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눈은 도시를 걷고, 마음은 예술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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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눈은 도시를 걷고, 마음은 예술을 본다.

뉴스로드 2026-05-28 11:12:19 신고

사진제공=비엠케이
사진제공=비엠케이

“파리의 진짜 예술은 미술관 밖에 있다.”

신간 『눈은 도시를 걷고, 마음은 예술을 본다』는 관광 명소 위주의 파리 여행법에서 벗어나, 골목과 갤러리를 따라 걷는 전혀 다른 파리를 제안하는 예술 에세이다. 저자 최보영은 약 2년 반 동안 파리에 머물며 마레 지구, 생제르맹, 마티뇽, 벨빌, 호맹빌 등 도시 곳곳의 갤러리를 직접 탐방했다. 그 기록을 한 권에 담아, “도시와 예술, 삶의 감각을 함께 걷는” 동시대 예술 기행서로 엮었다.

책은 루브르, 오르세 같은 거대 미술관의 뒤편에서, 작은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숨 쉬는 ‘현재진행형’ 예술의 현장에 집중한다. 파리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갤러리 템플롱, 사진 전문 공간 폴카 갤러리, 미술과 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봉 랑베르, 페로탕, 갈레리아 콘티누아, 알민 레쉬, 이응노 화백의 작품을 소장한 갤러리 바지우 등 이름만 들어도 미술 애호가들의 시선을 끄는 공간들이 책 속에 등장한다.

저자는 단순히 전시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갤러리의 공기, 골목의 냄새, 여름 햇살 아래 거리의 빛, 작품 앞에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과 감정의 흔들림까지 함께 기록한다. 직접 촬영한 사진과 현지 갤러리 이미지, 갤러리스트 인터뷰를 곁들여, 독자는 마치 저자와 함께 파리 골목을 걷고 갤러리 문을 여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예술과 문학, 영화, 도시가 한 장면에서 만나는 방식도 이 책의 중요한 매력이다. 저자는 갤러리에서 마주한 작품을 에드워드 호퍼, 피에르 보나르 같은 화가의 회화와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때로는 오래된 영화나 여행 에세이의 장면처럼 풀어낸다. 예술 감상이 곧 문학 읽기이자 도시 산책이 되는 셈이다.

사진 전문 공간 폴카 갤러리를 다룬 대목에서는 사진을 “시간과 감정을 보존하는 예술”로 확장해 보여준다. 캘리포니아의 여름 풍경을 담은 사진 앞에서 아직 가보지 못한 도시를 그리워하고, 자크 앙리 라르티그가 포착한 100년 전 프랑스 상류층의 스포츠 문화를 보며 벨 에포크 시대의 공기를 상상하는 장면은, 이미지 속 시간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전한다.

