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아흐마드(30)는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도달한 순간 "순수한 희열"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21일(현지시간) 11시간에 걸친 마지막 등반 끝에 아프가니스탄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아흐마드는 BBC 월드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의 정상에 섰을 때, 힘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번 등반에 앞서 "대의를 위해 … 그리고 자유와 교육을 위해" 이 여정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아흐마드는 이번 성취를 통해 고국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2021년 탈레반이 정권을 재장악한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2세 이상의 소녀와 여성들의 교육이 멈췄다.
해발 7950m에 있는 '캠프4'에서 정상까지는 이른바 '죽음의 존'이 이어진다. 해발 8849m의 정상까지 산소 농도가 해수면 수준의 3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로 돌아온 아흐마드는 죽은 척하며 탈레반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았던 순간, 이후 호주로 이주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가던 시간 등 지나온 삶의 기억 덕에 이 혹독한 등반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아흐마드는 힌두쿠시 산맥에서 조금 남쪽에 떨어진 아프가니스탄 남동부 가즈니주 출신이다.
"매일 산을 오르내리고, 깊게 쌓인 눈을 헤치며 최대 4시간씩 걸어 등교했습니다."
아흐마드는 탈레반이 처음 정권을 잡았던 시기에 태어났다. 당시 여학생들의 교육 기회는 매우 제한돼 있었다. 그러던 2001년 미군 주도의 침공으로 탈레반이 물러나면서 여학생들은 교실로 되돌아갈 수 있었고, 여성들의 고등교육 및 취업 기회도 확대됐다.
2014년, 아흐마드는 수도 카불 소재 대학에 진학하겠다며 가족들을 설득했고, 마침내 카불행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당시 승객 중 여성은 그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탈레반 무장대원들이 버스를 세운 뒤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월경 중이었던 아흐마드는 재빨리 피를 얼굴에 묻히고 죽은 척했다. 무장대원들이 자신을 죽었다고 여기고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그 후 가족과 함께 카불로 이주한 아흐마드는 언록학을 전공하며 가명으로 라디오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9년 인도로 이주했으나 3년뒤 다시 호주로 이주한 그는 영어를 배우며 가구 체인점에서 일했다.
사실 아흐마드는 큰 비극을 겪으며 등산에 이끌리게 됐다. 호주로 이주한 지 6개월 만에 당시 20세였던 남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깊은 상실감 속에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이름도 '자키아'에서 '리버(River, '강'이라는 뜻)'로 바꾸었다. 호주의 강에서 영감을 얻었다.
"강은 깨끗하고 막을 수 없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흐릅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시드니의 유명한 아치교인 하버 브리지 등반 행사에도 참여하게 됐다. "하늘 높이 올라가니 행복했다. 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에베레스트 등반 계획을 점점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훈련에 돌입했다. 우선 헬스장에 등록한 뒤 멜버른 인근의 산들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울러 에베레스트 원정을 위한 비용 8만5000달러를 마련하고자 애썼다. 약 4분의 1은 모아둔 돈으로, 나머지는 어느 재단의 대출로 충당했다.
아흐마드는 "모금은 정말 어려웠다. 나는 후원자를 구하지 못했다"면서도 향후 원정에서는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그렇게 올해 3월 에베레스트 지역에 도착한 그는 6000m가 넘는 산 2개를 등정하고 몇 주 동안 고산 적응 훈련을 이어갔다.
한편 올해 네팔 정부가 발급한 등반 허가 규모는 사상 최대 규모다. 아흐마드 또한 거의 500명이나 되는 이 허가증 소지자 중 하나였다. 엄청난 인원이 몰리면서 또 다른 어려움이 뒤따랐다.
등반가들은 최소 1명의 지원 등반가를 데리고 간다. 주로 네팔 '셰르파족 출신이다. 즉, 실제로 정상 등반을 시도하는 인원은 1000명이 훌쩍 넘는다.
또한 올해는 중국 측 티베트 쪽 등반로가 외국인 등반가들에게 허용되지 않으면서 네팔 쪽 등반로에 인원이 더욱 집중됐다.
정상 등반에 적합한 기상 조건은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보통 5월 하순에 집중된다. 이에 날씨가 좋은 날에는 긴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아흐마드 또한 셰르파 2명과 함께 정상 부근에서 4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다. 이 시기 그곳의 기온은 보통 영하 25도 이하로 떨어진다.
"등반 정체는 … 정말 끔찍했다"는 그는 "또 너무 무서웠다"고 털어놓았다.
아흐마드는 이렇게 등반이 정체되며 도전 자체가 위태로워지진 않을지 두려웠다.
실제로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상 부근에서 대기가 길어질 경우 비축 산소량이 충분하지 않은 등반가들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아울러 혹독한 환경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동상과 설맹의 위험이 높아진다.
허가증이 필요 없는 네팔인 지원 인력을 포함해 전날 하루에만 274명이 정상에 오르며 단일일 기록을 세운 데 이어 그날에도 160명이 정상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 인도 출신 등반가 2명이 하산 중 사망했다.
과밀화 우려가 제기되자 네팔 정부는 최근 몇 년간 허가 수수료를 인상하는 한편 신청 요건 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원정 운영사들과 협력해 정상 등반 시점을 분산시키려 노력해 왔으나,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아흐마드는 셰르파 가이드 2명의 도움과 전문성에 "정말 감사하다"면서 정상에서뿐만 아니라 등반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된 하산 길에서도 벅찬 행복감을 느꼈다고 했다.
"단순히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뿐만 아니라, 지구상 가장 높은 곳에서 자연을 바라볼 수 있었던,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라는 그는 "그 황홀한 순간을 온전히 만끽했다"고 했다.
한편 아흐마드는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반응에 대해 "놀랍다"고 했다.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 또한 이를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성취라며 축하했다.
"이번 일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 고국에 전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아흐마드는 이번 도전과 성공을 통해 단순한 등반 이상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그는 "오늘날에도 아프가니스탄 소녀들 수백만 명은 교육이라는 기본적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이 것이야 말로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라고 강조했다.
초기만 해도 탈레반 측은 보안 및 안전 문제를 언급하며, 소녀와 여성에 대한 중등 및 고등 교육 금지는 일시적이라고 시사했다.
최근 BBC가 이 문제에 대해 탈레반 측 부대변인에게 질문했으나, 그는 해당 질문을 교육부로 넘겼고 교육부는 답변하지 않았다.
아흐마드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 활동을 계획 중이라고 밝히며, 그들에게 "계속 힘을 내야 한다. 우리 역사의 가장 어두운 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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