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초 만에 흔적도 없이.... 일본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아동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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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초 만에 흔적도 없이.... 일본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아동 실종사건'

위키트리 2026-06-01 13:33:00 신고

1989년 3월 7일 실종된 마쓰오카 신야. / 일본 마구마구 뉴스

1989년 3월 7일 오전 8시. 일본 도쿠시마현 미마군 사다미쓰초(현 쓰루기초)의 한 산간 마을. 아버지가 눈을 돌린 것은 단 40초였다. 두 살배기 막내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건네주고 현관 앞으로 돌아왔는데 거기 있어야 할 네 살 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신발도, 옷도, 저항의 흔적도 없었다. 그 어떤 단서도 남지 않았다. 마쓰오카 신야. 3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일본 미아 명단에 올라 있는 이름이다.

외부인이 알 수 없는 곳에서

마쓰오카 가족은 원래 이바라키현 우시쿠시에 살았다. 아버지 마사노부는 소프트웨어 기술자였다. 심야 잔업과 휴일 출근이 반복되던 삶을 바꾸고 싶었던 그는 1989년 초 외자계 컴퓨터 회사로 이직했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해 3월 5일 아내 게이코의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가족은 이튿날 도쿠시마현 고마쓰시마시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한 뒤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사다미쓰초 친척 집에 머물게 됐다. 이 마을은 표고 200m의 산간 지역 임도 끝 부근에 자리한 곳으로, 공도에서 산 비탈면을 따라 사도(私道)가 이어지고 그 비탈 위에 친척 집이 세워져 있었다. 주변에 다른 집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조차 마쓰오카 가족이 이곳을 방문한 사실을 신야 실종 이후에야 알았다고 한다.

1989년 3월 7일 실종된 마쓰오카 신야. / 라이브도어

사건 당일 아침. 마사노부는 세 남매와 사촌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를 산책했다. 아침 식사 전이었기에 10분 정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아버지를 따라왔다. 마사노부는 현관까지 이어진 10m 남짓한 돌계단을 올라가는 순간까지 신야가 따라오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신야가 더 놀고 싶어 하는 눈치였기에 아버지는 안고 있던 두 살배기를 집 안의 어머니에게 건네주고 현관 앞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걸린 시간은 약 40초. 신야는 사라졌다.

가족과 친척, 동네 소방단이 즉시 수색에 나섰지만 찾지 못했다. 가족은 오전 10시 경찰에 신고했다. 사다미쓰 경찰서 전 직원 30명의 절반이 현장에 달려왔다. 다음 날에는 현 경찰 기동대, 소방대원, 지역 소방단, 일반 시민까지 합쳐 200명이 동원됐다. 경찰견도 투입됐다. 3개월에 걸친 대규모 수색이었지만 신야의 흔적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현장은 마을 공도의 막다른 곳이어서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었다. 실종 당시 100m 떨어진 밭에서 농작업을 하고 있던 사람은 차량을 전혀 보지 못했다. 마쓰오카 가족이 친척 집에 온 사실 자체가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교통사고 흔적도 없었다. 경찰은 "사건에 휘말렸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주변 산악 수색에 집중했지만 결국 허탕이었다.

전화기 너머 정체불명의 목소리

실종 9일째 되던 날에 친척 집 전화기가 울렸다. 가족이 이바라키현 집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이었다. 경찰은 이미 전화기에 녹음기를 달아두고 있었다. 마사노부가 전화를 받자 "사모님 계세요?"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쿠시마 특유의 방언 억양이었다. 게이코가 전화를 바꾸자 여성은 자신을 "나카하라 마리코의 엄마"라고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이케이 유치원 달 반 학부형입니다. 유치원에서 위로금을 모았는데 어디로 보내드리면 될까요? 이제 곧 돌아오시나요?"

마쓰오카 신야 실종 사건을 다루는 유튜브 영상.

세이케이 유치원은 신야의 누나가 다니던 곳이었다. 게이코는 이튿날 돌아간다고 답했고, 그 이후 그 여성에게서 연락은 다시 오지 않았다. 며칠 후 유치원 측에 확인하자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위로금을 모은 사실도 없고, 나카하라 마리코라는 아이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전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도쿠시마 방언을 쓴 여성이 어떻게 이바라키현에 사는 마쓰오카 가족의 친척 집 전화번호를 알았는가. 도쿠시마에 있으면서 어떻게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이바라키 유치원의 이름과 반 이름까지 알고 있었는가. 전화를 바꾸는 순간 마사노부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도쿠시마 사투리야"라고 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여성은 마쓰오카 가족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누군가였다. 하지만 이 전화가 수사의 단서가 되는 일은 끝내 없었다.

