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보험산업의 인공지능(AI) 활용이 보험금 심사와 언더라이팅, 계리 분석 등 핵심 업무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AI는 청구 처리의 속도와 위험 평가의 정교성을 높이며 보험사의 업무 방식과 심사 체계를 동시에 바꾸고 있다.
그러나 기술 고도화는 보험금 청구의 신뢰 문제도 함께 끌어올리고 있다. 생성형 AI와 디지털 편집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사진과 문서는 더 이상 그 자체로 충분한 증거가 되기 어려워졌고, 보험업계에는 자동화 이후의 과제인 진위 검증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해외 보험사들은 AI와 디지털 편집 기술을 활용한 사진·문서 조작을 새로운 보험사기 유형으로 보고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스위스계 글로벌 보험그룹 취리히의 영국 법인인 취리히UK는 최근 공식 자료에서 기존 사진과 문서를 변형하는 섈로페이크와 AI로 이미지·문서·영상 등을 생성하는 딥페이크가 보험금 청구 심사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대형 손해보험사 어드미럴의 사례는 이 같은 우려가 이미 실제 통계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드미럴은 지난해 적발한 보험사기 규모가 8680만파운드로 전년 대비 71% 증가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AI를 활용한 보험사기 등 새롭게 부상하는 흐름을 살피며, 정상 청구가 빠르고 공정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사기 방식도 이미지와 문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실제 사고를 꾸미거나 서류 일부를 고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피해 장면을 사진과 문서로 구성하는 방식까지 가능해졌다. 차량 범퍼 파손, 고가 물품 훼손, 여행 중 분실 사고처럼 사진 한 장이 피해 사실을 설명하는 청구일수록 진위 확인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자동차보험, 여행자보험, 재물보험, 배상책임보험 등은 사진과 견적서, 피해 물품 증빙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들 상품군에서는 앞으로 실제 손해 여부뿐 아니라 제출된 이미지가 원본인지, 편집된 자료인지, AI로 생성된 장면인지까지 확인해야 하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스스로 판단하는 AI, 보험업무 안으로
해외 보험사 사례는 AI가 보험산업의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위험 관리 과제를 키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험사가 AI로 심사와 업무 자동화를 고도화할수록, 청구 증빙 조작이나 보안 위협과 같은 부작용도 함께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난 28일 보험연구원은 ‘보험산업의 AI 활용에 따른 기회와 위협’ 세미나를 열고 AI 기술 발전이 보험산업의 업무 방식과 리스크 관리 체계에 미칠 영향을 논의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하홍준 고려대학교 교수는 AI를 낙관적으로만 보거나 위험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보험산업 관점에서 어떤 기회를 활용하고 어떤 위험을 관리해야 하는지 균형 있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 발표에 나선 임성빈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교수는 최근 AI 기술 발전의 핵심으로 에이전틱 AI를 꼽았다. 에이전틱 AI는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문제를 이해하고 필요한 자료를 탐색하며, 여러 시스템과 도구를 활용해 업무를 수행하는 인공지능을 뜻한다.
임 교수는 앞으로의 AI 기술에서 에이전틱과 리즈닝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기존에 학습한 답을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자료와 도구를 찾아 업무 절차를 구성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무에서도 활용 가능성은 넓다. 임 교수는 AI가 언더라이팅, 보험금 지급, 계리 분석, 리스크 모델링, 고객관리, 규제 대응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고도의 수학적 판단이 필요한 계리 업무나 보험사 내부의 오래된 레거시 코드 전환 등에서도 AI 활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AI가 비용 절감과 업무 효율화, 심사 정교화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보험금 청구 접수부터 사고 유형 분류, 이상 청구 탐지, 약관 검토, 지급 여부 판단까지 활용 범위가 넓다. 정당한 청구가 더 빠르게 처리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소비자 편익도 기대된다.
다만 AI 활용 확대는 보험금 청구 현장에도 새로운 변수를 만들고 있다. 최근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피해 물품 사진을 조작해 배상이나 보험 처리를 요구했다는 사례가 공유되기도 했다. 사실관계 확인은 필요하지만, 생성형 AI와 편집 도구가 대중화되면서 유사한 시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과거 허위 청구가 실제 물품 훼손이나 서류 변조에 기대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피해를 그럴듯한 이미지로 제시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배송 받은 과일이 상했다거나 차량 범퍼가 찌그러졌다는 식의 일상적 장면도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는 새로운 확인 대상이 될 수 있다.
정교해지는 가짜 증거…심사 기준도 바뀐다
AI가 바꾼 것은 조작 가능성만이 아니다. 보험금 심사에서 확인해야 할 항목도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사진과 문서는 사고 사실을 설명하는 자료였다면, 앞으로는 그 자체가 분석의 대상이 된다.
심사 현장에서는 사진이 첨부됐는지보다 해당 자료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원본인지, 다른 기관의 데이터와 일치하는지가 중요해질 수 있다. 특히 진료기록이나 정비업체 견적, 구매 영수증 등도 단순 제출 여부를 넘어 데이터 간 정합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검토가 고도화될 가능성이 있다.
보험사는 내부의 민감한 정보를 지키는 동시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증거도 검증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됐다. 계약자의 건강정보와 사고정보를 보호하는 일 못지않게,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제출된 사진과 문서가 실제 사고를 반영한 것인지 가려내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세미나에서 언급된 사이버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보험산업에서는 청구 증빙의 신뢰 문제와 맞물려 나타나는 대목이다.
문제는 검증을 강화할수록 소비자 편익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동화가 고도화되면 정당한 청구를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허위 청구 역시 더 빠르게 심사망에 들어올 수 있다.
반대로 검증 절차가 지나치게 늘어나면 선량한 소비자의 보험금 지급이 지연될 수 있다. 이에 보험사에 빠른 지급과 정교한 검증을 함께 설계하는 역량이 요구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AI는 보험사의 심사 효율을 높이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보험사기 수법을 정교하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며 “앞으로는 보험금 지급을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느냐뿐 아니라 제출된 사진과 문서가 실제 증거인지 확인하는 능력이 보험사의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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