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25] 베니 하산, 이집트 미술의 금기를 깨다② 베니 하산 벽화가 말하는 삶과 예술에 이어
[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나일강의 푸른 물줄기를 따라 이집트의 심장을 관통하다 보면, 파라오 아케나텐이 태양신 아톤을 위해 세웠던 신성한 혁명의 도시 ‘아마르나’를 지나치게 된다. 관습과 형식을 과감히 깨부수고 인간의 육체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분출했던 아마르나 예술의 파격은 과연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그 예술적 해답을 찾기 위해 아마르나에서 조금 더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석회암 절벽과 마주할 수 있다. 바로 중왕국 시대(기원전 약 2000년경)의 찬란한 숨결을 품은 고요한 유적지, 베니 하산(Beni Hasan)이다. 거대한 피라미드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이 호젓한 절벽 고을에는, 수백 년 후 아마르나에서 만개하게 될 지극히 생생하고도 정겨운 사실주의 미술의 씨앗이 이미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앞선 글들에서 우리는 이 절벽에 깊숙이 들어앉은 두 개의 거대한 무덤을 이미 만난 바 있다. 바로 제11왕조 말기와 제12왕조 초기의 격동기를 당당히 호령했던 바케트 3세(Baket III)와 그의 아들 케티(Khety)의 무덤이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끈끈한 혈연관계로 묶인 이 두 무덤은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거칠게 깎아낸 바위기둥들이 천장을 아슬아슬하게 떠받치고 있으며, 벽면 가득히 군사들의 치열한 전투 장면이나 혹독한 신체 훈련을 받던 전사들의 모습, 그리고 소박한 일상의 풍경들이 빼곡하게 펼쳐진다. 이 두 무덤은 인간 신체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포착해 낸 뛰어난 사실주의적 시선과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했던 당대인들의 당당한 기백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울림을 주었다.
이제 우리는 그 아버지와 아들의 방을 지나, 베니 하산 미술의 정점이자 찬란한 종착지라고 할 수 있는 ‘크눔호텝 2세(Khnumhotep II)’의 무덤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한다. 앞서 마주했던 무덤들이 인간의 역동적인 묘사와 사실적인 행동의 기록한 공간이었다면, 크눔호텝 2세의 방은 수백 년간 축적된 중왕국 미술 고유의 사실주의가 가장 우아하고 세련된 필치로 만개한 결정체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고대 이집트의 일반적인 특정 인물에 대한 신격화의 틀을 깨고 인간의 삶을 지극히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고대 예술가들의 위대한 도전을 목격하게 된다. 수천 년의 침묵을 깨고 무덤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단순한 죽음의 공간이 아닌, 마치 어제까지도 숨 쉬며 살아 움직였을 것 같은 생생한 축제의 현장이 우리를 맞이한다.
무덤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사방을 가득 채운 벽화의 압도적인 아우라다. 천장을 가로지르는 ‘굵은 들보(Beam, 건축물에서 지붕이나 상부층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기둥과 기둥 사이에 가로로 길게 건너지른 단단한 상부 구조물을 뜻함)’는 이 지상에 존재했던 화려한 궁전의 지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고, 벽면 가장 윗부분에는 이집트 특유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마치 아름다운 띠처럼 둘러 있어 공간에 안정감을 더한다. 정면 중앙을 바라보면 작은 문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묘주의 석상이 안치되어 사후 세계의 영혼이 머물던 신당으로 향하는 입구다.
이 문을 중심으로 좌우 벽면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거대한 사냥 그림들이 펼쳐진다. 수천 년 전의 예술가들은 이 어둡고 깊은 바위 무덤 안을 찬란한 빛과 색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단부의 흰 바탕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조금 바랬지만, 붉은색과 황토색으로 칠해진 인물과 동물들은 금방이라도 벽을 뚫고 걸어 나올 것처럼 여전히 선명한 빛을 발하고 있다.
눈길을 왼쪽으로 돌리면, 무덤의 주인인 크눔호텝 2세가 거대한 활시위를 힘차게 당기고 있는 역동적인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고대 이집트 미술의 독특한 규칙에 따라, 무덤의 주인은 주변의 시종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그려져 있다. 얼굴과 다리는 측면을 향하고 있지만 상체는 정면을 바라보는 이집트 특유의 신체 표현 방식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부자연스러울 법도 한 이 자세가 예술가의 정교한 솜씨 덕분에 오히려 당당하고 위엄 있는 기품을 자아낸다.
활시위 너머로는 부드러운 모래 언덕을 표현한 선들 위로 야생 동물들이 사력을 다해 도망치고 있는 듯 하다.
