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디어뉴스] 김상진 기자 = 비망록 – 정호승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서평 talk]
정호승의 「비망록」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슬픈 자화상 같은 시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끝내 부족한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마음, 그리고 오래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흔적이 담담하면서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시의 첫 구절은 매우 솔직하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더 따뜻하고 이타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 속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자신을 먼저 챙기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감싸 안는다. 시인은 그런 인간의 나약함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부족함을 정직하게 드러내며 독자 앞에 조용히 서 있다.
이어지는 구절은 더욱 쓸쓸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 기도를 하고 / 밤이면 고요히 /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고백에는 단정하고 맑은 삶을 향한 동경이 담겨 있다. 하지만 현실의 자신은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표현은 특히 강렬하다. 인간의 허물과 부끄러움을 ‘구겨진 속옷’에 비유한 장면은 너무 적나라해서 오히려 더 아프다. 사람은 누구나 괜찮은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하지만, 결국 살아가다 보면 감추고 싶은 상처와 초라함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인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가장 깊은 정서는 마지막 연에서 드러난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떠난 사랑은 시간이 흐른다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익숙한 별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오래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별은 아름답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시인은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라고 말한다. 빛나는 기억은 동시에 깊은 통증이 된다.
그래서 마지막의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는 문장은 먹먹하다. 사람은 결국 사랑과 후회, 미련과 부족함 속에서 평생을 흔들리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담담히 인정하는 듯하다.
정호승의 시는 늘 인간의 약함을 꾸짖지 않는다. 오히려 완전하지 못한 삶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다. 「비망록」 역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끝내 서툴렀던 한 인간의 고백이며,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이 시는 말한다.
사람은
늘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끝내 부족한 자신을 안은 채
사랑과 후회 사이를 허둥거리며
한 생애를 살아가는 존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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