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경포호에서 멀지 않은 비구니 사찰 인월사에 새로 들어선 담마센터가 올해 제53회 세계건축상 그랑프리를 받았다. 터키, 인도, 이란, 베트남, 중국, 미국, 멕시코 등 18개국에서 출품된 건축물들과 겨룬 끝에 대상에 오른 건물이다. 작은 사찰 안에 마련된 명상 공간이 국제 건축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면서 인월사가 지나온 시간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담마센터가 더 눈에 들어오는 건 건물이 들어선 자리의 사연 때문이다. 이곳은 2023년 강릉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던 비구니 사찰 인월사 터다. 당시 불길은 경포호 주변까지 번졌고, 스님들은 승복 한 벌만 챙긴 채 급히 몸을 피했다. 수십 년간 예불과 수행이 이어지던 절집은 불전과 요사채 대부분을 잃었다.
화재 뒤 인월사 재건은 전국 불자와 스님들의 후원 속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 건물 설계는 건축가 윤경식이 맡았고, 잿더미로 남았던 자리에는 3년이 채 지나기 전 담마센터가 들어섰다. 산불의 흔적이 남아 있던 터는 다시 예불과 명상이 머무는 공간이 됐고, 담마센터는 불에 탄 사찰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 건축물로 자리 잡았다.
초승달 곡선이 사찰 전체를 감싸게 된 배경
담마센터의 외형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곧게 뻗은 선이 드물다는 점이다. 건물은 완만한 곡선으로 감싸여 있고, 이 형태는 불교 경전 속 부처의 눈썹은 초승달과 같다는 구절에서 출발했다. 설계는 좁고 긴 대지 조건을 살리면서 중앙 로비를 중심에 두고, 법당과 명상 공간이 부드럽게 맞물리도록 짜였다.
건축가 윤경식은 기와지붕이나 단청을 그대로 되살리는 방식 대신 다른 길을 골랐다. 불교가 품은 뜻을 현재의 건축 재료와 기술로 풀어내는 데 무게를 둔 것이다. 그래서 담마센터는 옛 사찰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불교적 이미지를 오늘의 건축 언어로 옮긴 건물에 가깝다. 국제 심사단이 담마센터에 그랑프리를 준 배경에도 이런 접근이 있다. 익숙한 사찰 양식을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수행 공간이 지닌 고요함과 상징을 건물 전체에 담아냈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위빠사나 수행과 사찰의 역사, 경포호와 함께 쌓인 시간
인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비구니 사찰이다. 신라시대부터 이어진 터 위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사찰 이름인 ‘印月寺’에는 경포호 물빛에 비친 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약 45년 전 대성 스님이 중건한 뒤에는 재범 스님이 사찰을 이어받아 예불과 수행의 자리를 지켜왔다.
인월사가 강릉에서 수행 도량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5년 담마선원이 문을 열면서부터다. 담마선원에서는 초기 불교에서 비롯된 위빠사나 수행을 이어왔다. 위빠사나는 호흡과 몸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살피는 명상법이다. 인월사는 해마다 네 차례 집중 수행 프로그램을 열어 수행자들을 받아왔고, 강릉에서 위빠사나를 꾸준히 진행하는 도량이 드물었던 만큼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사찰이 됐다.
2023년 산불로 절집 대부분이 사라진 뒤에도 인월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데에는 오랜 수행의 시간이 있었다. 건물은 불에 탔지만, 이곳에서 이어져 온 예불과 명상, 수행자들의 발걸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담마센터 재건은 새 건물을 올리는 일에 머물지 않았다. 인월사가 품어온 수행의 자리를 다시 세우고, 불길 뒤에도 끊기지 않은 시간을 오늘의 공간으로 옮기는 작업에 가까웠다.
낮과 밤이 달라 보이는 벽, 인드라망을 벽돌로 옮기다
담마센터 안에서 먼저 마주하게 되는 벽면은 ‘인드라 월’이다. 이름은 화엄 사상에 나오는 인드라망에서 가져왔다. 인드라망은 모든 것이 서로 이어져 있고, 서로를 비춘다는 불교의 생각을 담은 말이다. 담마센터는 이 뜻을 색이 다른 벽돌 블록과 비워둔 틈으로 풀어냈다. 벽돌을 촘촘히 쌓아 올리는 대신, 빛이 지날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면서 벽 자체가 낮과 밤에 따라 다르게 보이도록 했다.
낮에는 바깥 햇빛이 벽돌 사이를 지나 내부로 스며든다. 시간이 바뀌면 빛의 각도도 달라지고, 벽 안쪽에 맺히는 그림자도 함께 달라진다. 밤이 되면 반대로 내부 조명이 틈을 따라 바깥으로 번진다. 낮에는 빛을 받아들이는 벽이었다가, 밤에는 안쪽의 빛을 밖으로 내보내는 벽이 되는 셈이다. 인드라 월은 닫힌 벽이라기보다 빛이 드나드는 장치에 가깝고, 담마센터가 가진 고요한 분위기도 이 벽에서 시작된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진입부의 얕은 반사 연못을 지나게 된다. 연못에는 ‘업경대의 거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불교에서 업경대는 사람이 살아오며 지은 행위를 비추는 거울을 뜻한다. 담마센터는 수행 공간으로 들어서는 길 앞에 이 연못을 두고, 방문자가 물 위에 비친 자기 모습을 먼저 마주하도록 했다.
강릉 여행 코스로 자리잡은 재건 사찰
담마센터는 경포해변과 경포호에서 멀지 않아 강릉 여행길에 함께 넣기 좋다. 바다와 호수를 둘러본 뒤 경포 현대아파트 안쪽 길로 들어가면 인월사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강릉솔향수목원, 경포해변, 경포호 주변 명소와 묶어 돌아보기에도 부담이 크지 않고, 조계종 포교원이 운영하는 강릉 해맞이길 순례 코스에도 포함돼 있어 걷기 여행 중 들르는 방문객도 있다.
2026년에는 건축가 윤경식이 직접 참여하는 건축 명상 투어도 운영된다. 설계자가 담마센터의 곡선 형태와 인드라 월, 반사 연못, 명상 공간에 담긴 뜻을 현장에서 설명하는 방식이다. 경포호 주변을 둘러보는 여행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산불 뒤 다시 세워진 사찰과 오늘의 수행 공간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일정이 되는 셈이다.
방문 전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운영 정보
인월사 담마센터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매주 월요일은 쉬는 날이며, 별도 입장료는 없다. 차량으로 찾는 방문객은 경내 주차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담마센터는 지금도 예불과 명상, 수행이 이뤄지는 사찰 공간이다. 일반 관광지처럼 빠르게 둘러보기보다 발걸음을 낮추고 조용히 머무는 쪽에 가깝다. 내부에서는 큰 소리로 대화하거나 오래 사진을 찍는 행동은 삼가는 편이 좋다. 수행 프로그램이 있는 날에는 일부 공간 출입이 어려울 수 있어, 출발 전 운영 여부를 확인해두는 편이 안전하다.
건축상을 받은 건물이라는 점 때문에 담마센터를 찾는 사람도 있지만, 이곳은 본래 수행자를 위한 공간이다. 곡선으로 감싼 외형과 빛이 드나드는 벽, 반사 연못을 살펴보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그 안에서 잠시 멈춰 서는 시간이 더 잘 어울린다. 경포호 주변 여행길에 들를 수 있는 건축 명소이면서, 지금도 조용한 예불과 명상이 이어지는 사찰이라는 점이 담마센터를 다른 여행지와 다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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