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사회 "공관 투표 고수는 참정권을 주는 척만 하는 것" 비판
투표소 확대·기간 연장·우편·전자투표 도입 등 제도 개선 요구 봇물
선관위 "국가별 인프라 달라 우편·전자투표 도입에 어려움…해킹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강성철·박현수 기자 = 재외동포의 실질적 참정권 보장을 위한 우편·전자투표 도입 여부가 핵심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우편·전자투표 도입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재외동포청 업무보고에서 "우편투표 도입을 비롯한 재외국민의 참정권 확대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 "투표소 확대·투표 기간 연장해야…IT 강국이 전자투표 도입 못 할 이유 없어"
재외선거 제도 개선과 관련해 재외동포들은 복잡한 사전등록 절차 등 현행 제도의 불합리함을 성토하며 다양한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고상구 세계한인총연합회 회장은 "사전선거 등록과 당일 투표로 최소 2일 이상 생업을 포기하고 공관을 찾아야 하는 불편함이 여전하다"며 "신분증 확인으로 당일 투표가 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행 제도상 국외부재자 신고 기간은 선거일 전 150일에서 60일 사이로 한정돼 있어 대다수 유권자가 등록 자체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우편·전자투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고탁희 중국한인회총연합회 회장은 "현재 25만 명당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기준을 적용하면 200만 명의 재외유권자는 9개 이상의 선거구를 가진 셈인데, 여기서 10%에도 못 미치는 투표율이 나오는데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책임 유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IT 강국인 대한민국이 전자투표를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사전등록은 여권으로 가능하지만, 투표 당일에는 차별의 상징인 외국인등록증을 소지할 것을 요구하는 현 제도가 또 다른 차별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선관위, 공정성과 보안 이유로 부정적 입장
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공정성과 보안 문제 등을 이유로 우편·전자 투표 도입에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강호성 선관위 재외선거팀장은 "우편투표는 허위 또는 대리 신고로 신뢰도가 낮고 국가별로 다른 우편 제도로 인한 장애가 존재한다"며 "전자투표도 국가별 통신·인터넷 환경이 달라 동일한 시스템 도입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재외선거구가 별도로 존재하는 프랑스와 달리, 한국은 재외선거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국내 선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선관위는 공관 투표소라는 통제된 공간이 아닌 집이나 직장에서 투표할 경우, 한인회 간부나 가족, 고용주 등 타인의 압박에 의한 '대리투표'나 '강압 투표'를 원천 차단하기 어려우므로 '비밀·자유 선거 원칙'을 훼손할 가능성에서도 우려를 표한다.
또 북한 등 특정 국가 배후의 해킹 조직이 재외선거 온라인 시스템을 표적으로 사이버 테러를 감행할 경우 대한민국 헌정사 전체가 흔들리는 초유의 부정선거 시비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전자투표 도입을 민감한 사항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동포사회와 학계 등은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블록체인 기술, 금융권 금융인증서, 모바일 신분증 체계를 갖추고 있으므로 문제가 안 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보안이 무서워 도입 안 하는 건 IT 강국의 직무 유기"라고 강하게 반발한다. 세계한인총연합회 관계자는 "전 국민이 스마트폰으로 수천만 원을 송금하는 뱅킹시스템은 신뢰하면서 기술적 보완이 가능한 전자투표는 해킹 우려 이유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핑계"라고 했다.
문은영 전 건국대 시민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기존 선거 원칙의 틀에서 전자투표가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닥쳐 급하게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목표와 규범적 가치판단 기준을 마련해 차근히 준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정부·국회, 제도 개선의 핵심으로 투표 방식 다변화 추진
재외동포청은 블록체인 기술과 ARS 본인확인 방식을 활용한 전자투표, 그리고 우편투표의 병행 도입을 국회 및 관계기관과 지속 협의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이재강·이해식 의원이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현재 심사 중이다.
이재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편투표 도입과 향후 전자투표까지 검토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법안의 목적"이라며 "국민 참정권 보장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우편투표 도입에 따른 대리투표 문제, 국가별 인프라 격차, 인력 부족 등의 과제를 보완해 관련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올해 중 통과를 목표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김석기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은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해킹 기술도 함께 발전하고 있다"며 "우편투표를 안정적으로 먼저 실시하고 전자투표는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영배 국회 외통위 민주당 간사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 신뢰성을 문제 삼는 기류가 있는 만큼,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으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면서도 "일단 우편투표 문제를 집중적으로 먼저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편투표 도입 시 재외선거인 수가 최소 두 배 증가하고 이 중 70%가 우편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정진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은 "현재 국회에 재외선거 제도 개선 관련 발의 법안이 3개 있지만 정치개혁특위에서 주요 안건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우편·전자투표 도입 문제와 별도로 투표소 확대 등의 방안도 구체화하고 있다. 현행 '재외국민 3만 명당 1개소, 공관별 최대 3개소' 기준을 '2만 명당 1개소, 공관별 최대 4개소'로 완화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격오지 거주자를 위해 담당 공무원이 지정 지역을 순회하는 '순회 투표소' 도입과 현행 6일인 재외투표 기간 확대, 투표 시간 연장(현행 오전 8시~오후 5시 → 국내 수준으로 확대)도 추진된다.
행정 절차 간소화도 병행 추진한다. 국외부재자 신고 기간을 현행 '선거일 전 150일~60일'에서 '선거일 전 1년~60일'로 늘리고, 재외국민등록과 재외선거 제도를 연계해 사전등록 절차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아울러 공관 내 '동포 전담영사'를 파견해 재외국민 등록 및 재외선거 관리·홍보를 상시 수행할 계획이다.
김경협 동포청장은 "재외선거 제도 개선은 국회의 입법적 결단과 선거 주무 부서인 선관위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선관위도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최소 1년 이상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만큼, 2028년 제23대 국회의원 선거에 적용하려면 올해 안에 기본 방향이라도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리스크가 없는 완벽한 제도란 없다. 교통사고가 걱정이라고 차량 운행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재외선거는 시혜가 아닌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 권리"라고 강조했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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