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관세 압박과 중동 전쟁, 고환율, 공급망 불안까지. 지난 1년간 한국 경제는 거센 대내외 변수의 한복판에 놓였다. 하지만 시장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박스피’로 불리던 한국 증시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 중 하나로 떠올랐고 글로벌 자금도 다시 한국으로 향했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당시 2700선 수준이던 코스피는 1년 만에 8000선을 돌파했다. 지수가 약 3배 가까이 오른 것으로 주요 글로벌 증시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상승세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코스피 5000 시대’를 핵심 경제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후 정부는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강화하고 집중투표제를 확대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추진, 저PBR 기업 개선 압박 등도 이어졌다. 한국거래소 역시 상장폐지 기준 강화와 부실기업 퇴출 기조를 강화하며 시장 체질 개선에 속도를 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직접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찾아 해외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국 자본시장 개혁 의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주가조작과 미공개정보 이용에 대한 처벌도 한층 강화됐다. 이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주가조작 세력은 패가망신이 뭔지 보여주겠다”고 언급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정책 변화는 시장으로 이어졌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감 속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도 거셌다. 한국 증시 반등의 또 다른 축은 AI와 반도체였다. 글로벌 AI 투자 경쟁이 본격화되며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증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반도체 업황도 급반등했다. 상반기에는 조선·방산·원전주가 증시를 끌어올렸다면 하반기에는 AI와 반도체가 시장 주도주로 자리 잡았다.
정부는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 추진과 함께 국민성장펀드 등을 도입하며 AI 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였다.
시장 위상이 달라지면서 금융권 지형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 은행 중심이던 금융산업 구조에서 최근에는 증권사들이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 증시 거래대금과 투자은행(IB) 수익이 급증하면서 대형 증권사들도 글로벌 IB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국내 증권사들이 단순 브로커리지를 넘어 글로벌 투자은행 형태로 진화할 수 있는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우려는 남아 있다. 짧은 기간 동안 증시가 급등하면서 AI 버블 가능성과 과열 논란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미국 금리 정책과 중동 지정학 리스크, 반도체 업황 사이클 변화 등도 여전히 변수로 꼽힌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상승장이 단순 테마 랠리를 넘어 한국 자본시장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에 더 주목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과거 한국 증시는 글로벌 시장에서 늘 할인받는 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정책·산업·자금 흐름이 동시에 바뀌고 있다”며 “한국 증시가 글로벌 중심 시장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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