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보라매병원을 찾은 한 환자가 의사의 질문에 답하자 컴퓨터 화면에는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는 내용이 실시간으로 정리됐다. 인공지능(AI)은 환자의 증상과 위내시경 결과, 과거 진료기록 등을 종합해 전원의뢰서를 자동으로 작성했다.
이후 서울대병원에는 해당 환자의 전원의뢰서와 함께 환자 관련 자료가 전송됐다. 디지털 문서가 아닌 이미지 형태의 캡처본도 적지 않았지만 AI는 문제없이 이를 읽어냈다. 서울대병원의 AI는 수십 장에 달하는 진료기록과 검사자료를 OCR(광학문자인식) 기술로 디지털화한 뒤 병원 내부 전산 시스템 형식에 맞게 변환했다. 이어 의료진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주요 진단 내용과 치료 경과를 자동으로 정리해 제공했다.
|
29일 AX(인공지능 전환) 스프린트 시연에서 서울대병원은 AI 기반 진료 연계 시스템을 선보였다. 기존 의료현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지금까지 의사는 환자를 상급병원으로 전원할 때 “특정 소견이 있어 진료를 의뢰한다”는 수준의 간략한 의뢰서만 작성하고, 상세 진료기록은 CD·USB에 담거나 종이로 출력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급병원 역시 다른 의료기관의 자료를 자체 시스템에 일일이 입력하기 어려워 처음부터 검사를 다시 진행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AX 스프린트 사업을 통해 이 같은 정보 단절 문제를 해소하고 환자 정보 이송 과정을 AI로 자동화해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의료기관 간 정보 공유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복지부는 2009년 진료정보교류시스템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2017년부터는 국가 단위 플랫폼으로 본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 의료기관이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병원 규모가 작을수록 참여율이 낮았다. 상급종합병원의 참여율은 100%였지만 지역 환자와 가장 밀접하게 접촉하는 1차 의료기관의 참여율은 23.8%에 그쳤다.
배경에는 의료기관마다 서로 다른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이 있다. 환자의 인적사항과 병력, 진찰 결과 등을 담고 있는 EMR은 의료정보의 핵심이지만 병원마다 데이터 구조와 입력 방식이 달라 상호 호환이 쉽지 않았다.
AX 스프린트 사업에서는 AI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서로 다른 형식의 원본 데이터를 AI가 해석한 뒤 해당 병원의 EMR 양식에 맞춰 자동으로 입력해 주는 방식이다. 별도의 대규모 표준화 작업 없이도 의료기관 간 정보 공유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정보 연계는 전원 과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퇴원 이후 회송 단계까지 확대될 수 있다. 기존에는 퇴원기록지 양식이 제각각이어서 환자가 입원 중 어떤 약을 처방받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원래 병원에 문의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AI는 입원 기간 동안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퇴원기록지와 회송 소견서를 자동으로 작성할 수 있다.
|
이를 통해 지역 의료기관과 상급종합병원이 환자를 일방적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진료 단계에 따라 주고받는 양방향 연계 체계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임상 현장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영철 서울대 헬스케어AI연구원장은 “100명의 차트를 반복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은 의료진의 정신적 소진을 유발한다”며 “AI를 활용하면 시간을 크게 줄이면서도 비슷한 수준의 정확도를 유지할 수 있어 현장의 수요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우선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올 하반기 서울·강원·전남 등 3개 권역에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공공의료 AI 고속도로’ 인프라를 구축한 뒤 AX 스프린트 사업을 본격 시행하고, 내년에는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복지부는 이를 통해 지역 의료기관과 상급종합병원 간 의뢰·회송 체계가 한층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방의료원뿐 아니라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환자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를 즉시 공유하고 수용 가능한 의료기관을 신속히 확인할 수 있다면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