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요약본에 의존하는 정보 소비 방식이 전 연령층으로 확산되면서 인간 인지 능력의 퇴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학계와 산업계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 600만 넘어선 국내 AI 앱 이용자…검색 패러다임 자체가 변했다
정보 소비 지형의 변화는 수치로 명확히 드러난다. 국내에서만 챗GPT를 비롯한 주요 생성형 AI 앱의 월간 활성 이용자가 600만 명을 돌파했다는 게 2024년 11월 집계 결과다.
해외 빅테크 기업들도 이런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검색 결과 최상단에 요약문을 자동 노출하는 기능을 기본값으로 채택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MS AI 경제연구소의 '2025 글로벌 AI 채택 보고서'는 내년 하반기 전 세계 근로자 중 16.3%가 생성형 AI 도구를 일상적으로 쓸 것이라 전망했다.
이런 환경에서 기사나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이용자는 드물어졌다. 상단 요약문만 스캔하듯 훑고 넘어가는 패턴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맥락을 따라가며 읽던 전통적 방식은 밀려나고, 키워드 중심의 속독 습관이 굳어지고 있다.
■ 에세이 쓴 학생들, 자기가 쓴 내용조차 기억 못 해
단순한 습관 변화로 치부하기엔 경고 신호가 심상치 않다. 깊이 있는 독해 과정에서 활성화되던 뇌의 사고 체계가 둔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 실험 데이터로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MIT 미디어랩 연구진은 대학생들에게 에세이를 작성하게 한 뒤 뇌 활동을 측정했다. AI 도움을 받은 그룹은 독자적으로 글을 쓴 그룹보다 전두엽과 두정엽 사이 신경 네트워크 연결성이 최대 55%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인지 능력 저하는 더 충격적이다. AI를 활용한 학생 중 80% 이상이 작성 직후 본인이 쓴 핵심 내용을 제대로 회상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대규모 언어 모델에 지나치게 기대면 논리 구성 과정 자체가 생략돼 장기적으로 사고력과 학습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학술 현장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축적되고 있다. 자료 탐색부터 요약까지 AI에 전적으로 맡긴 피험자는 직접 정보를 정리한 집단에 비해 집행·판단 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활동이 현저히 감소했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계산기 보급 이후 암산 능력이 떨어진 현상과 같은 맥락"이라며 "AI 개입 수준이 높아질수록 고차원적 문해력과 추론 능력은 퇴화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 '환각' 걸러낼 방법 없는 이용자…플랫폼 책임론 부상
문해력 약화보다 즉각적인 위험은 AI의 정보 왜곡, 이른바 '환각' 현상이다. 현행 LLM은 확률적으로 그럴듯한 단어를 연결하는 방식이라 문장은 매끄럽지만 원문의 미묘한 뉘앙스를 삭제하거나 인과관계를 뒤바꾸는 오류가 빈번하다.
원본 대신 요약본만 소비하는 이용자에게는 이 왜곡을 검증할 수단이 없다. 서울 시내 주요 대학에서는 AI가 잘못 번역·요약한 해외 논문을 과제로 제출해 적발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기업 현장에서도 경쟁사 재무 지표나 시장 보고서 요약의 오류를 사실로 받아들여 의사결정에 혼선을 빚는 경우가 적지 않다.
팩트체크 없이 요약본만 소비하도록 구조화한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묻는 비판이 거세지는 이유다. 오류 방지와 편향성 통제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 길 안내는 AI가, 최종 판단은 사람이
물론 AI가 부정적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다. 정교하게 설계된 AI 팩트체크 도구는 인간의 확증편향을 완화하는 역할도 한다.
한림대 연구진 분석 결과, 생성형 AI 기반 팩트체크는 인간 전문가의 판정보다 이용자의 편향된 정보 수용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기계의 중립적 판단이 개인의 감정적 방어기제를 덜 자극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효과는 알고리즘 설계에 투명한 인간 통제가 개입됐을 때만 발휘된다.
전문가들은 AI를 맹신하지 말고 방대한 데이터 속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터' 수준으로 활용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검색 시간 단축은 AI가 담당하되, 파편화된 정보를 종합해 진위를 가리는 최종 판단은 인간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뜻이다.
국내 IT 플랫폼 한 임원은 "빅테크들이 체류 시간 확보를 위해 요약 서비스 경쟁에만 집중하면서 투명성 확보를 위한 책임 규범 정비는 뒷전으로 밀렸다"며 "먼저 질문을 던지고 원문을 대조하는 주체적 정보 소비가 없으면 AI가 만들어낸 왜곡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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