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안보포럼에서 중국과 일본이 날 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군국주의의 부활을 경고하는 중국 측 발언에 일본이 '핵 대량 보유국의 이중잣대'라며 즉각 응수한 것이다.
중국 국방대 멍샹칭 교수가 이번 충돌의 포문을 열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는 30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대화에서 '전략적 안정에 대한 위협 관리' 세션 발표자로 나서 패권주의적 움직임이 역내 안보를 흔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도쿄재판 개정 80주년을 상기시키며 멍 교수는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2차 대전 전범 행위를 미화하고 침략의 역사를 지우려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평화헌법 개정 논의, 비핵 3원칙 수정 움직임, 동맹국 핵무기 배치 가능성까지 일본의 안보정책 전반이 도마에 올랐다.
과거 침략의 상처를 안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 과연 일본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멍 교수는 반문했다. 군국주의 뿌리가 온전히 청산되지 않은 국가가 타국의 국방협력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직격탄도 날렸다.
이에 대한 일본의 반격은 신속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31일 연설 무대에 서서 논리적 모순을 지적했다. 핵무기와 전략폭격기를 다수 운용하는 국가가 그 어느 것도 보유하지 않은 일본에 '신군국주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반박이었다.
평화국가로서 걸어온 일본의 발자취는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있으며 근거 없는 비난으로 흔들릴 일은 없다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강조했다. 중국이라는 국명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벌어지는 불투명한 군비 확장과 의도를 알 수 없는 행동이 오해와 불신을 키운다며 우회적으로 겨냥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대화 의지도 내비쳤다. 둥쥔 중국 국방부장이 이번 회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양자회담 기회가 사라진 것에 솔직한 아쉬움을 표했다. 견해 차이가 클수록 소통이 더 필요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살상무기 수출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역내 파트너 국가들의 자체 방어력을 높이고 지역 안정에 기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중국이 미국을 대하는 태도다. 지난해 인도·태평양 전략과 대중 견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멍 교수는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의 발언을 언급하며 양국이 서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군사 관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기를 바란다는 당부도 곁들였다.
헤그세스 장관의 어조 역시 전년과 확연히 달랐다. 작년에는 중국을 '실제적이고 즉각적인 위협'으로 규정했으나, 이번에는 양국 관계가 수년 내 최상의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베이징 정상회담을 '역사적'이라고 표현한 것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완전한 해빙 분위기는 아니었다. 양측 모두 패권주의 반대라는 수사를 동원해 상대를 향한 견제 메시지를 남겼다. 헤그세스 장관은 어떤 국가도 패권적 행동으로 미국과 동맹의 안보를 위협할 수 없다고 못 박았고, 멍 교수는 진영 대결과 패권 추구가 역내 안정을 갉아먹고 있다고 맞받았다.
대만 이슈에서 중국의 원칙론도 재확인됐다. 멍 교수는 대만 독립 세력과 양안 평화는 공존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정상회담 성과를 훼손하지 않으려 미국과의 정면 대결은 자제하면서, 일본과 대만을 겨냥해 핵심 안보 메시지를 선명히 각인시키는 이중 전략을 구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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