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년세대 사이에서 '힐링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취업, 결혼 등 어느 것 하나 녹록치 않은 각박한 현실과 자극적인 콘텐츠의 범람, 기존 게임들의 끝없는 경쟁 시스템과 과금 유도로 쌓인 피로감 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힐링게임의 인기는 그동안 게임과는 거리가 멀었던 여성들 사이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청년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게임업계 등에 따르면 '포코피아' '친구모아 아일랜드' 등 다소 생소한 이름의 게임들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출시된 '포코피아'의 인기는 하드웨어(게임기) 시장까지 흔들 정도로 뜨거운 편이다. 한 게임기 매장 관계자는 "포코피아의 인기는 게임기의 판매량에 영향을 미칠 정도다"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프트웨어아 하드웨어 모두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설명했다. 포코피아의 바통은 한 달 후 출시된 '친구모아 아일랜드'로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이들 두 게임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난이도 높은 미션을 수행하거나 타 유저와의 경쟁이 필수인 기존 게임과는 전혀 다른 '힐링' 컨셉을 지향했다는 점이다. 귀여운 캐릭터를 선택하고 취향에 맞게 마을이나 섬을 꾸미는 식이다. 주어진 시간도 따로 없을 뿐만 아니라 혼자 플레이하기 때문에 타인과 경쟁할 필요도 없다. 고민이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도 전혀 없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다.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ASMR 영상 시청, 다이어리 꾸미기, 식물 키우기 등과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생산적인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일상의 소소한 감각에 집중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는 행위가 게임의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한 게임매장에서 만난 박이레 씨(29·직장인)는 "몇 달 전에 '포코피아'와 게임기를 사고 이번에 '친구모아 아일랜드'를 사려고 왔다"며 "퇴근 후 집에서 1~2시간 정도 게임을 즐기다 보면 어느 새 심신이 안정되고 기분도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국내 게임시장에서 '힐링게임'의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2년 넥슨이 출시한 '데이브 더 다이버'는 글로벌 누적 판매량 400만장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해당 게임 역시 낮에는 바다를 탐험하고 밤에는 초밥집을 운영하는 게 핵심 포인트다. 이후 출시된 네오위즈의 모바일 게임 '고양이와 스프' 역시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6000만건을 기록하며 힐링게임의 가능성을 입증해 보였다.
게임업계 등에 따르면 '힐링게임'의 인기는 단순히 게임의 흥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 게임의 주 소비층인 남성을 비롯해 여성들의 호응도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연령대의 남녀가 함께 즐긴다는 점에서 사실상 해당 세대만의 문화로 봐도 무방하다는 설명이다. 한 게임매장 관계자는 "포코피아 구매자들을 보면 성별의 경계가 거의 없는 것 같다"며 "오히려 요즘엔 여성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해당 게임매장에서 만난 성유민 씨(22·대학생)는 "원래 게임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을 접한 뒤 힐링게임 매력에 푹 빠졌다"며 "주변에도 나처럼 전용 게임기를 사거나 모바일 전용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이 여럿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멍이나 ASMR, 반려식물 키우기 등과 같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다"며 "지금은 게임 자체가 힐링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된 듯 하다"고 덧붙였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힐링게임의 인기에 대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환경과 소비자들의 트렌드 변화가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그동안 국내 주류 게임들은 유저 간의 강렬한 경쟁과 사행성 비즈니스 모델(BM)에 과도하게 의존해 오면서 이용자들에게 극심한 피로감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며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고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힐링 장르의 흥행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완전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Copyright ⓒ 르데스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