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반도체·자율주행 수직계열화…공급과잉·서방 견제는 과제
(선전=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저렴한 가격을 앞세웠던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이제는 기술 혁신까지 이루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더욱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나아가 배터리, 반도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기술을 아우르는 미래차 생태계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28일 오후 찾은 중국 광둥성 선전의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 본사는 중국 전기차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본사 홍보관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바이어와 딜러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이날 열린 지능화 전략 발표회장에는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온 기자와 인플루언서 700여명이 참석했다.
왕촨푸 BYD 회장이 무대에 올라 자체 개발한 4나노(nm) 자율주행 칩 '쉬안지(璇璣) A3'를 들어 보이자 행사장은 환호로 가득 찼다.
중국 전기차 산업이 더 이상 저가 제품 생산기지에 머무르지 않고 반도체와 AI 등 다양한 기술을 앞세워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세계 최대 내수시장이 키운 전기차 강국
중국 전기차 경쟁력의 출발점은 압도적 규모의 내수시장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자 전기차 시장이다.
중국 정부는 보조금 지급, 충전 인프라 구축,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전기차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했다.
그 결과 지난해 중국 신에너지차(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수소차) 판매 비중은 40.9%까지 상승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전 세계 신규 전기차 판매 상위 10개 업체 가운데 중국 업체는 BYD 등 6개에 달했다.
BYD는 지난해 순수 전기차(BEV) 판매량 225만6천714대를 기록해 163만6천129대를 인도한 미국 테슬라를 처음으로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중국 정부도 '전기차 굴기'를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2040년까지 승용차 신차 판매의 85% 이상을 신에너지차로 전환하고 레벨4(L4) 자율주행 기술을 대다수 신차에 보급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세계 최대 시장에서 확보한 대량 생산 체계는 중국 업체들의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기반이 됐다.
여기에 중동 지역 정세 불안에 따른 고유가 상황은 가격 경쟁력과 생산 능력을 갖춘 중국 전기차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더 확대하는 배경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가격 넘어 기술 경쟁력까지 확보
중국 전기차의 최대 강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구축한 대규모 생산 체계, 치열한 내수 시장 경쟁, 배터리와 전력제어장치 등을 자체 생산하는 수직계열화 구조가 원가 절감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반도체, AI, 자율주행 시스템까지 자체 개발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배터리 업체로 출발한 BYD는 배터리뿐 아니라 전력 반도체, 전기차 플랫폼, 운영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시스템까지 자체 개발하고 있다.
통신 장비 제조업체 화웨이 역시 자율주행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향후 5년간 최대 800억위안(약 17조3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중국 전기차가 저렴한 배터리를 무기로 성장했다면 이제는 반도체, AI, 자율주행 등 미래차 핵심 기술까지 직접 확보하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전기차 산업의 또 다른 강점은 치열한 경쟁이다.
선전 최대 자동차 판매단지인 자진룽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링컨 등 글로벌 브랜드와 함께 수십 개 중국 브랜드 매장이 밀집해 있다.
업체들은 가격 인하와 신기술 도입 경쟁을 반복하며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기술 혁신 속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은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격과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시장 개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 공급 과잉과 미·EU 견제…"한국도 산업 생태계 전반 경쟁력 높여야"
중국 전기차 산업의 이면에는 공급 과잉이라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완성차 내수 판매는 2천690만대로 전체 생산능력(5천507만대)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업체들은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중소 업체들의 도태도 가속화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적지 않은 업체가 파산하거나 경영난을 겪었다.
중국 업체들이 동남아시아, 중동, 유럽, 중남미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는 배경에도 내수시장의 공급 과잉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견제 역시 중국 전기차 산업이 넘어야 할 과제다.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10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EU도 업체별로 기본 관세 외에 17∼35.3%의 추가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약 8% 수준의 기본 관세만 부과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처럼 국내 생산과 공급망을 지원하는 '한국판 IRA'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 전기차의 확산은 소비자에게는 선택권 확대와 가격 인하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산업 기반을 위협할 가능성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전기차의 경쟁력은 단순한 가격 경쟁력이 아니라 미래차 산업 생태계 전반을 구축한 데 있다"며 "한국도 관세나 보조금 같은 단기 대응을 넘어 공급망과 기술 개발,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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