일본 인터넷 게시물에는 나중에 밝혀진 추가 정황도 전해진다. 몇 년 후 전국 생방송에서 제보를 받던 중,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익명 제보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당시 사회자가 실수로 "OO에 사시는 OO 님의 제보입니다"라고 이름과 지역을 공개해버렸고, 제보자는 "익명으로 한다고 했잖아요"라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그 목소리는 다시는 들을 수 없었다.

전국에서 잇따른 목격 정보들

마사노부는 회사를 그만뒀다. 아들을 찾을 시간을 한 시간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자영업으로 전환했다. 50회가 넘는 TV 출연으로 정보 제공을 호소했고, 자택 전화번호까지 공개했다. 목격 정보는 전국 각지에서 쏟아졌다. 신뢰도가 높다고 여겨진 것만도 여러 건이었다.

1989년 5월, 도쿠시마현 해부군 히와사초 벤텐하마 해안가에서 신야를 닮은 아이를 안고 바다를 바라보는 수상한 남성이 목격됐다. 도쿠시마 출신의 목격자는 신야의 실종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려 다가갔지만, 남성은 아이를 감추듯 몸을 돌리더니 근처에 세워둔 흰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다. 히와사는 북한 선박이 기항하는 항구 중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이 목격담은 북한 납치설의 근거 중 하나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1990년 4월, 도쿠시마의 한 주부가 "시내에서 신야를 봤다. 틀림없다"고 연락을 해왔다. 마사노부가 즉시 그 인물과 만나 도쿠시마현 경찰 본부에 아이의 신원 확인을 의뢰했다. 그런데 그 후 본부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어 직접 전화를 넣자 담당 경부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정신이 없었다"고 답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다.

같은 해 야마가타현 요네자와시의 한 백화점 앞에서 신야를 닮은 남자아이를 봤다는 제보도 들어왔다. 마사노부가 직접 요네자와로 달려가 전단지를 돌리자 "우에스기 공원에서 봤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그 이후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1991년에는 시코쿠 88개 사찰 순례 도중 하얀 순례복 차림의 5, 6세 남자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수상한 중년 남녀를 목격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게이코는 87번, 88번째 사찰에서 그 세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끝내 오지 않았다.

수사의 공백과 녹음테이프의 의혹

라이브도어 뉴스가 올해 유튜브 채널 '나나자파'의 탐방 영상을 토대로 전한 내용에 따르면, 수사 과정에서도 석연찮은 대목이 여러 차례 나왔다. 친척 집에 걸려온 '나카하라 마리코의 엄마' 전화는 녹음됐지만, 경찰이 테이프 대출을 한 차례 거부했고, 나중에 돌려받은 테이프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지워져 있었다고 한다. 유력한 목격 제보가 들어왔을 때 담당 형사 집안의 사정을 이유로 수사가 움직이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경찰이 뒤에서 연결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종 현장의 지리적 조건도 수수께끼를 더 깊게 만든다. 막다른 외길 산골마을에서 농작업 중이던 주민이 차를 목격하지 못한 이상,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려면 마을 전체가 공범이 되지 않는 한 목격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독수리 같은 맹금류가 아이를 낚아챘다는 황당한 설까지 나왔을 정도로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실제로 일본 자생 검독수리는 개체가 작아 불가능하다는 반론도 있었지만, 그만큼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37년이 지나도 닫히지 않는 파일

게이코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들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마사노부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수십 년을 자녀 수색에 바쳤다. 일본 미결 아동 실종 사건을 다루는 인터넷 게시물과 유튜브 채널에서 '마쓰오카 신야 사건'은 지금도 꾸준히 소환된다. 2026년 현재 신야가 살아 있다면 만 41세다.

현지 매체와 게시물을 종합하면 이 사건의 핵심 의문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외부에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 막다른 산길에서 40초 만에 아이가 사라진 경위.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이바라키의 유치원 반 이름까지 알고 전화를 건 정체불명의 여성. 그리고 그 여성의 목소리가 지워진 녹음테이프. 37년이 지나도록 이 세 가지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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