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MBC 예능 '무한도전'에서 방송인 유재석이 짜장면 한 그릇을 맛보려 사투를 벌였던 바로 그 장소. 대중에게는 예능 속 친근한 섬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5월 말 푸른 바다를 건너 당도한 이곳은 뜻밖의 웅장함을 감추고 있다. 바로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국토 최남단, 마라도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작은 섬 하나가 마지막 빛을 받아 조용히 빛난다. 사방이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이 외딴 땅은 더 이상 남쪽으로 나아갈 수 없는 우리 영토의 경계다. 배를 타고 잠시만 이동하면 닿는 거리지만, 발을 딛는 순간 일상과는 완전히 다른 고요함이 펼쳐진다. 짜장면 너머에 숨겨진 천혜의 자연경관을 마주할 수 있는 마라도의 여러 모습을 짚어본다.
화산이 빚고 파도가 깎아 만든 '천연기념물 섬'
마라도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사람이 사는 섬이다. 남북 길이 1.3km, 동서 길이 0.5km의 가늘고 긴 형태로, 섬 전체 면적은 0.3㎢에 불과하다. 이는 축구장 약 40개 정도를 합친 크기로, 걸어서 섬 전체를 둘러보기에 무리가 없는 규모다. 약 20만~25만 년 전 화산 분출로 형성된 이래 오랜 세월 동안 거친 바다바람과 파도를 견디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해 왔다.
섬의 동쪽 해안에는 높이 약 20m에 달하는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웅장한 절벽(해식애)이 발달해 장관을 이루고, 반대편 해안에는 파도가 수만 년에 걸쳐 바위를 깎아내며 만든 신비로운 해식동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지질학적 학술 가치와 뛰어난 경관을 인정받아 2000년에 섬 전체와 주변 해역이 천연기념물 제423호로 지정되어 엄격히 보호받고 있다. 이어 2007년에는 마라해양도립공원으로도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1시간 반이면 충분, 최남단비부터 역사 품은 등대까지
마라도 선착장에 내리면 완만한 풀밭 사이로 산책로가 부드럽게 이어진다. 섬 전체가 낮은 언덕 형태의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다. 느긋하게 섬을 한 바퀴 도는 데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안팎이면 충분하다. 사방으로 펼쳐진 수평선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이 절로 차분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섬 남단에 다다르면 대한민국 영토의 남쪽 끝을 알리는 '최남단 표지석'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는 마라도를 찾는 이들이 가장 오래 머물며 국토의 소중함과 감동을 느끼는 지점이다. 또한, 1915년에 처음 불을 밝힌 이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해역을 지나는 선박들의 안전한 길잡이 역할을 해온 '마라도 등대'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짜장면'으로 유명해진 섬마을의 애환과 환경 지키기
마라도는 천혜의 자연 외에 이색적인 먹거리 문화로도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렀다. 과거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유명 광고 문구로 시작된 대중의 관심은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거치며 정점을 찍었다. 짜장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서울에서 마라도까지 먼 길을 내려와 식당을 찾아 헤매던 출연진의 눈물겨운 여정이 전파를 타면서 전국에 거센 짜장면 바람을 몰고 왔다. 이제는 방문객의 필수 여행 코스가 되어, 선착장 주변 식당가에서 거친 바다에서 건져 올린 톳이나 해산물을 올린 마라도만의 짜장면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유명세 뒤에는 주민들의 고단한 삶도 서려 있다. 농사를 지을 땅이 전혀 없고, 배를 정박할 선착장 시설이 부족해 오랜 세월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과거에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전동 카트가 섬을 가득 메우기도 했으나, 청정 환경 파괴와 안전사고 우려로 인해 2011년부터 운행이 전면 금지되었다. 덕분에 지금은 오직 두 발로 걸으며 최남단의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이 살아있는 섬으로 거듭났다.
슬픈 전설을 품고 해녀들을 지켜주는 '할망당'
선착장에서 내려 왼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섬의 수호신을 모신 '할망당'에 닿는다. 어린아이를 업어 키우는 사람이라는 뜻의 '애기업개당'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거친 바다에서 고된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안녕과 섬사람들의 안전을 보살펴주는 신성한 민속문화 유적이다. 주민들은 마을을 보살펴주는 초자연적인 신령이 이곳에 머문다고 믿으며 지금도 정성껏 제를 올린다.
이 신당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약 150년 전, 모슬포 해녀들이 물질을 하러 마라도에 들어올 때 아기들을 돌봐줄 열네 살짜리 어린 소녀를 함께 데려왔다. 그런데 거센 풍랑이 일어 며칠 동안 섬을 빠져나가지 못하자, 우두머리 해녀의 꿈에 소녀를 섬에 두고 가야 바다가 잠잠해진다는 계시가 나타났다.
결국 해녀들은 바위에 걸린 기저귀를 가져오라며 소녀를 속인 뒤 배를 타고 떠나버렸다. 이듬해 봄에 다시 찾은 섬에는 모슬포 앞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한 소녀가 앉은 모습 그대로 뼈만 남은 채 죽어 있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미안함과 슬픔을 담아 신당을 짓고 매달 음력 초이렛날마다 쌀밥과 과일을 올리며 소원을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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