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식사 때마다 먹는 밥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흑미밥 자료사진. / vietanh85-shutterstock.com
많은 이들이 쌀의 품종이나 도정 날짜, 혹은 압력밥솥의 성능을 먼저 떠올린다. 물론 좋은 쌀과 우수한 조리 기구도 중요하지만, 쌀이 밥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무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물'의 성질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떤 물을 사용해 쌀을 씻고 밥물을 맞추느냐에 따라 밥알의 식감과 윤기, 심지어 색상까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속 미네랄 함량이 가르는 '연수'와 '경수'의 차이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물은 크게 '연수(단물)'와 '경수(센물)'로 분류된다.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은 물속에 녹아 있는 칼슘과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 성분의 양이다. 미네랄 성분이 리터당 일정 기준치 이하로 적게 들어 있어 부드러운 성질을 띠면 연수라고 부르고, 반대로 미네랄 함량이 많아 묵직한 성질을 가지면 경수로 분류한다.
지질학적 특성상 한국의 토양은 화강암층이 많아 빗물이 땅속을 통과할 때 미네랄이 비교적 적게 녹아든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공급되는 수돗물이나 국산 생수의 대부분은 연수에 해당한다. 반면 석회암 지반이 많은 유럽이나 일부 해외 지역은 물에 석회질과 미네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대표적인 경수 지역으로 분류된다.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프랑스산 에비앙 같은 수입 생수 상당수가 이 경수에 속한다.
미네랄 성분이 쌀알의 수분 흡수를 방해
문제는 물속에 포함된 칼슘과 마그네슘 등의 미네랄 성분이 밥을 짓는 과정에서 쌀의 물리적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경수로 밥을 지으면 물속의 칼슘과 마그네슘 이온이 쌀 표면에 있는 단백질이나 전분 성분과 단단하게 결합해 일종의 장벽을 형성한다. 이 장벽은 물이 쌀알 중심부까지 깊숙이 스며드는 것을 방해한다.
밥 짓는 모습. (AI로 제작)
수분을 충분히 머금지 못한 쌀알은 가열되더라도 전분이 제대로 호화(풀처럼 점성을 갖는 현상)되지 못한다. 그 결과 밥알이 서로 뭉치지 않고 겉돌며, 씹었을 때 퍽퍽하고 단단한 식감을 내게 된다. 심한 경우 미네랄 성분이 높은 열과 반응하면서 밥의 색상을 하얗지 않고 약간 누렇게 변색시키기도 한다.
반면 미네랄이 적은 연수를 사용하면 수분 분자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쌀 속 깊은 곳까지 빠르게 침투한다. 전분 구조가 안쪽부터 차례대로 부드럽게 풀리면서 밥알 전체가 고르게 익어 한국인이 선호하는 부드럽고 찰진 식감이 완성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윤기가 흐르고 찰기가 도는 밥"은 연수 환경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만들 수 있다.
지리적 물의 특성이 만들어낸 동서양의 식문화 차이
이러한 물의 성질은 동양과 서양의 확연한 쌀 요리 문화 차이를 만들어낸 결정적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공급되는 물의 대부분이 연수인 지역에서는 쌀 자체의 찰기와 부드러운 질감을 온전히 즐기는 식문화가 발달했다. 반찬과 곁들여 먹을 때 입안에서 부드럽게 섞이는 쌀밥 형태를 선호하게 된 배경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이나 중동 등 경수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쌀알이 서로 달라붙지 않고 낱알로 날아다니는 식감의 요리가 주를 이룬다. 스페인의 파에야나 이탈리아의 리소토, 중동의 필라프 같은 요리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요리는 쌀알이 수분을 과도하게 흡수해 뭉개지는 것을 막고, 알갱이 하나하나의 단단한 식감을 살려 소스나 오일과 함께 볶아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즉 환경에 따른 물의 차이가 각 지역의 대표적인 조리법을 규정한 셈이다.
국내 수돗물은 기본적으로 밥을 짓기에 최적의 조건인 연수다. 따라서 굳이 비싼 수입 경수 생수를 사서 밥물로 쓸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국산 수돗물이나 정수기 물이 밥맛을 내기에는 훨씬 유리하다. 다만 수돗물을 그대로 사용할 때 간혹 느껴지는 특유의 염소 냄새가 밥에 배어 맛을 해칠까 봐 염려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이러한 염소 성분과 냄새를 가정에서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수돗물을 받아서 바로 사용하지 않고, 한 번 펄펄 끓였다가 완전히 식힌 후 밥물로 사용하면 휘발성이 강한 염소 성분이 대부분 공기 중으로 날아가 깔끔한 맛을 낼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물을 담은 용기에 깨끗이 씻은 숯을 한 조각 넣어두는 것이다. 숯의 미세한 구멍들이 물속의 잔류 염소와 유기물을 흡착해 물맛을 한층 부드럽게 정화해 준다.
아울러 쌀은 건조한 상태에서 처음 닿는 물을 가장 빠른 속도로 흡수하므로, 쌀을 씻는 첫 물과 마지막 밥물만큼은 정수된 연수를 사용하는 것이 밥맛을 올리는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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