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나이를 말하는 방식은 대개 두 갈래로 갈린다. 젊음을 오래 붙잡거나, 쇠퇴를 최대한 늦추는 이야기다. '나이 든다는 것의 의미'는 그런 계산법에서 한 걸음 떨어진다. 노년을 치료해야 할 결함이나 관리해야 할 위험으로만 보지 않는다. 시간의 한계가 삶을 선명하게 한다. 끝을 의식하는 순간 현재가 달라진다는 오래된 사실을 의학과 철학의 언어로 되살린다.
흥미로운 지점은 저자가 노화를 낙관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몸은 약해지고, 질병과 상실은 가까워진다. 외로움은 더 자주 찾아온다. 그런데도 나이 든 삶을 패배로 두지 않는다. 두뇌는 늙어도 정신은 복잡한 경험을 저장하고 새 판단을 낳을 수 있다고 본다. 나이 듦을 성장의 반대말로 처리해온 사회에 꽤 불편한 반론이다.
병과 간병, 은퇴 이후의 일, 친구의 도움, 절망을 거부한 사람들의 선택이 노년의 윤리를 구체화한다. “절망이라는 사치”를 허락하지 말라는 문장은 다소 강하게 들린다. 하지만 정신력 과시보다 삶의 태도에 가깝다. 무너질 이유가 충분한 사람도 여전히 하루를 선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위로보다 훈련에 가까운 문장이 많은 까닭이다.
한계도 있다. 노년을 더 잘 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강조하다 보니, 돌봄 비용, 의료 격차, 빈곤, 가족 부담처럼 개인 의지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은 상대적으로 옅게 다뤄진다. 품위 있는 노년이 정신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정된 주거, 치료 접근성, 사회적 보호 없이 “더 나은 선택”을 말할 때 일부 독자에게는 부담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럼에도 던지는 질문은 유효하다. 젊게 오래 사는 법에 열광하는 시대일수록, 오래 산 뒤 무엇을 할 것인지는 더 자주 비어 있다. 저자는 장수를 삶의 승리로 보지 않는다. 유한한 시간 안에서 관계를 돌보고, 배움을 유지하고, 가까운 일을 실천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노년은 젊음의 실패가 아니다. 삶의 오후를 어떻게 맞을지 묻는, 피할 수 없는 시험에 가깝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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