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예술공간 스페이스유닛플러스(총괄디렉터 강지선 손원영)는 6월 5일부터 오는 7월 4일까지 서울 을지로 전시공간에서 김연진 작가의 개인전 'On, Of, and About'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과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애니메이션, 북워크(Bookwork), 드로잉, 콜라주,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어 온 작가의 신작들을 소개한다.
김연진은 오랫동안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문화권 사이를 오가며 언어와 정체성, 문화적 번역의 문제를 탐구해왔다. 작가에게 번역은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행위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사회적 규범과 역사적 기억, 감각 체계를 횡단하며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문화적 이동의 경험 속에서 발생하는 간극과 혼성, 그리고 정체성의 유동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전시 제목인 'On, Of, and About'은 의미심장하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전치사들이지만, 작가에게 이 단어들은 관계와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의미의 구조를 상징한다.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On), 무엇인가로부터 비롯되며(Of), 그것을 둘러싸고 사유하는(About) 과정은 결국 정체성과 문화 역시 고정된 실체가 아닌 지속적인 형성과 변형의 과정임을 암시한다.
전시장에는 한국과 서구의 미적 전통에서 수집한 이미지와 형태, 재료의 파편들이 작가만의 조형 언어로 재구성된 작품들이 펼쳐진다. 특히 한국 전통 조각보와 자수에서 발견되는 연결과 봉합의 미학은 서구 현대미술의 콜라주와 아상블라주 기법과 만나 새로운 시각적 질서를 형성한다.
작품 속 격자 구조는 한국 전통 조각보를 연상시키면서도 단순한 재현에 머무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이미지와 형태들은 중첩되고 분리되며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이질적인 요소들은 완전한 통합에 이르기보다 연결과 해체를 반복하며 문화적 경계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이동의 감각을 드러낸다.
김연진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된 결과보다 형성의 과정이다. 작품 속 파편들은 각각 독립된 의미를 지니면서도 다른 요소들과 만나 새로운 맥락을 생성한다. 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이 경험하는 복합적 정체성의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어느 한 문화에 완전히 속하지도, 그렇다고 분리되지도 않는 존재의 상태가 작품 전반에 스며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동시대 문화 담론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혼종성(Hybridity)에 대한 예술적 탐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글로벌 시대의 개인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 가치 체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재정립한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단순한 이론적 논의가 아닌 시각적 경험으로 전환하며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사유의 계기를 제공한다.
전시장에 놓인 이미지의 조각들은 문화적 기억의 단서이자 이동의 흔적들이다. 익숙한 전통적 형상은 낯선 맥락 속에서 다시 읽히고, 서구적 조형 언어는 한국적 감수성과 만나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작품들은 하나의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관람객 스스로 관계를 발견하고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뉴욕과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연진은 현재 뉴욕주립대학교 빙햄튼(Binghamton University, SUNY)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과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국내외 다수의 전시와 영화제,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참여했으며, 독립 큐레이터로서 뉴욕과 한국, 일본을 오가며 폭넓은 기획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50 Contemporary Women Artists』와 『Shared Dialogue, Shared Space』 등에 소개되며 국제 미술계에서도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두 문화의 차이를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틈과 충돌, 그리고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김연진은 문화적 경계에서 발견되는 불완전함과 유동성을 통해 오늘날 정체성이 형성되는 방식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On, Of, and About'은 결국 번역에 대한 전시이면서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익숙한 언어와 문화의 틀을 벗어나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감각과 의미를 탐색하며, 정체성이란 고정된 결과가 아닌 끊임없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한편 김연진이 직조해낸 수많은 이미지와 기억의 파편들은 문화적 경계가 더욱 복잡해진 동시대 사회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자, 서로 다른 존재들이 공존하며 만들어가는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는 사유의 장으로 관람객들을 이끈다. 'On, Of, and About'은 경계와 이동, 번역과 혼성의 언어로 오늘의 정체성을 성찰하는 전시로, 동시대 미술이 제안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하고도 깊이 있는 문화적 대화를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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