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인공지능(AI) 중심의 경기 회복 속에 금융권 자금도 대기업과 첨단 산업으로 쏠리고 있다. 반면 내수 중심의 취약업종과 중소기업은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금융 양극화가 심화하는 모습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3월 말 기준 대기업 대출 잔액은 179조119억원으로 지난해 말(170조2992억원) 대비 5.12%(8조7127억원)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소호대출 포함) 잔액은 0.94%(6조3356억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최근 반도체·방산·자동차 등 수출 제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설비투자와 운영자금 수요가 이어지면서 은행권도 우량 기업 위주로 여신을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은행권 자금은 소수 대기업 그룹에 집중되는 모습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현대자동차·SK·롯데·LG 등 5대 그룹의 지난해 총차입금은 395조8000억원으로 전체 42개 그룹 차입금의 절반이 넘는 53.2%를 차지했다.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도 3년간 17조원 규모의 '반도체 설비투자지원 특별프로그램'을 지난해 출시하는 등 정부 주도의 첨단 산업 지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첨단 제조업의 경우 정책금융과 민간은행 자금이 동시에 유입되면서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자금 조달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내수 업종을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은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둔화 등이 겹치며 자금 조달 여건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은행권이 연체율 관리와 부실 위험 축소에 나서면서 담보 의존도가 높고 현금흐름이 불안정한 중소기업 대출에 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서다.
특히 부동산 업종은 지난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발생하며 시중은행은 물론 자금 조달 창구의 마지노선인 저축은행에서도 외면받고 있다. 부동산업의 저축은행 대출 잔액은 2023년 23조1429억원에서 지난해 16조3968억원으로 29.1% 감소했다.
은행권 대출이 막히자 일부 취약업종은 비은행권이나 비차입성 자금조달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기업들은 주가수익스왑(PRS), 구매카드 유동화, 당좌수표 유동화 등 이른바 '비차입금 부채'를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추세다. 이는 은행 대출 대신 외상매출채권이나 카드채권 등을 현금화하는 방식이다. 비차입금 부채를 통한 기업의 자금조달 잔액은 2022년 10조원을 밑돌았지만 이후 꾸준히 확대돼 지난해 27조5000억원에 달했다.
김정호 한국은행 금융안정국 안정총괄팀장은 "대출과 직접금융 등을 활용한 기업의 자금조달이 부진한 가운데 비차입금 부채를 활용한 자금조달은 늘어나고 있다"며 "취약 업종과 비우량기업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는 만큼 이들 부채의 부실이 트리거로 작용해 관련 산업 전반의 자금사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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