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 일은 피곤한 것으로 여겨진다. 묻지 않아도 말을 얹고, 부르지 않아도 다가온다. 필요 이상으로 사정을 살피는 태도는 ‘오지랖’이라는 이름으로 밀려난다. 효율과 속도가 관계의 기준처럼 굳어진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짧은 답, 빠른 선택, 선명한 결과가 우선되는 사회에서 길게 이어지는 수다와 서툰 참견은 낡은 습관처럼 보인다.
안무가 박호빈은 낡은 습관에서 무대를 끌어낸다. 제로포인트 모션의 '오지랖 OZ_Rap 2.0'은 부정적 뉘앙스에 갇힌 말을 뒤집는다. 관계를 회복하는 아날로그 감각으로 다시 읽는다. 출발은 인공지능(AI)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바꿔 놓은 생활 감각이다. 기술은 사람의 선택을 정리하고, 플랫폼은 관계를 수치와 반응으로 환산한다.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사람 사이의 오해와 단절은 사라지지 않는다.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기성세대는 ‘라떼’라는 조롱의 말 속에 묶인다. 몸을 쓰는 예술가조차 빠른 변화 앞에서 자기 감각을 되묻게 된다. '오지랖 OZ_Rap 2.0'은 “무용수들의 일상은 안녕한가”에서 무대의 온도를 얻는다.
작품은 기술을 공격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번거로움에 집중한다. 수다, 간섭, 망설임, 몸의 과잉 반응, 정리되지 않은 감정은 효율의 언어로 보면 불필요한 잔여물이다. 박호빈은 잔여물을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의 정보와 감정의 흔적, 서로를 살피는 오래된 감각이 숨어 있다고 본다. ‘오지랖’은 귀찮은 참견이 아니다. 개인화된 사회에서 약해진 사회적 유대를 다시 묶는 느린 메신저다. 정확한 정보보다 사람의 상태를 먼저 묻고, 필요한 말보다 주변의 기척을 살핀다. 누군가의 삶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는 태도는 불편하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졌을 때 사람은 외로워진다. 작품은 모순을 춤의 재료로 삼는다.
많은 말은 겉으로는 쓸모없는 소음처럼 흐른다. 그러나 사소한 말 속에는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지, 어느 관계가 흔들리는지, 어떤 감정이 말해지지 않은 채 남았는지에 관한 사적 정보가 숨어 있다. '오지랖 OZ_Rap 2.0'은 수다를 무대 위에서 재평가한다. 말이 길어지는 순간, 몸도 길어진다. 웃음은 리듬이 되고, 끼어드는 말은 동작의 방향을 바꾸며, 대화의 부산물은 춤의 구조로 옮겨진다. 춤을 향한 질문도 같은 방식으로 이어진다. 무용은 종종 절제와 정제를 요구받는다. 불필요한 움직임은 덜어내야 한다. 과도한 몸짓은 본질을 흐린다는 비평을 받는다. 박호빈은 기준 앞에서 버려진 춤사위와 무의미한 동작을 다시 부른다. 정리되지 않은 몸, 과한 반응, 느린 호흡, 갑작스러운 분출이 인간의 실제 상태에 더 가까울 수 있다는 판단이다.
무대는 두 갈래로 구성된다. 'www.어린부부다큼.com'은 부부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다. 내향성이 강한 A+++형 어린 부부가 생계를 책임지기 시작하며 겪는 우여곡절이 중심이다. 춤을 포기하려는 순간과 다시 붙드는 시간, 생활을 버티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몸의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제목은 인터넷 주소처럼 장난스럽지만, 안에는 관계가 생활 속에서 어떻게 흔들리고 굳어지는지에 관한 질문이 자리한다. 부부는 낭만의 이름보다 생계의 압박에 가까운 존재다. 함께 산다는 말은 감정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일, 돈, 피로, 말실수, 서툰 배려가 매일의 몸에 쌓인다. 박호빈은 부부의 성장담을 좌충우돌의 감각으로 풀어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멋진 결심보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서로의 속도를 조금씩 배우는 일에 가까워진다.
'수다Chat는 집이지GPT!'는 부적응과 비효율의 이름을 얻은 세대의 분투기다. 제목은 챗GPT(ChatGPT)를 떠올리게 하는 언어유희를 품지만, 관심은 기술 패러디가 아니다. 빠르게 정리된 답변보다 말이 새고, 돌아가고, 빗나가는 인간 대화의 성질을 붙든다. 수다는 집처럼 편하고, 때로는 답답하며, 밖으로 나가지 못한 감정이 오래 머무는 장소가 된다. 라떼세대의 불안도 몸의 상태로 다뤄진다. 빠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종종 낙오자로 불린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만 정답이 되는 순간, 느리게 반응하는 몸과 길게 말하는 사람은 모두 지워진다.
제목 속 ‘OZ’는 '오즈의 마법사'의 세계관을 불러온다. 방향을 잃은 허수아비에게 지혜를, 감정을 잃은 양철나무꾼에게 심장을, 두려움 앞에서 도망치려는 사자에게 용기를 찾아주는 서사는 작품의 은유가 된다. AI 시대의 라떼세대는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사자처럼 길 위에 선다. 필요한 것은 다시 움직일 지혜, 다시 느낄 심장, 다시 관계를 마주할 용기다. 박호빈의 30년은 연극전공에서 출발해 무용으로 삶의 중심을 옮겼다. 1996년 댄스컴퍼니 조박, 2003년 댄스씨어터 까두, 2016년 제로포인트 모션까지 사회적 질문 사이를 오갔다. 국가무형문화유산 봉산탈춤 이수자라는 이력도 그의 몸이 전통적 감각과 동시대 무대 언어를 교차해왔음을 보여준다.
초기 박호빈의 무대는 거칠고 피지컬한 움직임, 예상 밖의 타이밍, 관객의 호흡을 빼앗는 시간 설계가 중요했다. '녹색전갈의 비밀'은 미국 순회공연 중 현지 언론의 평가를 받았다. '오르페우스 신드롬'은 젊은 안무가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돌아온 퍼즐속의 기억', '천적증후군'은 해외 무대에서도 소개되며 작업 반경을 넓혔다. 댄스씨어터 까두 시기에는 멀티미디어와 극적 구성이 강해졌다. 교토에서 접한 미디어 아트그룹 덤프타입의 작업 방식은 박호빈에게 디지털 리서치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후 영상과 움직임을 결합한 창작 시스템으로 이어졌다. '엘리베이터 살인사건'은 밀폐 공간의 불안과 고립을 무대화해 댄스시어터 감각을 선명하게 보여준 작업이다.
2016년 제로포인트 모션 이후 화두는 몸의 본질로 옮겼다. 제작 환경의 변화 속에서 스스로 무대를 책임지는 시간이 늘은 것이다. 박호빈에게 제로포인트는 모든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출발점이자, 멈춘 듯 보여도 창작이 계속되는 지점이다. 빠른 답이 넘치는 시대에도 인간은 때로 우회하고, 과장하고, 말이 새고, 몸이 반응한다. '오지랖 OZ_Rap 2.0'은 비효율 안에서 관계의 마지막 온도를 찾는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