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높였다. 코스피 8000 돌파 이후 불거진 ‘170조원 매도 폭탄’ 우려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국민연금은 전략적자산배분(SAA) 허용 범위를 한시 확대하고 일일 리밸런싱 규모를 줄였다. 코스피 급등 탓에 기존 자산배분 기준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증시 불장…국민연금, 리밸런싱 한계 도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2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회의를 열고 2026년도 자산군별 목표비중 현실화와 2027~2031년 중기자산배분안을 심의·의결했다. 기금위는 국내주식 시장 구조 변화와 실제 보유 비중 확대 상황 등을 반영해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20.8%로 조정했다.
이번 결정은 코스피 급등에 따른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부담이 급격히 커진 상황에서 나왔다. 국민연금은 올해 초까지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14.9%로 유지했다. 전략적·전술적 자산배분 허용 범위를 모두 적용해도 최대 허용치는 19.9% 수준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중심 강세장 속에 코스피가 8000선을 돌파하며 기존 기준은 빠르게 한계에 도달했다. 지난 27일 코스피 장중 고가인 8457.09를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평가액은 535조원 수준까지 불어났다. 전체 기금 규모를 1800조원으로 가정하면 국내주식 비중은 약 29.7% 수준이다.
현행 기준을 적용하면 176조9000억원 규모의 국내주식을 매도해야 했다. 국내 증시 최대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실제 대규모 매도에 나서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 중심으로 수급 충격이 불가피하다.
또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대거 매도하고 해외주식 비중을 확대하면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도 커질 수 있다. 채권시장 자금 흐름 변화까지 겹치면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팔더라도 천천히…리밸런싱 규칙 수정
국민연금은 목표비중 상향과 함께 리밸런싱 방식도 바꿨다. 기금위는 변동성이 큰 국내주식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주식 SAA 허용범위를 한시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시장 영향을 줄이기 위해 일일 최대 리밸런싱 규모를 축소하는 등 리밸런싱 규칙도 조정했다. 단기간 내 대규모 기계적 매도를 피하기 위해서다. 국민연금은 지난 1월에도 국내주식 비중이 허용범위를 벗어날 경우 자동적으로 매도에 나서는 리밸런싱을 한시 유예한 바 있다.
다만 국민연금은 확대된 SAA 허용범위 수준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기금위는 “기금운용 업무의 공정한 수행과 금융시장 안정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은 기계적 리밸런싱보다 시장 충격 관리에 더 무게를 뒀다. 코스피 급등에 맞춰 기존 운용 원칙 자체를 수정하며, 금융시장 안정에 방점을 찍었다.
◇코스피 8000 시대 반영…중기 운용체계도 손질
국민연금은 2027~2031년 중기자산배분안에서도 2027년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20.8%로 유지하기로 했다.
최근 국내 증시 상승세와 구조 변화 흐름을 중장기 자산배분 체계에도 반영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인공지능(AI) 투자 확대 기대 속에 국내 증시 위상이 달라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서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처럼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대폭 높일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돼왔다.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즈는 최근 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이 국내채권 비중을 줄이고 국내주식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자산배분 체계를 조정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 확대를 둘러싼 우려는 여전하다. 국내 증시 쏠림이 심해지면 분산투자 원칙이 약해질 수 있다. 또 연금 지급 확대에 따른 인출 국면에서는 국내 증시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기금의 안정적 운용은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을 지키고 장기 재정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과제”라며 “앞으로도 시장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원칙과 유연성이 조화되는 기금운용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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