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투데이 이정근기자] 현대자동차가 출시한 더 뉴 그랜저의 가격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기존 그랜저가 정숙성, 넓은 실내 공간, 승차감, 브랜드 신뢰도를 중심으로 평가받았다면, 이번 더 뉴 그랜저는 플레오스 커넥트와 글레오 AI를 앞세운 SDV 자동차로서 소프트웨어 경험이 가격 적정성을 판단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로 떠올랐다.
현대차는 더 뉴 그랜저를 출시하며 가솔린 2.5 모델을 4,185만 원부터 책정했다. 가솔린 3.5 모델은 4,429만 원, LPG 3.5 모델은 4,331만 원, 하이브리드 모델은 4,864만 원부터 시작한다. 하이브리드 가격은 세제 혜택 적용 전 기준으로, 환경 친화적 자동차 고시 완료 이후 확정 가격이 공개될 예정이다.
가격만 놓고 보면 구매 단계에서 고민은 커졌다. 기본 트림의 시작 가격이 4천만 원대를 넘어섰고, 하이브리드 모델은 세제 혜택 전 기준으로 5천만 원에 가까운 가격대에서 출발한다. 만약 풀옵션 모델을 구매할 경우 6천만 원은 훌쩍 넘기게 된다. 기존 준대형 세단의 부분변경 모델로만 보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 인상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더 뉴 그랜저는 일반적인 연식 변경이나 부분변경 모델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현대차 최초로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인 플레오스 커넥트를 탑재했고, 여기에 거대 언어 모델 기반 생성형 AI 에이전트인 글레오 AI를 결합했다. 단순히 디스플레이를 크게 만든 수준이 아니라 차량 안에서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기능을 제어하며, 서드파티 앱을 활용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 것이다.
플레오스 커넥트의 핵심은 17인치 중앙 디스플레이다. 더 뉴 그랜저는 이 화면을 통해 내비게이션, 미디어, 차량 설정, 앱 사용을 한 화면 안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기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가 정해진 메뉴를 찾아 조작하는 방식이었다면, 플레오스 커넥트는 차량을 스마트 기기처럼 다루는 구조에 가깝고, 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테슬라와 폴스타 등 전기차 제조사들의 레이아웃과도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 뉴 그랜저에 처음 탑재된 글레오 AI는 이 같은 변화의 체감도를 높이는 기능이다. 운전자가 “창문을 열어줘”, "맛집 알려줘", "에어컨 높여줘" "OO로 안내해 줘"와 같은 기본적인 차량 제어 명령어를 말하면 바로 반응하고, 공조나 통풍 시트, 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 등 자주 쓰는 기능을 음성으로 제어하는 것은 운전 중 조작을 위해 시선을 아래로 내리지 않고도 주요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의성과 안전성 측면의 장점이 부각됐다.
대형 디스플레이 중심의 실내는 깔끔한 인상을 주지만, 대부분의 기능을 디스플레이에 차곡차곡 쌓아 놓아 기능 활성화 또는 비활성화를 위해 몇 차례 디스플레이를 터치해야 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운전 중 기능을 찾기 위해 시선을 화면에 오래 머물게 할 수 있다.
더 뉴 그랜저에 탑재된 글레오 AI와 같이 자주 쓰는 기능을 몇 마디 말로 처리해준다면 실사용 가치는 높아진다. 더 뉴 그랜저의 가격을 단순히 ‘비싸졌다’고만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모델은 하드웨어 사양뿐 아니라 차량 사용 방식의 변화까지 가격 판단에 포함해야 하는 차다.
그렇다고 플레오스 커넥트와 글레오 AI만으로 모든 소비자에게 가격이 적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 시승을 해보면 글레오 AI가 기존 음성인식보다 진화한 기능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복합 명령 처리나 일부 앱 연동, 사용자 적응성에서는 초기 단계의 한계도 분명하다.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부족한 서드파티 앱과 플레오스 커넥트 내비게이션의 업데이트 등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차량 기능이 디스플레이와 음성 명령 중심으로 이동할수록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소비자의 더 뉴 그랜저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수 있지만, 물리 버튼 중심의 직관적인 조작을 선호하는 소비자는 다소 적응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경쟁 모델과 비교하면 가격 판단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기아 K8은 더 낮은 시작 가격을 앞세워 준대형 세단 시장에서 여전히 강한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다. 가격만 놓고 보면 K8이 진입 장벽이 낮다. 반면 더 뉴 그랜저는 플레오스 커넥트와 글레오 AI를 앞세워 차량 내 소프트웨어 경험에서 차별화를 시도한다.
결국 더 뉴 그랜저의 구매 가치는 소비자가 어떤 기능을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최신 인포테인먼트와 AI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소비자라면 더 뉴 그랜저의 가격은 충분히 납득 가능한 수준이다. 플레오스 커넥트와 글레오 AI는 부분변경 모델의 가장 큰 변화이자 핵심이며, 차량을 오래 보유할수록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앱 생태계 확장의 가치를 체감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정숙성, 공간, 연비, 가격만을 기준으로 준대형 세단을 고르는 소비자라면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플레오스 커넥트와 글레오 AI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 기능들이 구매 만족도를 크게 높이는 요소가 되기 어렵다. 이 경우 K8이나 기존 그랜저 재고, 인증 중고차까지 함께 비교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하이브리드 모델을 고려하는 소비자라면 가격과 세제 혜택 확정 여부도 함께 봐야 한다. 더 뉴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지만, 현대차가 공개한 시작 가격은 세제 혜택 적용 전 기준이다. 실제 구매 가격은 환경 친화적 자동차 고시 완료 이후 더 명확해진다.
부분변경 모델 출시와 함께 평균 300만 원 정도 인상된 더 뉴 그랜저의 가격은 낮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 모델은 단순히 외관을 다듬은 것이 아니라, 현대차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전환을 플래그십 세단에 처음 적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차량을 스마트 기기처럼 업데이트되고 확장되는 플랫폼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에게는 구매 매력이 충분하다.
반대로 익숙한 조작감과 가격 대비 기본 상품성을 우선하는 소비자라면 플레오스 커넥트와 글레오 AI의 신선함보다 실제 구매 조건과 경쟁 모델의 가격 차이를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더 뉴 그랜저는 모두에게 무조건 합리적인 차라기보다, 소프트웨어 경험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구매 단계에서 평가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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