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왕의 옷은 몸을 가리는 직물보다 권위를 드러내는 정치 언어에 가까웠다. 검은 웃옷에는 용과 산, 불꽃과 꿩, 제기 문양이 자리했다. 소매 끝에는 호랑이와 원숭이까지 들어갔다. 조선 국왕의 예복 구장복은 복식 한 벌에 통치자의 덕목과 국제질서를 새긴 유물이다.
구장복(九章服)은 면복(冕服)의 한 구성이다. 면복은 머리에 쓰는 면류관과 몸에 입는 곤복을 합한 예복이다. 구장복은 곤복 가운데 의(衣)에 해당한다. 국왕이 갖춰야 할 덕목을 아홉 종류 장문으로 표현해 군왕의 위엄을 드러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구장복은 2건이다. 옛 중요민속문화재 제66호로 알려진 지정 유산이다. 직물 차이에 따라 은조사구장복과 갑사구장복으로 나뉜다. 은조사는 얇고 무늬가 없는 견직물이다. 갑사는 작은 마름모형 무늬가 반복되는 견직물이다.
면복은 가례, 종묘사직 제사인 길례, 국상 때 대렴의로 쓰였다. 중국 법복 체계에서 출발한 예복이라 면류관에 달린 줄 수와 의·상에 붙는 문양 수로 위계를 나눴다. 황제는 십이류면 십이장복, 왕은 구류면 구장복, 왕세자는 팔류면 칠장복을 착용했다. 조선은 명보다 2등급 낮은 친왕제 질서 안에서 국왕 구장복, 왕세자 칠장복 제도를 따랐다. 한반도 면복 수용 시점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삼국시대 기록에 면류관 관련 내용이 이미 보인다. 구장복이라는 명칭은 고려 문종 19년인 1065년 거란에서 구장복과 옥규를 받은 기록에서 확인된다. 공민왕 때 한때 십이류면 십이장복을 착용한 사례가 있었으나, 1370년 명 성립 뒤 명 태조가 내린 구류면 구장복이 다시 왕의 예복으로 쓰였다.
조선 국왕 면복 제도는 '세종실록오례' 길례 조에서 처음 정리됐다. 명 멸망과 청 성립 뒤에는 청이 조선에 면복을 내리려는 시도가 잦았고, 제도 혼선도 커졌다. 영조대인 1744년 '국조속오례의서례'는 조선식 면복 제도를 정비했다. 후기 왕실 면복은 영조대 규정을 중심으로 국말까지 큰 틀을 유지했다. 실물 구장복은 현의와 중단이 붙은 형태로 남아 있다. 현의는 검은빛 웃옷, 중단은 받침옷이다. 두 옷 모두 홑옷이며 깃 없이 섶 아래까지 선단이 내려가는 교임형 구조다. 넓은 소매 끝과 도련 둘레에도 선단을 둘렀다. 뒷길 윗부분에는 직물로 맺은 암단추 4개가 달려 방심곡령과 후수 달린 대대를 고정했던 흔적으로 해석된다.
옷 안쪽에는 어깨 바대와 겨드랑이 바대가 붙어 있다. 겉고름과 안고름은 겹으로 만들어졌다. 왕의 예복이라는 이름과 달리 구조는 매우 실용적이다. 무게, 착용 방식, 의례 동작을 견디도록 보강한 궁중 복식의 기술이 남아 있다. 구장복의 핵심은 장문이다. 아홉 문양은 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필요한 덕목을 상징한다. 현의에 안료로 문양을 그린 방식은 양(陽)을, 상과 폐슬에 색실로 수놓은 방식은 음(陰)을 뜻한다. 옷 한 벌 안에 유교적 위계와 음양 관념이 겹쳐진 셈이다.
현의에 그려지는 다섯 장문은 용, 산, 화, 화충, 종이다. 용은 신기한 변화 능력을 뜻하며 양어깨에 마주보는 얼굴로 그렸다. 산은 천하를 안정시키는 의미를 담아 등 중앙에 뒀다. 붉은 불꽃인 화는 광휘를, 꿩 모양 화충은 문채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제기 모양 종이는 효를 뜻한다. 소매 뒤쪽에는 화, 화충, 종이가 위에서 아래로 각각 세 개씩 그려졌다. 종이 문양 안에는 동물이 들어간다. 오른쪽 소매에는 용맹을 뜻하는 호랑이, 왼쪽 소매에는 지혜를 뜻하는 원숭이를 한 마리씩 넣었다. 왕의 예복에 동물이 숨어 있는 이유는 장식 취향보다 군주의 덕목을 시각화하려는 의례 언어에 가깝다.
중단은 현의를 받치는 옷이다. 길고 넓은 교임형 홑옷이며 현의보다 선단 너비만큼 길다. 밝은 청색 바탕에 흑색 선단을 둘렀고, 고대 부근에는 아자형 불(黻)무늬 11개가 그려졌다. 현의와 형태는 비슷하지만 색과 길이, 문양에서 차이를 보인다. 중단 색상은 구장복 연구에서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실물은 청색이다. 정조 17년 조복의 중단인 청색 창의와 백색 창의를 둘러싼 논의가 잦았다. 궁중 복식 운용 변화가 면복 중단에도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의례 성격에 따라 흰색과 청색 중단을 나눠 입었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길이 차이도 문헌과 실물을 잇는 단서다. 영조 19년에는 면의가 훈상을 가리지 않도록 제도를 고치라는 명이 있었다. 구장복 2건을 보면 중단 아랫단이 현의 아래로 조금 드러난다. 왕의 명령이 실제 옷의 길이와 구조에 반영된 사례로 읽힌다. 구장복은 왕권 과시용 예복보다 넓은 정보를 남긴다. 고려가 거란에게 받은 의복, 조선이 명 제도 안에서 정비한 위계, 청 성립 뒤 흔들린 법복 질서, 영조대 국속제 확립까지 한 벌 안에 겹쳐 있다. 문양은 왕의 덕목을 말한다. 직물은 제작 기술을 전하고, 색상은 궁중 의례의 변화를 드러낸다.
남아 있는 구장복 2건은 조선 왕실 예복이 문헌 그대로만 존재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기록에는 흰 중단이 적혔고, 실물에는 청색 중단이 남았다. 제도와 착용 현실 사이의 차이가 유물 안에 보존된 셈이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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