래스 기준 누적 수익률은 2022년 12월 설정 이후 지난 5월 11일까지 60.69%를 기록했다.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TDF가 사실상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각 운용사들도 경쟁적으로 관련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장기 투자 성격이 강한 퇴직연금의 특성상 자동 자산 배분 기능을 갖춘 TDF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이다.
자산배분 상품도 존재감
최근에는 TDF 외에도 자산배분형 상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투자 위험을 상대적으로 낮추면서 추가 수익을 추구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래에셋밸런스알파플러스펀드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디폴트옵션 수익률 공시에 따르면 이 상품은 지난해 말 기준 수익률 상위 포트폴리오에 다수 편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상품은 만기 1년 안팎의 단기채권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확보하면서 추가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함께 활용한다. 우선주와 보통주 간 가격 차이를 활용하는 페어트레이딩 전략, 구조화 상품 투자, 리츠(REITs)와 인프라 자산 투자 등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특정 자산에 집중 투자하기보다 다양한 전략을 동시에 활용해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특징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상품이 안정성을 중시하는 퇴직연금 투자자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래에셋밸런스알파플러스펀드는 2023년 1월 설정 이후 지난 5월 11일 기준 37.7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운용업계에서는 디폴트옵션 시장이 커질수록 상품 구성도 다양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초기에는 TDF 중심으로 시장이 성장했지만 최근에는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자산배분형 상품들도 점차 비중을 넓혀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수십조원대로 커진 가운데 디폴트옵션 시장 역시 새로운 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투자 경험이 부족한 가입자들의 자금이 자동으로 운용되는 구조인 만큼 향후 어떤 상품이 장기 성과를 보여줄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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