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처럼 조롱 혐오를 방치 및 조장하는 사이트의 폐쇄, 징벌적 손해배상, 과징금 등 필요한 조치를 허용하는 데 대한 공론화와 실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베처럼 조롱 모욕으로 사회분열 갈등을 조장하는 데 대해 표현의 자유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처벌을 포함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병존한다"면서다.
기왕 대통령이 '공론화'를 말했으니 일베를 바라보는 시각을 재정립해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일베 사이트는 폐쇄하면 안된다. '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일베는 표현의 자유를 빙자해 표현의 자유를 부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폐쇄와 같은 정상적인 행정 절차를 연구하고 들이댈 이유가 없다.
일베는 비유하자면 이 사회의 불가피한 오물이 모여드는 커다란 하수도다. 상수도가 있으면 하수도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일베는 일종의 사설 하수종말처리장이다.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오수는 깨끗하게 정화(처리)되지 않는다. 그것은 슬러지 같은 오염물질과 변질된 물로 분리 가능할 뿐이다. 가끔 하수도의 오수는 넘쳐 흘러 우리 생활 공간으로 유출되기도 한다. 그런데 하수도가 없다면 오수는 갈 곳을 잃고 생활 공간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그 찌꺼기는 어디론가 흘러가 반드시 고일 곳을 찾아낸다. 담론에 중력의 법칙이 있다면 그렇게 작용한다.
일베는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생겼던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 같은 곳에서조차 배제되고 비난받던 게시물들이 흘러들어가 고인 곳이다. 정치적 목적을 띠고 창설된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오물과 찌꺼기들이 세상과 불화하며 흘러가다 고이고 그에 따라 조성된 '천연' 하수도다. 만약 이 하수도를 인위적으로 없애면 오물과 찌꺼기들은 (다시 말하지만) 사회의 질량보존 법칙에 따라 반드시 어디론가 흘러들어가 오히려 멀쩡한 상수도를 광범위하게 오염시킬 수 있다.
일베는 2010년에 탄생한 이후 여성 혐오와 전라도 혐오, 민주주의 혐오 등을 배설하며 성장했다. 2018년에는 청와대 국민 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일베 폐쇄' 청원에 23만 명이 동의했으나 오히려 일베는 그런 '폐쇄 논란'을 먹고 자랐다. 그들이 바라는 건 사회의 혼란이고, 자신들의 비윤리적 주장과 행위가 주목받는 일이다. '탄압의 서사'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이미 폐쇄 논란을 수차례 겪으며 일베의 오물은 SNS나 유튜브, 일부 커뮤니티에 광범휘하게 스며든 상태다. 이제 와 '사이트 폐쇄'와 같은 먹이를 일베에 던져줄 필요가 없다.
해외 사례를 보자. 2003년 만들어진 4chan은 처음엔 익명 사이트의 장점을 활용한 각종 유머 글과 이미지 공유 사이트였으나 점차 반사회적 오물이 흘러들어와 고인 하수도였다. 2016년, 익명의 4chan 유저들이 워싱턴D.C.의 한 피자가게가 세계적 소아성애자 조직의 본거지라 주장한 '피자게이트'를 퍼트렸는데, 실제로 음모론 신봉자가 해당 총을 들고 해당 피자 가게를 찾아가면서 큰 논란이 됐다. '큐아넌'이 탄생한 곳도 바로 이 사이트다.
4chan에 대한 각종 규제가 시작되자, '그들'은 enfchan, 8chan 등과 같은 사이트로 이동했다. 구글이 2015년 '아동 학대 의심 콘텐츠'를 이유로 8chan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등 민간 차원의 규제가 이어졌다. 8chan이 2019년 뉴질랜드 총기 난사 사건의 배경으로 지목된 후 '그들'은 또 다시 8kun이라는 대체 사이트를 온상으로 삼았고, 이 사이트는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공격 가담자들의 중심지가 된다.
"테크기업들이 이용 약관을 개정하고 이를 위반하는 이용자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스포티파이나 애플은 백인 우월주의 증오 음악을 플랫폼에서 삭제하고, 웹사이트 호스팅 플랫폼들은 극우 사이트를 퇴출시켰다. 테크 기업들이 주류 플랫폼을 '정화'했지만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극우 활동은 지하로 숨어들었고, 극우의 억압, 검열, 불공정, 불의라는 서사는 더욱 강화됐고, 결과적으로 극단주의를 오히려 부추기는 역효과를 일으켰다."(신시아 밀러 아드리스, <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 中)
극우 사이트 이용자들은 그럴수록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대안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이를테면 KKK(Ku Klux Klan)는 페이스북에서 퇴출됐지만, 러시아의 소셜네트워킹 사이트 '브이콘탁테'로 이동해 활발히 활도했다. 페이팔 가은 모금 및 크라우드소싱 플랫폼이 인종차별과 성차별 캠페인을 금지하자, 극우 세력은 아예 극우 전용으로 설게된 헤이트리온, 고이펀드미, 메이커서포트, 위서쳐 등으로 이동했다.
사회의 오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여기 저기 고일 곳을 찾아낼 뿐이다. 만약 고일 곳이 없다면, 그들은 '다크웹'이나 텔레그램과 같은 다른 서식지를 찾아낸다. 오히려 이게 더 위험할 수 있다. 규제 없는 완전한 익명성의 커뮤니티는 그들 사이의 소통을 증가시키고 확증편향을 가속화 한다. 세상과 단절된 오폐수는 어느 순간 현실 세계에 폭탄처럼 내던져질 수 있다.
일베는 이를테면 극단적 혐오 표현이 특정 공간에만 머무르도록 격리하는 사회의 오물집하장이다. 그것이 사회 전체의 위생에 유리할 수 있다. 잠재적 범죄나 온갖 혐오물이 이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감시를 철저히 하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이다. 일베의 오물은 일베 안에 있어야 한다. 5.18 탱크데이 사건은 '오물 넘침 현상'이 사후 수습으로 정화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걸 일견 증명해 준 사례일 수 있다. 대통령도 우리 국민의 '수준'과 '자정 능력'이 어느 정도 높은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회의 사상은 담길 그릇을 찾아다닌다. 윤어게인이 어리석어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박멸할 수는 없다. 그들이 본인의 수준에 맞는 그릇(예를들면 전한길이나 고성국이 운영하는 유튜브나 인터넷 사이트)을 찾아가는 게 세상의 순리다. 그리고 제도권 정당과 관리 규제 당국은 넘쳐 흐르는 오물을 치우기 위해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있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물론 가끔 하수도가 역류하는 걸 온 몸으로 맞이하는 일부 정당이 보이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염된 하수에 젖은 사람들은 오염될 사람일 뿐이다. "특정 사이트를 강제 폐쇄하는 선례를 남기면, 향후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다른 커뮤니티나 여론도 검열·폐쇄할 수 있는 명분을 주게 될 것"이라는 과잉 규제에 대한 우려는 차라리 사치스러운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일베 같은 사이트나, 정용진 같은 특이한 사업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5.18 탱크데이'나 '책상에 탁' 같은 그들의 변태적 놀음 '낙인'을 찍어 줄 수 있다. 즉, '5.18을 모욕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라는 사회의 주류 의견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이 적절한 곳에 고여있을 수 있게 하되, 가능한 제도적 제재 방안을 강화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지 않을까.
꽃바구니엔 꽃이 담겨 있어야 하고, 쓰레기통엔 쓰레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오물은 하수종말처리장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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