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거리 곳곳에는 자극적인 문구와 원색적인 비난으로 채워진 현수막이 내걸리고 확성기 유세 차량의 방송까지 이어지며 시민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정책과 민생을 둘러싼 논의보다 혐오와 비방 중심의 메시지가 반복되면서 정치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일부 후보와 정당이 내건 자극적·공격적 현수막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조전혁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게시한 ‘동성애 교육 추방’ 문구의 현수막은 교육·시민단체의 반발을 불러온 데 이어 교원단체와 진보 진영 후보들까지 비판에 가세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 26일 성명을 통해 “교육 현장에 존재하는 성소수자 구성원을 배제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며 현수막 철거를 촉구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해당 현수막에 대한 신고 운동에도 나선 상태다.
정당 간 ‘맞불 현수막’ 경쟁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국민의힘 현수막 문구에 대응해 진보당이 이른바 ‘댓글 현수막’을 내건 사례가 화제를 모았다. 지난 13일 진보당 전국대학생위원회 박태훈 준비위원장이 SNS에 공개한 사진을 보면 국민의힘이 “대통령도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자. 2017년 3월10일 이재명”이라고 적은 현수막 아래로 “그래서 윤석열이 감옥에 갔습니다. 2026년 2월19일 윤석열 1심 무기징역 선고”라고 적힌 진보당 현수막이 걸려있다. 국민의힘 현수막에 과거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발언이 적히자 진보당이 바로 아래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내용을 언급한 현수막을 게시하며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외에도 “개헌은 공산주의로 가는 길 터주기” 등 객관적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나 경쟁 후보를 겨냥한 이른바 ‘흠집내기용’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 일부 지역에 게시되며 도마 위에 올랐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철거한 정당 현수막은 총 10만2238개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문제는 이 같은 현수막 경쟁이 정책과 공약 중심의 선거 문화를 약화시키고 시민 피로도를 키운다는 점이다. 거리 곳곳에 난립한 현수막은 원치 않아도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만큼 시민들에게 일종의 ‘공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1월 11일 이재명 대통령은 “저질스럽고 수치스러운 내용의 현수막”이라고 언급하며 정당 현수막에 대한 규제 추진을 주문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같은 달 18일 ‘혐오·비방성 정당 현수막에 금지광고물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과 행정안전부 가이드라인은 차별·혐오 표현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 설치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철마다 상대 진영을 겨냥한 원색적 비난과 혐오 표현이 반복되면서 제도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 행정안전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달간 ‘불법 현수막 집중 정비 기간’을 운영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효과가 크지 않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단속 기준이 행정안전부 지침 수준에 머물러 있고 위반 시 제재 역시 과태료 부과에 그쳐 억제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현수막 게시 방식은 갈수록 대형화·지능화되는 모습이다. 건물 외벽을 통째로 덮는 초대형 현수막부터 공식 선거운동 시작 직전 미리 자리를 선점하는 이른바 ‘알박기 현수막’까지 등장하며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를 파고들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또 일부 현수막이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가려 안전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소음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확성기를 이용한 유세 차량이 주거지역과 학교 주변을 반복적으로 오가면서 시민들의 일상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과도한 소음과 시각적 자극이 시민 생활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당 현수막을 둘러싼 특혜 논란과 환경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수막 제작·설치·철거 비용 상당 부분이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정당보조금에서 지출되는 데다 주재료인 플라스틱 계열 합성섬유는 자연 분해가 어려워 대부분 폐기 과정에서 소각 처리된다.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와 유해물질이 배출돼 환경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신율 교수는 “대형 현수막과 확성기 중심의 선거운동 문화는 사실상 한국에서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방식”이라며 “해외에서는 소규모 벽보나 온라인 홍보 중심으로 선거운동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대형 현수막이나 확성기 유세가 유권자 관심과 지지에 미치는 영향 역시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부정적·비방성 현수막은 정치적 냉소를 확산시켜 유권자 참여를 위축시킬 수 있고 실제 선거 효과는 제한적인 데 비해 환경오염·도시미관 훼손·안전 문제 등 사회적 비용은 크다”며 “국내에서도 현수막 제도의 존폐 자체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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