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N유산] 신라 왕릉 파란 유리병, 로마의 길을 건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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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N유산] 신라 왕릉 파란 유리병, 로마의 길을 건넜나

뉴스컬처 2026-05-27 12:01: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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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형 유리병.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봉수형 유리병.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파란 유리 손잡이에 순금 금사가 감겼다. 부러진 손잡이를 감춰 장식한 흔적이자, 버리기보다 고쳐 쓰려 한 정황이다. 병 한 점은 금관 못지않게 신라 왕실의 취향과 외부 교류를 말한다. 경주 대릉원 황남대총 남분에서 나온 봉수형 유리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국보다. 높이는 25㎝에 달한다. 황남대총은 북분과 남분이 잇닿은 대형 쌍분이다. 남분에서는 금관·금제 장신구·말갖춤·토기 및 외래계 유리기가 확인됐다.

발굴 당시 봉수형 유리병은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운 파편 상태였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은 1984년 깨진 단면, 색, 두께를 맞춰 약 180여 개 유리 조각을 접합했다. 파편 사이의 질서가 맞춰지자 계란형 몸통, 나팔형 입구, 봉황 머리를 닮은 주구가 드러났다. 봉수형이라는 명칭은 봉황 머리를 닮은 입구에서 나왔다. 몸통은 대롱불기 기법으로 만들었다. 입구는 액체를 따르기 쉽게 넓게 벌어졌다. 끝부분에는 손잡이와 어울리는 파란 띠가 둘러졌다.

손잡이는 가장 강한 단서다. 파란색 손잡이는 세 조각으로 부러진 상태였다. 누군가는 깨진 손잡이에 순금 금사를 감아 다시 고정했다. 수리는 기능 회복과 장식 효과를 모두 노린 선택으로 보인다. 유리병이 신라 왕실에서 얼마나 귀하게 다뤄졌는지 보여주는 흔적이다. 황남대총에서는 파상문 유리잔, 목리문 유리잔, 원형커트 유리잔 등 외래계 유리기들이 나왔다. 수량과 성격 모두 한반도 고분 유리기 중 이례적이다. 신라 왕실이 먼 지역에서 온 물품을 받아들이고, 왕릉 부장품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제작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형태와 기술은 동지중해와 서아시아 유리기 전통을 닮았다. 봉수형 유리병은 액체를 따르는 주자 계통 용기와 가깝다. 고대 그리스 오이노코에에서 비롯된 형태가 로마·사산조 페르시아권 유리기 안에서 변형됐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대롱불기 기법은 유리 용기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로만글라스로 불리는 유리제품 확산과도 관련된다. 로만글라스는 유라시아 초원길과 교역망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했다. 신라 고분 출토품은 먼 교류망의 동쪽 끝에서 확인되는 물증으로 평가된다.

봉수형 유리병 1980년대 복원 모습(좌)과 2015년 재복원 모습(우).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봉수형 유리병 1980년대 복원 모습(좌)과 2015년 재복원 모습(우). 사진=국립중앙박물관

 

1984년 복원 뒤에도 문제는 있었다. 박물관 전시와 시간이 겹치며 기존 접착제는 황변과 접착력 저하를 보였다. 과거 최신 재료로 쓰인 에폭시 수지가 유리의 투명도를 가리고 구조 안정성까지 흔들자 국립중앙박물관은 2015년 재복원을 진행했다. 작업은 기존 접착제를 제거하고 구조를 다시 안정시키는 과정이었다. 푸른빛 유리와 금사 손잡이는 복원 전보다 맑은 상태로 정리됐다. 파편으로 출토된 유물이 보존과학의 손에서 다시 전시 가능한 국보가 된 셈이다.

봉수형 유리병은 신라 왕실이 먼 지역의 물품과 기술을 받아들이던 고급 소비층이었음을 말한다. 금관이 권력을 드러낸다면, 파란 유리병은 교류와 취향을 증언한다. 깨진 손잡이를 순금으로 감은 선택은 유리 하나가 왕실 내부에서 귀중품으로 다뤄졌음을 증명한다. 유물 한 점은 파편, 수리, 복원이라는 시간을 거친다. 황남대총 남분에서 살아난 봉수형 유리병은 신라가 받아들인 세계와 왕실이 선택한 아름다움을 한 몸에 담은 국보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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