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모터스포츠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새겨졌다.
주인공은 바로 정의철(오네 레이싱)이다. 정의철은 24일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아시아 모터스포츠 카니발’로 열린 2026 오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토요타 가주 레이싱 6000 클래스에서 슈퍼 6000 통산 100경기 출전 기록을 달성하며 ‘센추리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황진우(준피티드레이싱)가 2024년 6월 15일 인제스피디움에서 열린 슈퍼레이스 제4전에서 첫 가입자가 된 이후 슈퍼 6000 클래스에서 나온 두 번째 사례다.
슈퍼 6000 클래스에서 100경기를 채운다는 것은 단순한 장기 출전을 뜻하지 않는다. 매 시즌 성적 압박과 세대교체의 흐름을 모두 견뎌야 가능한 기록이다. 국내 최고 클래스에서 오래 달렸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시간 동안 경쟁력을 유지하고 다시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정의철에게 이번 기록이 갖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이미 대한자동차경주협회(KARA) 공인 100경기 출전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슈퍼 6000 클래스에서만 100경기를 넘겼다는 점은 또 다른 무게를 갖는다. 국내 정상급 무대에서 경쟁했고, 버텼고, 다시 101번째 레이스를 준비한다는 사실이 기록의 의미를 더한다.
슈퍼 6000 클래스 센추리 클럽 가입의 의미를 묻자 정의철은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그는 “이미 KARA 공인 100경에 가입했던 만큼 특별한 의미는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 100경기가 넘는 시간 동안 슈퍼 6000 클래스에서 경쟁했고, 또 생존했고, 다음 101번째 경기를 준비한다는 의미는 설명하지 못할 묘한 감정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몇 년 전 황진우 선배가 100경기 수상을 할 때 나에게도 저런 날이 올까 싶었는데, 막상 그 순간이 오니 이런 느낌이구나 싶다”며 “기분은 좋지만 그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후배들의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고 덧붙였다.
2026시즌의 정의철은 단순한 베테랑 드라이버가 아니다. 그는 오네 레이싱의 감독 겸 드라이버로 슈퍼 6000 클래스에 출전하고 있다. 스티어링 휠을 잡고 경쟁해야 하는 드라이버이면서 동시에 팀 전체를 바라봐야 하는 입장이다. 기록 달성의 순간에도 그의 시선은 개인 성취보다 팀과 후원사, 타이어 파트너를 먼저 향했다.
정의철은 “지금은 개인보다는 오네 레이싱의 감독인 만큼, 개인의 성적보다 팀 모두가 더 좋은 레이스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면서도 “그래도 매 라운드를 마쳤을 때 더 높은 자리에서 팬들에게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정의철은 국내 모터스포츠 2세대를 대표하는 드라이버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황진우, 김동은(인제레이싱) 등과 함께 국내 프로 모터스포츠의 성장기를 거쳐 현재까지 최상위 클래스에서 경쟁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모터스포츠 커리어는 1998년 카트에서 시작됐다. 2002년까지 카트 무대에서 활동한 뒤 2003년과 2004년에는 F1800에 출전했고, 2005년에는 포뮬러 토요타에 도전하며 포뮬러 드라이버로서의 커리어를 지속하려 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GT마스터즈(GTM)에 출전했고, 이 무대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뒤 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KSF)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13년에는 서한-퍼플 모터스포트 소속으로 KSF 최고 클래스였던 제네시스 쿠페 10 클래스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4년, 정의철에게 결정적인 성장 기회가 찾아왔다. 이레인 레이싱 소속으로 활동하던 그는 금호엑스타레이싱팀의 드라이버로 발탁됐다.
당시를 돌아보며 정의철은 “엑스타 레이싱에 들어가기 전 이레인 모터스포트를 통해 경험을 쌓고, 일종의 쇼케이스를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자신도 있었다”며 “그 모습을 엑스타 레이싱에서 관심 있게 봐주고 좋은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오로지 잘 해내야 한다는 의지가 컸다”고 설명했다.
엑스타 레이싱 데뷔 첫 시즌은 쉽지 않았다. 첫 경기에서 예선 8위, 결선 8위로 안정적인 출발을 했지만 이후 좋은 흐름을 결과로 연결하지 못했다. 제7전에서는 예선 2위로 기대를 높였으나 결선에서 경주차의 테크니컬 트러블로 아쉬움을 남겼고, 최종전에서도 예선 6위로 포디엄 가능성을 만들었지만 다시 경주차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정의철은 당시 시즌을 두고 “시즌 3경기를 남겨 놓은 시점에서 엑스타 레이싱에 합류할 수 있어 정말 기뻤다. 시즌 중 팀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행운이었다”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단 한 차례도 포디엄에 오르지 못한 최악의 시즌”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그의 승부사 기질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빛을 발했다. 엑스타 레이싱 정식 드라이버로 합류한 그해 슈퍼레이스 제5전에서 슈퍼 6000 클래스 데뷔 첫 승을 거뒀고, 이듬해인 2016년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 2020년에는 다시 한번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며 국내 최정상급 드라이버임을 증명했다.
이후 정의철은 2024년부터 서한 GP에 둥지를 틀었고, 2년 동안 4승을 기록하며 경쟁력을 이어갔다. 슈퍼 6000 클래스 100경기 돌파 시점까지 그는 통산 10회의 폴포지션과 2회의 폴투윈을 포함해 9승을 쌓았다. 여기에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타이틀을 더했다.
이러한 경험은 2026시즌 오네 레이싱의 감독 겸 드라이버로 발탁되는 배경이 됐다. 정의철은 금호엑스타레이싱, 현 금호 SLM과 서한 GP에서의 시간을 두고 “두 팀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정의철이 있다. 두 팀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오네 레이싱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팀에서 배운 만큼 앞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그것이 두 팀에 감사 인사를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의철의 100번째 슈퍼 6000 레이스는 달콤하게 끝나지 않았다. 정작 기록이 완성된 경기에서 그는 축하만을 안고 돌아오지 못했다. 레이스 중 접촉 여파로 경주차에 이상이 생겼고, 피트로 들어온 뒤 다시 트랙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센추리 클럽 가입이라는 상징적인 순간은 리타이어라는 아쉬운 결과와 함께 남았다.
100번째 레이스가 리타이어로 끝난 데 대한 질문에 정의철은 아쉬움보다 책임감을 먼저 꺼냈다. 그는 “큰 의미를 두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오네 레이싱을 응원하는 팬 여러분과 함께하는 후원사, 그리고 힘든 경쟁을 하고 있는 넥센타이어 임직원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곧 시선은 다음 경기를 향했다. 정의철은 “100번째라는 방점은 빨리 잊고, 101번째의 시작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2026 오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토요타 가주 레이싱 6000 클래스는 올해 3경기를 치렀다. 슈퍼 6000 센추리 클럽에 이름을 올린 정의철은 이제 기록을 넘어 또 다른 출발선 앞에 섰다. 100번째 레이스는 아쉬움으로 끝났지만 그가 말한 101번째 레이스는 단순한 다음 경기가 아니다. 감독이자 드라이버로 그리고 슈퍼 6000의 두 번째 센추리 클럽 가입자로 정의철이 다시 증명해야 할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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