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피어날 때는 분명 수줍은 흰색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랗고 분홍빛 가득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주변 환경에 맞춰 수시로 색을 바꾸어 ‘변덕’이라는 오명을 얻었지만, 사실 그 속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진심’을 품고 있는 반전의 식물. 바로 여름의 전령사 수국이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도리어 선명한 색을 내뿜는 이 여름 식물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과학적 반전이 숨어 있다. 화려한 자태 뒤에 숨겨진 가짜 꽃잎의 실체부터, 집에서 실패 없이 키우는 올바른 관리 요령까지 세세히 짚어봤다.
화려함에 속았을까? 꽃잎 뒤에 숨은 '가짜 꽃'의 실체
식물학적으로 수국은 겨울에 잎이 지는 키 작은 나무에 속하며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자란다. 보통 다 자라면 어른 허리 높이인 1m 안팎까지 크지만, 품종에 따라 화분에서 자라는 20cm짜리 작은 크기부터 줄기를 길게 뻗는 덩굴성까지 종류가 여러 가지다.
우리가 초여름인 6~7월에 마주하는 수국에는 재미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부분은 진짜 꽃잎이 아니라 꽃을 안전하게 받쳐주는 '꽃받침'이다. 씨앗을 맺지 못하는 '가짜 꽃'이기 때문에 벌과 나비를 유혹할 향기는 나지 않는다. 대신 작은 꽃받침 수십 개가 공 모양으로 둥글게 모여 피어나 소복하고 화사한 부피감을 자랑한다.
우리나라 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산수국'이나 제주도에 사는 '탐라산수국'도 수국의 가까운 친척이다. 이들은 수국과 달리 가장자리에만 가짜 꽃이 피고, 안쪽에는 암술과 수술을 갖춘 진짜 작은 꽃들이 촘촘히 박혀 있어 생명이 자라는 신비로움을 더한다.
카멜레온 같은 꽃, 흙의 성질에 따른 색 변화 원리
수국은 심어진 흙의 성질에 따라 꽃 색깔이 변하는 신비로운 특성을 지녔다. 이는 꽃 내부에 포함된 '델피니딘'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이 성분이 흙 속에 있는 알루미늄 물질과 결합하면 푸른빛을 띠고, 결합하지 못하면 분홍빛을 유지하는 성질이 있다.
흙이 신맛을 띠는 산성 상태일 때는 알루미늄이 잘 녹아 뿌리로 쉽게 흡수되므로 푸른색 꽃이 피어난다. 반대로 알칼리성 상태일 때는 알루미늄이 흙 속에서 앙금으로 굳어 뿌리로 전해지지 못하므로 분홍색 꽃이 된다. 처음 피어날 때는 흰색이나 옅은 녹색이었다가 시간이 흐르며 흙에 맞춰 옷을 갈아입는 셈이다.
수국은 흙의 성질에 따라 산성에서는 파란색, 알칼리성에서는 분홍색이나 보라색으로 얼굴을 바꾼다. 이처럼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 때문에 '변덕'이나 '변심'이라는 꽃말을 얻었다. 하지만 겉모습이 바뀔 뿐 속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진심’과 ‘진실된 마음’이라는 뜻도 함께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이는 사랑이 늘 한결같을 수만은 없다는 삶의 진리를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외형의 색은 변할지언정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마음은 변치 않는다는 깊은 뜻을 되새기게 만든다.
병충해 예방 관리와 생활 속 숨은 쓰임새
바람이 잘 통하지 않거나 습도가 과도하게 높으면 수국도 병치레를 한다. 잎사귀에 하얀 먼지가 앉은 것처럼 보이는 '흰가루병'이나 거뭇한 자국이 생기는 '점무늬병', 혹은 진딧물 같은 벌레가 생기기 쉽다. 증상이 나타나면 해당 화분을 다른 식물들과 재빨리 격리하고 친환경 살충제나 살균제를 뿌려 대처해야 한다. 사전에 병을 막으려면 빽빽해진 가지를 알맞게 솎아내어 공기 길을 열어주고 햇빛이 중심부까지 골고루 스며들도록 관리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여름철 자라난 가지를 잘라 흙에 심는 삽목 방식을 거치면 번식도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이처럼 기르는 재미가 쏠쏠한 수국은 아름다운 겉모습 외에 쓰임새도 풍부하다. 한방에서는 뿌리와 잎을 말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심한 열이 날 때 가라앉히는 약재로 소중히 다루어 왔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봄철 어린잎을 말려 '수국차'로 즐기는데, 설탕을 멀리해야 하는 당뇨 환자들이 단맛을 내는 대용품으로 애용하기도 한다. 무더위 속 시원한 청량감을 안겨주는 수국은 알수록 우리 삶에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는 이로운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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