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과 젊은 악단의 환상 호흡…"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연주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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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과 젊은 악단의 환상 호흡…"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연주 황홀"

이데일리 2026-06-01 05:35:00 신고

[이데일리 장병호 손의연 기자] 백발의 바이올린 거장 핀커스 주커만(78)의 활이 그의 악기에서 점점 멀어지고, 콘서트홀에 남아있던 잔음마저 사라지자 객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계속 되는 박수 소리에 네 차례 커튼콜로 화답했던 주커만은 KG필하모닉오케스트라(KG필)의 이호준 제 1 바이올린 수석을 뒤에서 격하게 끌어 안은 뒤 관객들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고 무대를 떠났다. 8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바이올린 거장’ 주커만의 공연은 여전히 깊이 있는 음악성과 탁월한 테크닉으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과 KG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G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위드(with) 핀커스 주커만-마스터피스 시리즈 베토벤’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KG그룹 곽재선문화재단 주최로 지난 달 3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G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위드(with) 핀커스 주커만-마스터피스 시리즈 베토벤’ 공연은 만개한 봄의 절정을 알리는 음악 축제와 같은 자리였다.

특히 이번 공연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거장 주커만의 8년 만의 내한이자, 한국의 젊은 악단 KG필과의 협연으로 클래식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KG필의 새로운 기획공연 ‘마스터피스 시리즈’ 첫 무대로 베토벤의 음악세계를 조명했다.

1부는 주커만이 협연하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 장식했다. 베토벤이 남긴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고전주의의 형식미와 베토벤 특유의 웅장함이 잘 녹아든 걸작 중의 걸작이다. 1806년 초연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1844년 당시 13세였던 멘델스존 지휘로 연주된 뒤 바이올린 협주곡하면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로 오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주커만은 공연에 앞서 베토벤의 음악적 표현에 가장 적합한 보잉(bowing, 활을 이용해 현을 문질러 소리를 내는 동작)과 핑거링(fingering, 손가락으로 현을 누르며 음을 내는 방법)을 적은 악보를 직접 보내왔을 정도로 이번 공연에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과 KG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G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위드(with) 핀커스 주커만-마스터피스 시리즈 베토벤’에서 관객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파트(String Section)에서 보잉과 핑거링은 음악의 호흡·색채·긴장·감정 구조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같은 음표를 연주해도 보잉과 핑거링의 선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들릴 정도로 음색과 표현이 변한다. 뛰어난 지휘자와 연주자들은 ‘어떻게 활을 쓰고, 어느 줄에서 연주할 것인지’로 오케스트라의 개성을 만들어낸다.

1악장부터 거장다운 원숙한 연주가 빛났다. 다섯 번의 팀파니 연주를 시작으로 목관과 관현악의 따뜻한 음색이 펼쳐진 뒤, 주커만의 독주가 시작됐다. 주커만의 부드러운 음색, 그리고 이를 받쳐주는 KG필 단원들의 단단한 연주가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어진 2악장은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바이올린 독주가 관객을 환상적인 세계로 이끌었다. 악장간 휴식없이 곧바로 이어진 3악장에서 주커만은 고, 저음역을 오가는 화려한 기교로 클래식의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2부에선 KG필 음악감독인 서희태 지휘자가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올라 연주 전 10여 분간 곡 해설을 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클래식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대중과 클래식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KG필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날 2부에서 연주한 곡은 베토벤 교향곡 7번. 서희태 지휘자는 베토벤과 나폴레옹의 관계 등 역사 속에서 베토벤 교향곡 7번이 탄생한 계기를 쉽게 설명해 관객들의 호기심을 북돋았다.

서희태 KG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G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위드(with) 핀커스 주커만-마스터피스 시리즈 베토벤’에서 공연에 앞서 곡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이어 베토벤 교향곡 7번이 연주됐다. 1악장부터 빠르게 시작하는 일반적인 교향곡 형식에서 벗어나 1악장과 2악장은 느리게 시작해 3악장과 4악장을 오히려 빠르고 경쾌하게 꾸며 바그너가 ‘춤의 성화(聖化)’라고 평가한 곡이기도 하다.

올해로 창단 2년차를 맞이한 KG필은 기본에 충실한 연주로 베토벤의 정수를 선사했다. 특히 여러 영화에 삽입돼 친숙한 2악장에선 비장하고 웅장한 연주를 선사했고, 마지막 4악장에서는 현란한 리듬을 자유자재로 소화하며 젊은 악단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열정을 무대에 펼쳐보였다.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이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G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위드(with) 핀커스 주커만-마스터피스 시리즈 베토벤’에서 공연이 끝난 뒤 팬 사인회를 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여운은 오래됐다. 특히 주커만의 사인회에는 100여 명 넘는 클래식 팬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거장의 변함없는 인기를 증명했다. 주커만의 오래된 레코드(LP), 악보 등에 사인을 받아가는 팬들로 북적였다.

이상민 워너뮤직코리아 이사는 “요즘 트렌드는 빠르고 다이나믹한 해석인데 주커만은 전통 그대로의 느리고 클래식한 연주를 제대로 들려줬다”면서 “KG필이 거장의 품격 있는 연주를 잘 받쳐줘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연주가 완성됐다”고 강조했다.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는 “거장과 신생 오케스트라의 협연은 원래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주커만과 KG필의 연주는 훌륭한 조화를 이뤄냈다”며 “관록의 비르투오소(기교가 뛰어난 연주자)와 젊은 악단이 환상적인 호흡으로 멋진 소리를 만들어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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