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다른 사람 23명이 죽어도 세상은 안온했다"…아리셀 2년, 멈춘 유족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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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다른 사람 23명이 죽어도 세상은 안온했다"…아리셀 2년, 멈춘 유족의 시간

프레시안 2026-06-01 15:16: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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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작가는 2024년 6월 24일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사망한 23명의 피해자에게 "그곳에서는 평등하시길"이라고 31일 추모했다. 죽어서도 평등하게 애도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죽음 너머의 세상에선 존중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장례지도사 일을 하며 쓴 책 <죽은 다음>의 구절도 읽었다.

"공장에서 죽은 이들은 나와 닮은 사람이 되기 어려웠다. 국적이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타국까지 와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한국 사회 구성원 그 누구도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죽었다. 한 공장에서 사망자 23명이라는 놀라운 숫자가 나왔음에도 세상은 안온했다."

희정 작가는 "어떤 죽음엔 깊이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떤 죽음은 덜 안타깝게 여기는 사회"를 말하며, "애도받을 자격을 따지는 사회에서 어떻게 애도받을 권리를 지켜낼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장례지도사들이 염습 전 고인에게 '사느라 고생하셨다'고 끊임없이 말을 건네듯, "우리 역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로 세상에 대응해 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31일 저녁 서울 관악구 모처에서, 아리셀 유족 다섯 명과 이들에 연대하는 시민 30여 명이 모여 함께 저녁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망인들을 기억하는 애도 행사를 열었다. 6개 이주인권·미디어운동 단체들이 '내 무덤은 아리셀'이란 이름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31일 열린 '내 무덤은 아리셀' 행사에 참석한 유족 여국화 씨(왼쪽)와 이순희 씨(중간),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손가영)

▲31일 열린 '내 무덤은 아리셀' 행사에 참여한 희정 작가. ⓒ프레시안(손가영)

외면받는 참사, 아리셀

사회를 본 권순택 미디어사회운동센터WA 센터장은 "참사 규모와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아리셀 참사는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했다"며 "희생자가 숫자가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간 이웃이자 소중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행사를 기획한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은 "살아서도 차별, 죽어서조차 소외 당하는 이주노동자"를 말하며 유해 미수습 문제를 말했다. "유족은 참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2년간 유해 수습을 요청했음에도, 어떤 정부 관계자나 언론도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다"며 "제주항공 참사 현장만이 아니라, 아리셀 참사도 있다"고 강조했다.

아리셀 참사 피해자 시신은 대부분이 온전치 못했다. 유족들은 자체 조사로 최소 14구 시신에 팔과 다리가 없었음을 확인했다. 형체가 남았더라도 무릎 아래나 팔꿈치 아래 부분이 유실됐다. 신체 절반이 사라진 시신도 있다. 사람의 형상을 확인할 수 없는 유해도 세 구가 있었다.

고 엄정정 씨의 어머니 이순희 씨는 "참사 때부터 유해를 찾아달라고 해도, (정부 관계자들이) '기다려라', '수사 중이다'라고 말했다"며 "'해주겠지. 해주겠지' 하고 믿고 넘어간 우리 잘못이다"라고 눈물지으며 말했다. 이어 "제주항공 참사 유해 수습 작업이 이뤄지는 것을 봤는데, 왜 우리는 안해주는 것이냐"고 억울해했다.

▲고 엄정정 씨의 어머니 이순희 씨. ⓒ프레시안(손가영)

▲애도 행사 참가자들이 키링을 만들고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나 배고파'라며 집에 올 것만 같은 딸

이순희 씨는 많은 유족이 여전히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모여 앉은 유족석에서도 2시간 내내 흐느낌과 탄식이 끊이지 않고 들렸다.

이 씨도 시간이 아직 2년 전 참사 때 멈춰져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참사 전, 이 씨 부부는 한국에 정착할 딸을 생각하며 집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건설 현장을 나갔다. 하루에 100만 원을 벌 정도로 고되게 일하며 오랜 기간 자금을 마련했다. 그렇게 그해 5월 집 계약을 하고 8월 이사 날도 잡았다. 그러던 6월, 딸 정정 씨가 아리셀에서 일한 지 2개월 만에 주검으로 돌아왔다.

참사 이후, 중국에서 딸의 소포가 계속 도착했다. 이제야 자기 방을 가진다고 즐거워한 딸이 중국에 있던 인테리어 소품들을 소포로 부쳐 놓은 터였다. 이 씨는 집에 소포를 다 쌓아두고 있다. 그는 "애가 들어오고 싶어 한 집이니, 맨날 올 것만 같다"며 "조금만 기척이 나도, '아 배고파' 이러고 들어올 것 같아 잠을 못 이룰 때가 많다"고 말하며 울었다.

함께 무대에 오른 고 이해옥 씨의 유족 여국화 씨는 "아리셀 현장이 철거되기 전에 유해를 찾아 해옥이를 온전히 보내주고 싶다"며 "노동부도, 소방도, 누구도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하는데, 과연 누가 저희 유해 수습에 나설 수 있느냐"고 호소했다.

▲아리셀 참사 유족들이 행사 종료 후 참가자들과 포옹하고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서로 안부를 물으며 연대하는 애도

지난달 22일 수원고법 형사1부(재판장 신현일, 배석 강명중·차선영)의 아리셀 중대재해처벌법 등 위반 사건 2심 판결은 유족의 상처를 더 후벼 팠다. 재판부는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이번 행사가 기획된 배경 중 하나다.

이날 행사는 '신현일이란 이름을 기억하자'는 말로 시작돼, 신현일 판사와 박순관 대표를 규탄하는 노래와 율동으로 마무리됐다. 가수 지민주 씨는 유족들과 손 잡고 '세상이 지지 말아요' 노래를 불렀다.

이번 행사를 제안한 신정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는 "유족이 결코 혼자가 아니고, 애도를 진심으로 하기 위한 투쟁을 같이 이어 갈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며 "희정 작가의 말처럼, 떠난 이와 남겨진 이의 안부를 묻는 일로 애도를 시작하고, 그래서 함께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순희 씨는 "우리 힘으론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힘도 너무 부족하니, 지금껏 지지와 연대해준 것처럼 끝까지 도와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가수 지민주 씨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행사 참가자들. ⓒ프레시안(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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