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혜의 런던 미술 노트] 타니아 브루게라의 신작 ‘Towards a Civic Museum’에 대하여②에 이어
[문화매거진(영국)=박은혜작가] ‘시민적 미술관을 향하여(Towards a Civic Museum)’(2026)는 단순히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에 머물지 않는다. 관람객은 이 작업 앞에서 미술관이 무엇을 전시하는가를 넘어, 미술관이 누구와 관계 맺고 누구에게 책임지는가를 묻게 된다. 작품 속 매니페스토는 바로 그 질문을 구체적인 언어로 붙잡는다. 그것은 오늘날의 미술관이 어떤 태도로 지역과 공동체를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언이자, 관람객에게도 미술관의 공적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다.
‘시민적 미술관을 향하여’라는 제목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그것은 이미 도달한 결론이라기보다, 앞으로 계속 만들어가야 할 과제에 가깝다. 말하자면 이 프로젝트는 미완의 과정이며, 동시에 미술관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묻는 제안이기도 하다.
V&A의 설명에 따르면, 타니아 브루게라는 이 프로젝트를 제도의 권위가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지기 이전에 이루어지는 ‘선제적 제도 비판(pre-emptive institutional critique)’으로 접근했다. 다시 말해 이 작업은 미술관이 동런던에 어떻게 자리 잡을 것인지,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지, 그리고 동시에 무엇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을지를 묻는 대화들 속에서 형성되었다.
새로운 미술관이 들어선다는 사실은 분명 가시성, 관련성, 그리고 기회의 확장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배제와 토큰주의(tokenism)에 대한 우려도 따라왔다. 제도가 내세우는 가치들이 실제 운영의 원칙이 아니라, 그럴듯한 수사에 머무르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 역시 제기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시민적 미술관’은 단순한 아웃리치나 재현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었다. 그것은 훨씬 더 까다롭고 근본적인 태도를 요구했다. 지역의 지식을 전문성으로 인정하고, 미술관의 벽 바깥까지 자신의 책임을 확장하며, 자신이 맺고 유지하는 관계들을 통해 유산을 이해하는 미술관. 바로 그런 미술관에 대한 요청이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이 ‘도덕적 계약’이다. 이는 미술관이 문을 열기 이전에 함께 정립한 공동의 원칙들이다. 앞으로 이 미술관이 어떤 기준 아래에서 책임을 요구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스스로 어떤 약속 위에 서야 하는지를 미리 적어보는 작업이었다. 따라서 이 계약은 완성된 규칙이라기보다, 미술관이 앞으로 반복해서 되돌아가야 할 기준에 가깝다.
미술관이 자신의 공적 역할을 다시 사유해야 한다면, 이 작업은 예술가 한 사람의 창작으로만 완성될 수 없었다. 제도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 지역의 삶 속에서 경험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을 둘러싼 언어가 아니라, 그 미술관과 관계 맺게 될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만들어져야 했다.
그 중심에는 V&A 이스트 유스 컬렉티브가 있었다. 이들의 역할은 기관들이 흔히 사용하는 피상적인 의미의 ‘자문’이 아니었다. 이미 정해진 방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견을 수집하는 방식도 아니었다. 오히려 타니아와의 초기 대화들은 이 커미션이 어떤 질문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설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프로젝트가 발전해가면서 이 작업은 유스 컬렉티브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에 의해 계속 이어졌다.
이들은 지속적인 워크숍과 토론을 통해 프로젝트의 방향을 함께 만들어갔다. 그들의 참여는 단순히 외부의 의견을 더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프로젝트 내부에서부터 그 구조와 언어를 형성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미술관이 내세우는 비전과 목표를 면밀히 읽어내고, 계약의 문안을 함께 발전시켰다. 동시에 그 안에 담긴 전제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작업이 추상적인 이상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삶의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지점에서 매니페스토는 단순한 선언문을 넘어선다. 그것은 미술관이 앞으로 지켜야 할 약속인 동시에, 관람객이 미술관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장치가 된다. 우리는 보통 미술관을 작품을 보러 가는 장소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미술관을 하나의 관계망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누가 초대되고, 누가 배제되는가. 어떤 지식이 전문성으로 인정되고, 어떤 목소리가 주변부로 밀려나는가. 미술관은 지역에 무엇을 남기며, 그 영향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가. 매니페스토는 이러한 질문들을 관람객 앞에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놓아둔다.
아래는 브루게라와 유스 컬렉티브 구성원들이 함께 만든 매니페스토의 내용이다. 큐레이터는 이를 이스트 런던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이 표현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정확하게 설명한다. 사랑은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반복되는 약속과 실천, 그리고 서로를 계속해서 책임지는 관계 속에서만 유지된다. ‘시민적 미술관’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하나의 완성된 모델이 아니라, 계속해서 질문하고, 조정하고, 응답해야 하는 관계의 방식이다.
‘이스트 런던에 보내는 러브레터’
우리는 V&A 이스트가 그저 방문해야 할 목적지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시민적 미술관을 원합니다.
투명성, 지지, 너그러움, 형평성, 책무성, 지속 가능성, 협업이 공허한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기관 내부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이 되는 미술관 말입니다.
시민의 미술관은 지역사회를 닮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에 속합니다.
미술관은 누군가를 대신해 말하지 않습니다. 미술관 벽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로 말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줍니다.
시민의 미술관은 지역의 지식을 전문성으로 인정하고, 이를 활용할 때 합당한 공로를 인정합니다.
시민의 미술관은 우리가 지식을 생산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지 않으며, 우리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보살필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시민의 미술관은 도시 원주민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과 소외에 저항합니다.
시민의 미술관은 투자보다 사람을 우선합니다.
시민의 미술관에서는 지역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저마다의 복잡한 고유성과 교차적 정체성 그대로 인정받으며, 결코 하나의 일반적인 집단으로 묶이도록 강요받지 않습니다.
시민의 미술관은 지역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시민의 미술관은 스스로를 재검토하고, 고유의 목표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간이 지나도 책임을 다합니다.
시민의 미술관은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모두가 안전함을 느끼는 공간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지어 나갈 준비가 된 미술관입니다. V&A 이스트가 남길 진정한 유산은 바로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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