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N] “딥 러브가 아니다”… 정준필이 말하는 깊은 사랑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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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N] “딥 러브가 아니다”… 정준필이 말하는 깊은 사랑의 정체

뉴스컬처 2026-05-26 17:54: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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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필의 깊은-舍廊 – 경기잡가편’ 포스터. 사진=한국전통문화예술원
‘정준필의 깊은-舍廊 – 경기잡가편’ 포스터. 사진=한국전통문화예술원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사랑방은 집 안의 방이다. 하지만 소리꾼에게는 작은 극장이었다. 병풍과 보료가 놓이고, 짚으로 엮은 지붕 아래 사람들이 모였다. 농한기의 밤, 채소를 저장하던 반지하식 움집은 소리판이 됐다. 귀명창은 가까운 거리에서 창자의 숨을 들었다. 소리꾼은 평가를 받거나 제자를 가르쳤다. 소리꾼 정준필의 ‘깊은-舍廊’은 사라진 방의 온기를 무대로 옮기는 작업이다. 공연명이 말하는 ‘깊은 사랑’은 남녀 사이의 애정을 뜻하지 않는다. 한자 舍廊(사랑), 곧 사랑채의 뜻을 품은 공간적 개념이다. 경서도소리 주변에서 만들어진 감상 문화, 창자와 관객이 깊숙이 마주 앉던 소리방의 기억을 가리킨다.

‘정준필의 깊은-舍廊 – 경기잡가편’의 무대는 경기소리를 좋아해 온 한 젊은 창자가 자신에게 각인된 소리 문화의 출발점을 되짚는 자리다. 정준필은 18세 무렵 늦은 밤 국악방송 라디오 다시듣기에서 ‘깊은 舍廊’이라는 공간을 알게 됐다. 다음 날 다시 찾아 공부한 기억을 공연의 첫 인연이 됐다. 중앙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정준필은 ‘정준필의 깊은 사랑’ 대표, 창작집단 더하기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9회 서산 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대상과 제45회 전국 고수대회 일반부 대상을 받았다. 서울시 무형유산 제40호 수표교다리밟기 선소리산타령 이수자이기도 하다. 선소리와 잡가, 고법을 오가며 쌓은 경력은 이번 경기잡가편의 골격을 이룬다.

프로그램은 경기소리의 여러 갈래를 한눈에 펼쳐진다. ‘경기 12잡가 - 적벽가’, ‘휘몰이잡가 - 장기타령’, ‘휘몰이잡가 - 곰보타령’, ‘경기입창 - 자진산타령’, ‘잡잡가 - 변강쇠타령’, ‘잡잡가 - 금강산타령’이 차례로 오른다. 긴 사설의 장중함, 빠른 사설의 익살, 서서 부르는 입창의 활달함, 잡잡가의 서민적 말맛이 한 무대 안에서 흐름을 만든다.

경기잡가는 앉아서 부르는 좌창과 서서 부르는 입창의 성격을 품은 서울·경기권 소리 문화다. 경기잡가의 좌창을 12잡가와 휘모리잡가로 나눈다. 경기 입창으로 경기 선소리 산타령을 제시한다. 12잡가에는 유산가, 적벽가, 선유가, 제비가, 집장가, 소춘향가, 형장가, 평양가 등과 잡잡가 계열이 자리한다. 휘모리잡가는 곰보타령과 장기타령 등 익살스러운 사설을 빠른 한배로 촘촘하게 엮어 부르는 노래다. ‘적벽가’는 출발점에 놓인 곡목답게 공연의 무게를 세운다. 경기 12잡가 안의 적벽가는 판소리 다섯마당의 적벽가와 다른 전승 맥락을 가진다. 장대한 서사, 한문투 사설, 굵은 호흡이 좌창 특유의 긴장감을 만든다. 정준필에게 적벽가는 경기잡가의 깊이를 여는 문이다. 사랑방 안에서 귀명창과 마주하던 소리꾼의 집중이 필요한 곡목이기 때문이다.

‘장기타령’과 ‘곰보타령’은 분위기를 바꾼다. 휘몰이잡가는 이름처럼 사설을 빠르게 몰아가는 맛이 핵심이다. 장기판의 말놀림, 곰보라는 인물을 둘러싼 해학은 웃음을 앞세운다. 하지만 소리꾼에게는 만만치 않은 기술을 요구한다. 말이 빨라질수록 발음은 또렷해야 한다. 장단은 흐트러지면 안 된다. 소리의 속도와 말맛, 익살과 기량이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다. ‘자진산타령’은 경기입창의 호흡을 무대에 세운다. 경기 선소리 산타령은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으로 구성되는 대표 입창 계열이다. 서서 부르는 소리인 만큼 몸의 탄력과 목의 높이가 함께 요구된다. 자진산타령은 공연 중반 이후 객석의 기운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는다. 사랑방의 밀도는 입창의 열린 호흡으로 넓어진다.

‘변강쇠타령’과 ‘금강산타령’은 잡잡가의 영역에서 경기소리의 폭을 보여준다. 변강쇠타령은 익살과 노골적 생명력을 품는다. 금강산타령은 산천을 노래하는 소리의 유장함을 담는다. 두 곡은 경기소리가 점잖은 감상물로만 남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사랑방의 소리는 세상살이의 웃음, 욕망, 풍류, 경치를 모두 끌어안았다. 정준필이 왜 이 소리들을 지금 다시 부르는가에 있다. 민요가 지닌 진솔한 울림을 말한다. 전통은 오래된 형식을 보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감정 속에서 끊임없이 흘렀다는 고백이다. 경기잡가편은 고백을 소리로 꺼내는 자리다.

'깊은-舍廊'은 관객과 창자의 거리를 좁히려는 이름이기도 하다. 사랑방의 감상 방식은 훨씬 가까웠다. 귀명창은 창자의 숨을 놓치지 않았다. 창자는 객석의 기운을 받아 소리를 밀고 당겼다. 정준필은 거리감을 공연장 안에서 다시 실험한다. 해설과 창, 반주진의 호흡은 소리방의 대화성을 살리는 장치가 된다. 수표교다리밟기 이수자로서의 이력도 공연의 뿌리를 설명한다. 수표교다리밟기는 정월대보름 밤 다리를 밟으며 무병과 안녕을 기원하던 세시풍속이다. 서울 도심의 풍류와 민속, 소리와 놀이가 어우러진 전승 현장이다. 선소리산타령 이수자로 훈련된 정준필이 경기잡가를 무대 전면에 서는 일은 좌창과 입창, 방 안의 소리와 바깥의 놀이가 만나는 장면으로 읽힌다.

‘정준필의 깊은-舍廊 – 경기잡가편’은 젊은 소리꾼이 자신의 첫 감동을 되짚고, 오랫동안 마음에 둔 곡목을 관객 앞에 꺼내는 고백형 소리판이다. 적벽가의 장중함, 장기타령과 곰보타령의 말맛, 자진산타령의 활기, 변강쇠타령과 금강산타령의 풍류가 정준필의 목을 거친다. 사랑방은 사라졌지만, 소리를 듣는 귀는 사라지지 않았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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