특히 무덤 주인의 발밑에서 함께 내닫는 사냥개의 모습이 무척 흥미롭다. 날렵하게 잘 빠진 다리와 쫑긋 세운 귀, 긴 꼬리는 오늘날의 사냥개와 비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사실적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이 사막의 수렵은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날뛰는 야생 동물을 제압하는 것은 우주의 거대한 질서와 평화를 위협하는 혼돈의 세력을 통제한다는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선언이었던 셈이다.
사막의 거친 수렵 뒤에는 풍요로운 나일강의 풍경이 이어진다. 벽면 한편에는 강바람을 맞으며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커다란 목조 배가 그려져 있는데, 길쭉하고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선체 한가운데에는 굵고 튼튼한 돛대가 우뚝 솟아 있다. 바람이 잦아들었는지 돛은 깔끔하게 접혀 있고, 배에 탄 선원들은 일제히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배의 방향을 잡거나 노를 저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인물들의 피부는 뜨거운 이집트의 태양 아래서 오랫동안 일해 온 남성들의 전형적인 빛깔인 짙은 적갈색으로 물들어 있다.
비록 오랜 세월 동안 벽면이 마모되어 세부적인 윤곽은 흐려졌지만, 선원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에너지만큼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중왕국 시대 미술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땀방울과 노동의 숭고함을 놓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해 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풍요의 극치를 보여주는 습지에서의 낚시 풍경이다. 예술가들은 나일강 삼각주의 울창한 숲과 그 아래 펼쳐진 풍성한 수중 세계를 아주 정교하게 묘사했다. 격자무늬로 표현된 거대한 그물 안에는 나일강의 온갖 물고기들이 가득 차 움직이고 있다. 수면 위로는 푸른 연꽃들이 잔잔하게 피어 있고, 그 위로 놀란 야생 오리와 거위들이 날갯짓하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그물 뒤편에서는 일꾼들이 호흡을 맞추어 밧줄을 당긴다. 그리고 그 오른쪽을 보면 사냥이 만족스러웠는지 두 남성이 커다란 물고기들을 가득 꿰어 장대에 걸친 채 어깨에 메고 당당히 걸어가고 있다.
이들에게 이 수많은 물고기와 새들은 단순히 풍요로운 삶의 기록을 넘어설 것이다. 영원한 사후 세계에서도 무덤 주인의 영혼을 굶주리지 않게 지켜줄 소중한 양식이자 제물이었음이 틀림없다.
무덤의 벽면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고대 이집트의 농경 생활을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위아래로 나뉜 칸 속에는 계절의 흐름에 따라 땀 흘리는 농부들의 정직한 시간이 흐른다. 위쪽 칸에는 초록색 안료로 둥글게 다듬어진 무화과나무들이 서 있고, 그 풍성한 가지 사이로 일꾼들이 가방을 하나씩 메고 올라가 익은 과일을 정성스럽게 따 담고 있다. 이 평화로운 과수원 풍경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그 아래 칸으로 시선을 내리면, 이제 막 새로운 농사를 시작하려는 농부들의 바쁜 손길이 보인다. 일꾼들은 허리를 깊숙이 숙인 채 짧은 자루가 달린 괭이로 단단한 땅을 일구고, 그 뒤로 씨앗을 뿌리며 대지 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인물들 사이사이에 적힌 상형문자들은 이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혹은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 같다.
땅을 일구는 작업은 우직한 소의 등장으로 더욱 활기를 띤다. 벽면 한가운데에는 짙은 갈색과 흰색 얼룩이 선명한 황소 한 마리가 쟁기에 몸을 묶은 채 앞으로 묵묵히 나아가고 있다. 소의 앞뒤로는 두 명의 농부가 짝을 이루어 일하고 있는데, 한 남성은 소의 뒤에서 온 힘을 다해 쟁기 손잡이를 붙잡아 날이 땅속 깊이 박히도록 중심을 잡고 있으며, 다른 한 남성은 소의 앞에서 채찍을 든 채 밭의 방향을 인도한다.
황소의 팽팽하게 긴장된 다리 근육과 길게 늘어진 꼬리, 그리고 두 농부의 힘찬 발걸음은 매우 사실적이어서 수천 년 전의 농경 현장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투박하고 정겨운 농사의 풍경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바랐던 영원한 천국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매일 마주하던 이 평화로운 일상의 무한한 반복이었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마침내 이렇게 수확된 세상의 모든 귀한 것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정교하게 나뉜 세 개의 칸을 가득 채운 것은 크눔호텝 2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물을 나르는 사람들의 끝없는 행렬이다.
