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교육포럼은 조기 사교육 광풍 속에 대한민국 아이들의 빼앗긴 시간을 되찾기 위한 26인의 릴레이 기고 '아이들의 시간을 지켜주세요'를 연재합니다. 4살 아이가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치르고, 만 5세가 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실이 텅 비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영유아 교육의 현실입니다. 조기 선행학습은 아이들의 발달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누려야 할 놀이와 탐색의 시간을 빼앗고 있습니다. 영유아 교육 현장의 교사, 연구자, 부모, 정책 전문가 26인은 조기 사교육이 아이들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교육 현실을 짚고, 국가와 사회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조기가 아닌 ‘적기교육’을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제안합니다. 빨리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때 자라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권리입니다. -편집자 말
영유아 사교육이 일상화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조기 선행학습이 아동 발달과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놀이와 발달 중심의 ‘적기교육’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베이비뉴스
2025년 3월 13일 통계청과 교육부가 처음 공개한 「2024년 유아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를 통해 사각지대에 있던 영유아 사교육 실태를 시범적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사에 따르면 6세 미만 영유아의 사교육 참여율은 47.6%, 참여 유아 기준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3.2만 원, 영어학원 유치부는 월평균 154.5만원에 이른다.
특히 가정 양육 유아의 3시간 이상(반일제) 학원 참여율은 3세 66.9%, 4세 80.0%, 5세 80.8%로, 사실상 대다수 유아가 사교육 영역에 참여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4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서 “영유아기부터 시작되는 사교육의 만연은 아동의 행복추구권과 발달권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방임”이라고 지적했다.
‘4세 고시’와 ‘7세 고시’는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그러나 이 현상의 본질은 자녀를 위한 ‘열의’로 보기엔 우려스러운 점이 상당하다. 발달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시기에 강요되는 학습과 연령에 적합하지 않은 경험은 아이의 뇌와 마음에 분명한 흔적을 남긴다.
따라서 ‘적기교육’은 ‘아이의 조화로운 성장과 발달을 위한 당연한 권리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국가의 윤리적 선택이자 책임 있는 교육의 방향성이다.
◇ 뇌과학이 말하는 ‘적기’의 의미
영유아기는 인간 발달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민감한 경험의존적 시냅스 형성기로, 생애 초기 몇 년 동안 매초 100만 개 이상의 신경망이 형성되고(Shonkoff & Phillips, 2000), 사용되지 않는 회로는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를 거쳐 정리된다(Center on the Developing Child at Harvard University).
영유아의 뇌는 ‘정보를 많이 투입해서’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험을 통해 통합적으로 회로를 연결했는가’에 따라 정교해진다.
Diamond(2013)는 메타분석을 통해 유아기 실행기능이 학업, 사회·정서, 신체·건강 영역에 걸쳐 “지능보다 더 강력한 인생 예측 변인”임을 검증했다. 발달에 맞는 놀이와 활동, 상호작용은 전전두엽 회로를 정교화하는 반면, 발달 단계와 맞지 않는 맥락이 제거된 단편적 학습과제나 학업 부담은 회로의 활성화를 오히려 방해한다. ‘적기’의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2026년 발표된 종단연구는 생후 6개월~1세의 운동 기술이 만 3세 실행기능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예측함을 보고했고(Liu, C., Zhang, Y., & Liang, X. (2026), 영아기 운동·인지 능력이 이후 실행기능 발달과 직접 연결됨을 보여 주는 다수의 종단연구도 누적되어 있다.
결국 영유아기는 ‘몸으로 배워야 머리가 자라는 시기’다. 풍부한 경험의 세계가 부재한 책상 위 학습을 앞당기는 것은 이 토대 형성을 위한 시간을 빼앗는 일이다.
◇ 발달에 맞지 않는 학습이 가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
조기 선행학습이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아직 미성숙한 영유아의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HPA)은 반복되는 과제 실패와 평가 압력으로 인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지속적인 상승을 유발하므로 이는 유아기 만성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미국 국가발달과학자문위원회는 영유아기의 만성적 ‘독성 스트레스(toxic stress)’가 해마와 전전두엽의 구조와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남길 수 있음을 명시했다(National Scientific Council on the Developing Child, 2014).
또한 자기주도성을 훼손할 수 있는 학습 동기의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Stipek 등(1995)이 4–6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직접 교수 중심 프로그램을 경험한 아동은 아동 중심 프로그램을 경험한 아동에 비해 스스로의 능력을 더 낮게 평가하고, 학업 과제에서 성공 기대가 더 낮으며, 학교에 대한 걱정과 자기 성취에 대한 자부심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11월 강득구 의원실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85.2%가 ‘조기 인지교육이 영유아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으로 학업 스트레스(95.7%), 학습 자율성 저하(69.6%), 창의력 저하(60.9%)를 꼽았다.
2025년 4월 육아정책연구소에서 수행한 정책연구에서도 영유아기 사교육 경험은 언어능력, 문제해결력, 실행기능 등 주요 인지발달 지표와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발달에 맞지 않는 조기 선행학습은 ‘조금 일찍 배우는 일’이 아니라, 아이의 뇌에서 지금 형성되어야 할 네트워크를 위한 자원을 오히려 중요도가 낮은 기능을 위해 다른 곳으로 빼앗는 일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가정의 선택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 소위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영어학원에 대한 사실상의 방치, 영유아 사교육 통계의 국가승인통계 정례화 지연, 초등 입학 전 학습 격차에 대한 사회적 불안 현상 모두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영유아에게 가해지는 제도적인 형태의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 적기교육은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에게 생존과 최대한의 발달을 보장받을 권리(제6조), 잠재능력의 충분한 개발을 지향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제29조), 충분히 쉬고 놀 권리(제31조)를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1991년 비준한 이 협약은 학습의 시점과 방식이 아동의 발달 단계에 부합하도록 각 국가가 국제적으로 연대할 것을 요청한다.
「2019 개정 누리과정」 역시 ‘유아·놀이 중심’을 명시하며, 아이의 발달과 흥미에서 출발하는 교육이 국가 수준의 책임임을 명문화했다.
이런 관점에서 ‘적기’는 단지 교육 투자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아이가 해야 할 경험을 우리 사회가 보장하는가’라는 정의(justice)의 문제이다.
적기교육은 국가가 아이의 시간과 경험 그리고 아동의 권리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윤리적 입장이고, 제도적으로 실행되어야 하는 국제적 연대이다.
◇ 국가가 책임져야 할 ‘적기’의 회복
이제 우리는 영유아기를 위한 책임 있는 교육의 목표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아동권리 측면에서 영유아의 일상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가승인통계로 영유아기 사교육실태조사가 정례화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또한 반일제 이상 영어학원에 대한 실효적 규제를 통해 이 시기의 영유아가 학원이 아닌 질적으로 우수한 교육의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울타리가 필요하다.
영유아기 적기교육을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수행될 수 있도록, 즉 초·중등 입시·평가 구조의 연쇄가 영유아기까지 내려오지 않도록, 상위 학교급 정책과 함께 영유아기 교육과 보육 정책 및 제도가 포괄적으로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적기’는 결국 아이의 시간과 권리를 존중하는 일이다.
어린이의 시간은 아름답게 그리고 온전히 어린이의 행복을 위해 흘러가야 한다. 어린이의 시계에 행복 대신 어른의 불안을 불어넣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국가가, 모든 구성원이 적기교육이라는 윤리적인 교육의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책임 있는 교육의 기준이 ‘남들보다 먼저, 얼마나 일찍’이 아니라 ‘아이들의 고유한 시간을 존중하는, 어린이 각자의 적기에’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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