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다 보면 한 번쯤 슬럼프에 빠진다. 익숙하던 일이 갑자기 낯설어지고, 잘해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느낌. 이런 순간이면 어떻게 마음을 붙잡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때 한국 축구의 전설 박지성이 풀어놨던 과거 이야기가 재조명된다. 그가 방송에서 털어놓은 슬럼프 극복 방법은 발언 이후 지금까지도 온라인에서 꾸준히 회자되며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박지성 자료사진. 박지성이 2026년 4월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삼성과의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뉴스1
"공이 무서워졌다"…전설도 무너지는 순간이 있었다
박지성은 과거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 3'(2021)에 출연해 유럽 진출 초기의 힘들었던 시절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바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이었다. 당시 박지성은 한국 대표팀을 4강 신화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 유니폼을 입었다. 유럽 무대라는 꿈의 땅에서의 새 출발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언어의 장벽, 낯선 문화, 그를 괴롭혀온 무릎 통증이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해당 방송에서 박지성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일본에서 뛰던 시절부터 이미 무릎에 이상이 있었지만 아무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PSV 팀 닥터들도 MRI를 찍어봤지만 허사였다. 그러다 마침내 진단이 내려졌다. 무릎 연골 파열이었다. 제거 수술이 불가피했다.
이윽고 회복까지의 과정은 기술적 어려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홈 구장에서 3만여 명의 관중이 만들어내는 야유가 박지성을 향했다. 교체 선수로 들어가기 위해 서 있기만 해도 야유가 쏟아졌고, 공이 그의 발에 닿는 순간 함성은 사라지고 냉소가 경기장을 가득 채운 일화가 전해졌다.
방송에서 박지성은 "당시에는 축구하는 게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런 느낌은 그때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운 속내를 고백하기도 했다.
2021년 6월 10일 방송된 '대화의 희열 3' 관련 자료사진. / 유튜브 'esports KBS'
박지성이 선택한 하나의 방법
박지성은 그 깊은 바닥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섰을까. 그의 해답은 놀라울 만큼 단순했다.
방송에서 박지성은 "공이 무섭기 시작할 때는 사소한 것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짧은 패스 하나에도 스스로를 칭찬했다"고 슬럼프 극복 방법을 전했다.
그는 공을 받아서 옆 선수에게 건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했다고 한다. 낮은 곳에서 출발해 한 걸음씩 신뢰를 조각조각 다시 쌓았다.
2021년 6월 10일 방송된 '대화의 희열 3' 관련 자료사진. / 유튜브 'esports KBS'
1년여의 슬럼프 극복 시간을 보내고 박지성은 2004년 UEFA컵 페루자와의 원정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반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박지성은 "그 경기를 뛰고 나서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구나 했다. 그 후로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낀 경기가 없었다. 아마 그 경기를 기점으로 모든 게 변했던 것 같다"고 방송에서 회고했다.
박지성의 슬럼프 극복법은 방송 당시부터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누리꾼들은 "지혜롭게 헤쳐 나왔다", "확실하게 성공한 작은 것부터 하나씩 칭찬해가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줄여나가는 게 와닿는다", "캡틴이 괜히 캡틴이 아니다", "축구선수가 아니라 그냥 한 인간으로 정말 존경한다", "마인드 컨트롤 정말 멋지다", "긍정적인 마인드 진짜 멋지다 존경스럽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AI로 생성한 자료사진.
작은 칭찬이 다시 일으켜 세운다
박지성의 이야기는 단순한 스포츠 성공담이 아니다. 그 안에는 극심한 압박과 실패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를 추스르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기반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의 회복이라고 설명한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정립한 개념인 자기효능감이란, 특정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스스로의 믿음을 말한다. 이 믿음이 충분히 강할 때 인간은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선다. 반대로 이 믿음이 흔들릴 때 사람은 쉬운 일조차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긴다.
자기효능감을 회복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성공 경험의 축적'이다. 크고 화려한 성공이 아니어도 된다. 아주 작은 성공이라도 자주, 꾸준히 경험하다 보면 '할 수 있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특히 울림이 크다. 수십 년을 살아오며 익숙하게 해오던 일이 어느 순간 벅차게 느껴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직장에서의 위기, 사업의 어려움, 건강의 변화, 인간관계의 단절 등 우울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은 '더 이상 안 돼'라는 결론으로 너무 빨리 도달하기 쉽다.
하지만 회복의 출발점은 언제나 작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 밥 한 끼를 제대로 챙겨 먹는 것, 오래 미뤄온 일 하나를 처리하는 것. 그 작은 실천 하나로 스스로에게 '잘했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다시 일어서는 첫 번째 계단이다.
AI로 생성한 자료사진.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스스로에게 건네는 격려를 '자기 자비(Self-compassion)'라고도 부른다. 타인에게는 너그러우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혹독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 현대인의 흔한 패턴이다. 그러나 자기 자비는 실패 후 빠르게 회복하고, 지속적인 동기를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자기를 향한 따뜻한 시선이 사치가 아니라 회복력의 핵심 연료라는 뜻이다.
슬럼프 속에서 가장 위험한 함정은 전성기의 자신 혹은 지금 잘나가는 타인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다. 스스로 한창 잘나가던 시절이나 아무 탈 없이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기준으로 삼는 순간, 본인은 언제나 초라해진다. 회복의 실마리는 그 비교의 기준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 어제보다 조금 더, 아니 어제와 같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하루 일과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다시 올라서는 사람들의 공통된 출발점이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위기가 사람을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위기 앞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이후의 삶에 더욱 중요하다.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해내고 자신에게 '잘했어'라고 속삭이는 것. 인생의 흔들림 앞에 방황하고 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태도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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