책은 또한 파리 예술 현장 속에서 한국적 미감이 만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이응노 화백부터 젊은 작가 김민정에 이르기까지, 한국 작가들의 작업이 파리라는 도시와 어떻게 대화하는지, 동양과 서양의 감각이 어디에서 겹치고 어긋나는지 세심하게 따라간다. “나는 동양화를 하니까 서양에 가는 것이고, 너는 서양화를 하는 사람이니까 동양으로 가야 해.”라는 이응노의 말은,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며 감각의 지평이 넓어지는 과정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책 전반을 관통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갤러리는 어렵다”는 편견을 정면으로 허문다. 저자는 처음 갤러리 문 앞에서 망설이던 자신의 경험을 숨기지 않는다. 작품의 의미를 해설하거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전시 공간에서 떠오른 감정과 기억, 질문을 따라가며 “작가를 잘 알지 못해도, 모든 설명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갤러리를 방문하는 일을 “잘 가꿔진 타인의 취향을 감상하러 가는 일”,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는 일”에 비유하며, 예술이 특별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강조한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오래 바라보는 힘’을 회복하자는 메시지도 인상적이다. SNS의 몇 초짜리 영상과 짧은 콘텐츠에 익숙해진 독자에게, 이 책은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무를 때만 생겨나는 사유와 감정의 진동을 집요할 만큼 섬세하게 보여준다. 관광 명소 위주의 빠른 소비형 여행에서 벗어나, 골목 안 작은 갤러리와 독립 예술 공간, 그 안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와 갤러리스트, 지역의 문화 생태계를 함께 비추며 ‘도시를 소비하지 않고 감각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파리의 고급스러운 마티뇽 거리 갤러리부터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벨빌, 호맹빌의 공간들까지, 저자는 각 갤러리의 ‘결’을 읽어낸다. 아르 브뤼, 팝 아트, 초현실주의, 사진, 드로잉 등 다루는 매체와 사조는 제각각이지만, 전시와 작품, 리플릿 하나까지 각자만의 리듬과 서사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좋은 갤러리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객관적 기준을 넘어 자신에게 맞는 ‘좋아하는 갤러리’를 찾는 일이 결국 각자의 감각과 결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예술의 순수성과 상업성, 취향과 문화적 위계, 로컬과 글로벌이 교차하는 지점도 이 책이 놓치지 않는 화두다.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의 현실을 마주하며 “예술의 순수성이란 무엇일까?”를 묻고, 세미오즈 같은 공간이 취향과 위계에 질문을 던지며 문화의 민주화를 지향하는 태도에 공감한다. 비판과 옹호 사이에서 “구별을 지연시키는 애매함”을 택하는 저자의 태도는, 동시대 예술을 대하는 한 가지 정직한 방식으로 읽힌다.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 속 벨빌을 떠올리며 실제 벨빌의 갤러리를 걷는 장면, 퐁피두 센터 앞 분수에서 누보 레알리슴의 시간과 현대미술의 자유로운 정신을 함께 읽어내는 대목 등, 문학과 예술, 도시의 시간이 겹쳐지는 장면들은 이 책을 단순한 예술 기행서가 아닌 ‘감각의 기록’으로 만든다.

저자는 말한다. “갤러리 안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데는 어떠한 자격도 필요하지 않았다. 작은 유리문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갤러리들과 그 속의 예술은 이미 나를 환영해 줄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눈은 도시를 걷고, 마음은 예술을 본다』는 그 문 앞에서 망설이는 이들에게,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작은 용기와 호기심을 건네는 책이다. 

▲저자 - 최보영

한국, 프랑스, 호주 등 세계 여러 나라를 이동하며 미술 저술가, 갤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책을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 처음 갤러리에 들어섰던 날, 예술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그저 예술계에 속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게 글을 쓸 수 있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술을 공부하면 할수록 어떤 갈증이 계속 쌓였다. 왜 아무도 예술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않는지.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듯, 전시를 보고도 한참을 떠들고 싶었다. 약 2년 반 동안 파리에 머물며, 수많은 갤러리 속 무한한 예술을 마주했다. 갈증을 해소하려면 내 경험부터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시작으로, 우리 함께 예술을 이야기하자는 초대장을 보내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대학 시절부터 글쓰기에 몰두해 <디아티스트 매거진>에서 웹칼럼니스트로서 활동했다. <아트인컬처> 평론 프로젝트 ‘피칭’ 제6회에 선정되었으며, <아트인컬처>와 ACA Project 등 국내외 예술지에 기고하고 있다. 2020년부터 브런치에 예술과 일상을 다룬 에세이를 연재 중이다. 

국어국문학과 예술사학을 전공했고, 예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갤러리 ‘기체’에서 미술 일을 시작하며 갤러리의 작동 방식을 배웠다. 이후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전시 기획과 연구를 경험했다. 이 책에 쓴 글과 인터뷰를 계기로 현재 파리의 ‘갤러리 바지우’에서 한국 미술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주홍콩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응노와 박인경: 예술적 삶의 동행》을 기획했으며, ‘2025 KIAF 서울’에서 갤러리 바지우 부스를 총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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