가장 위쪽 칸에는 깨끗하고 하얀 린넨(Linen) 치마를 입은 고위 관리들과 가신들이 엄숙하고 정돈된 자세로 걸어가며 행렬의 무게감을 더한다.
그 아래 칸들에는 저마다의 일터에서 가져온 풍성한 수확물을 든 시종들이 가득하다. 싱싱한 물고기, 과일이 넘쳐나는 바구니, 향기로운 맥주가 담긴 항아리, 그리고 푸른 파피루스 다발이 끝없이 줄을 잇는다. 맨 아래 칸 좌측에는 제사상에 올릴 통통하게 살찐 소를 소중하게 이끌고 가는 남성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의 머리 위에 빽빽하게 채워진 청록색의 아름다운 상형문자들은 이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의 이름과 직책, 그리고 물목을 하나하나 기록한 정성의 증거들이다.
이 수많은 행렬 중에서도 전 세계 역사학자들과 미술사학자들의 심장을 가장 뛰게 만든 최고의 명장면은 바로 북쪽 벽면 한구석에 자리한 이국적인 손님들의 등장이다. 그들은 이집트인들의 단순한 흰색 옷과 확연히 대조되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붉은색, 푸른색, 흰색 안료가 정교하게 직조되어 독특한 기하학적 줄무늬를 이루는 옷. 이들은 이집트 동북쪽 국경 너머, 가나안과 레반트 지역에서 찾아온 ‘아무(Amu)’ 부족의 사절단이다.
이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문득 그리스도교의 정경인 구약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의 아들, 요셉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아버지가 요셉에게 지어주었다는 성경 속 ‘채색옷’의 시각적 실체가 바로 이 벽화 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시 이집트인들에게 셈족 계열의 유목민들을 통칭하던 ‘아무’라는 표현은, 넓은 의미에서 성경 속 히브리인들의 조상들을 아우르는 말이었다. 벽화 속 사절단은 단순히 무역을 하러 온 군사들이 아니다. 나귀의 등에 짐을 싣고, 여인들과 아이들이 함께 이동하는 모습은 기근을 피해 풍요로운 이집트 땅으로 이주하던 성경 속 야곱 가문의 대이동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연상시킨다.
사절단의 우두머리 이름은 ‘압샤(Absha)’라고 적혀 있으며, 그에게는 ‘외국 땅의 지배자’라는 뜻의 ‘헤카 카세트’라는 칭호가 붙어 있다. 이 단어가 바로 훗날 이집트를 뒤흔든 이민족 통치자, ‘힉소스(Hyksos)’의 어원이다. 고고학적으로 이들이 요셉의 형제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지라도, 성경의 기록이 허구가 아닌 당대 실제 역사의 한 페이지였음을 이보다 더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예술품이 또 있을까? 화려한 채색옷을 입고 사막의 가젤을 예물로 바치며 서 있는 이방인의 모습 앞에서, 종교와 역사는 미술이라는 아름다운 매개를 통해 마침내 하나로 연결된다.
베니 하산의 절벽 위에 자리한 크눔호텝 2세의 무덤을 나서는 순간, 눈앞에는 등 뒤의 어두웠던 무덤과는 대조되는, 눈부신 삶의 풍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무덤 입구에서 바라본 이 나일강 서쪽 기슭의 전경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넘어 고대 이집트인들이 왜 그토록 삶에 집착하고, 그 풍요를 영원히 남기려 했는지 보여주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여기서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미술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에게 벽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단절을 넘어, 현생에서 누렸던 찬란한 삶의 기쁨과 풍요를 저세상으로 그대로 이어가고자 했던 간절한 소망의 마법이었다. 무덤 밖, 눈앞에 펼쳐진 푸른 경작지와 나일강의 생명력이 벽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바케트 3세와 케티의 무덤이 보여준 인간적인 투박함을 지나, 크눔호텝 2세의 무덤에서 만난 정교한 채색옷의 이방인들과 활기찬 농부들의 미소는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시대가 바뀌고 왕조가 무너져도, 땅을 일구고, 사랑하는 이들과 풍요를 나누며, 미지의 세계에서 온 손님을 환대하던 인간의 삶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침묵의 석회암 절벽 속에 박제된 줄 알았던 고대의 예술은, 그렇게 오늘도 이 나일강의 풍요를 배경으로 살아 숨 쉬며 우리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무덤 속 벽화는 결국, 이토록 찬란한 ‘현재’의 영원한 기록이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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