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25] 베니 하산, 이집트 미술의 금기를 깨다② 베니 하산 벽화가 말하는 삶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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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25] 베니 하산, 이집트 미술의 금기를 깨다② 베니 하산 벽화가 말하는 삶과 예술

문화매거진 2026-05-25 16:19: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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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24] 베니 하산, 이집트 미술의 금기를 깨다① 아마르나 자연주의의 기원을 찾아서에 이어 

[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앞서 살펴보았던 베니 하산의 ‘아메넴하트의 무덤(Tomb of Amenemhat)’를 나와 나일강의 푸른 물줄기를 바라보며 암벽 길을 조금 더 걸어가면, 베니 하산 무덤마을을 품은 또 다른 놀라운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대중에게 흔히 알려진 왕들의 계곡이나 거대한 피라미드의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이곳은 고대 이집트 미술사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인간적인 숨결을 간직한 곳이라 말할 수 있다. ‘아메넴하트’가 다스렸던 이 풍요로운 나일강 중류 지역에는, 그보다 앞서 이 땅을 견고하게 일구었던 또 다른 권력자들이 잠들어 있다. 바로 아버지 바케트 3세(The Tomb of Baquet III, No. 15)와 그의 아들 히티(The Tomb of Khety, No. 17)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긴밀한 혈연관계로 이어진 두 지방관은 자신들이 다스리던 땅의 풍요로움과 군사적 강인함을 무덤이라는 영원의 공간에 자세히 기록하려 노력했다. 이 두 무덤은 구조나 벽화의 주제 면에서 매우 닮아 있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연작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방의 벽면은 수천 년의 세월을 버텨낸 캔버스가 되어,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땀방울과 웃음소리, 극히 평범함이 오늘날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벽화들은 단순히 죽은 이의 권위를 자랑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격렬하게 사랑했던 인간들이 사후 세계에서도 그 아름다운 일상이 지속되기를 바랐던 간절한 소망의 기록이다.

▲ 거대한 몸집의 무덤 주인이 풍성한 제사상 앞에 앉아 있으며, 그 주변으로 소를 몰고 땅을 일구는 농부들의 분주한 일상이 단을 나누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거대한 몸집의 무덤 주인이 풍성한 제사상 앞에 앉아 있으며, 그 주변으로 소를 몰고 땅을 일구는 농부들의 분주한 일상이 단을 나누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무덤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상당한 크기로 표현된 무덤 주인의 모습이다. 고대 이집트 예술가들은 화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크게 그리고, 신분이 낮은 이들을 작게 그리는 독특한 시각적 규칙을 사용했다. 이를 미술사에서는 ‘위계적 비율(Hierarchical Proportion)’이라고 부른다. 거대한 주인 앞에는 대파와 고기, 신선한 과일과 항아리가 탑처럼 높이 쌓여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시선 너머로 펼쳐진 농부들의 모습이다.

논밭에서 소를 몰고 흙을 고르는 농민들의 실루엣은 매우 단순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묘한 생동감이 흐른다. 예술가는 선 몇 개만으로 밭을 가는 이의 구부정한 허리와 소를 재촉하는 손짓을 완벽하게 포착했다. 이는 고대인들이 바라본 풍요의 개념이 단순히 물질의 축적에 그치지 않고, 노동의 신성함이 자연의 순환 속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수천 년 전의 가을날, 나일강의 범람이 끝난 뒤 대지에서 피어오르던 흙방울의 냄새가 벽화의 갈색 물감 사이로 배어 나오는 듯하다.

▲ 어깨에 지게를 지고 물건을 나르는 이들과 공방에서 긴 관으로 불을 불어 부지런히 제품을 만드는 장인들, 그리고 줄지어 이동하는 사막의 가젤들이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어깨에 지게를 지고 물건을 나르는 이들과 공방에서 긴 관으로 불을 불어 부지런히 제품을 만드는 장인들, 그리고 줄지어 이동하는 사막의 가젤들이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이집트 벽화의 매력은 이처럼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발견되는 서민들의 삶에 있다. 화면은 여러 개의 가로선으로 칸이 나뉘어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만화 칸이나 영화의 프레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위쪽 칸에서는 두꺼운 나무 막대를 어깨에 걸치고 무거운 항아리를 나르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다리 근육과 팽팽하게 당겨진 신체선은 노동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바로 아래 칸으로 시선을 내리면 고대 이집트의 첨단 공방이 펼쳐진다. 긴 대를 입에 물고 화덕에 불을 불어넣는 장인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유리 공예나 금속 제련 과정을 연상시킨다. 예술가는 인물들의 손끝 하나, 도구를 쥐는 각도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 예술적 섬세함은 맨 아래 칸에 그려진 야생 동물들에게서 절정을 이룬다. 인간에게 길들여져 줄을 지어 걸어가는 가젤과 사슴들의 가느다란 다리, 우아한 뿔의 곡선은 차가운 암벽 위에 부드러운 생동감을 보여주는 듯하다. 고대의 예술가는 사막의 거친 동물들마저도 하나의 아름다운 미술적 요소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예술가의 시선은 공방 구석구석을 마치 다큐멘터리 카메라처럼 훑고 지나간다. 여기에는 지배자의 거창한 연대기 대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채워나갔던 장인들의 숨은 노고가 깃들어 있다. 흙을 빚고, 불을 피우고, 짐을 나르던 그 당연한 일상의 풍경들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어쩌면 무덤 주인은 사후 세계를 화려한 금빛으로 채우기보다 자신이 지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이 활기찬 삶의 소음들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던 것일까?

▲ 강가에서 포획한 오리와 거위들이 일렬로 줄을 지어 우아하게 걸어가고 있으며, 그 곁에는 조류를 관리하는 인물의 흔적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강가에서 포획한 오리와 거위들이 일렬로 줄을 지어 우아하게 걸어가고 있으며, 그 곁에는 조류를 관리하는 인물의 흔적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나일강은 이집트인들에게 모든 생명의 근원이었다. 지금은 벽화가 많이 훼손되어 있어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강가에 무성하게 자라난 파피루스 숲 사이로는 수많은 새가 날아들었던 장면을 묘사한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을 중요한 식량 자원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일렬로 꼿꼿하게 서서 걸어가는 거위들의 행렬을 보면 고대 예술가의 관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새들의 깃털 무늬는 붓끝으로 정성스럽게 점을 찍어 표현했고, 통통한 몸매와 짧은 다리 비율은 실제 새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맨 왼쪽에서 어부가 덫으로 거위를 잡는 모습은 조금은 느껴질 수 있는 화면에 극적인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예술가는 왜 이토록 평범한 새들의 걸음걸이를 공들여 그렸을까? 그것은 무덤 주인이 사후 세계에서도 나일강의 풍요로운 자연을 그대로 누리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었을 것이다. 동시에 동물의 형태미를 가장 순수한 선과 색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미술가로서의 순수한 열정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가진 두 명의 전사들이 한 쌍을 이루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로 몸을 웅크리고 힘을 겨루는 역동적인 레슬링 장면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가진 두 명의 전사들이 한 쌍을 이루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로 몸을 웅크리고 힘을 겨루는 역동적인 레슬링 장면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베니 하산 무덤 벽화의 진정한 정수는 바로 전사들의 군사 훈련을 묘사한 레슬링 장면에 있다. 바케트 3세와 히티의 무덤 벽면을 가득 채운 수백 쌍의 레슬러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스포츠 기록화다. 예술가는 관람객이 복잡하게 얽힌 두 사람의 신체를 혼동하지 않도록 매우 영리한 시각적 장치를 도입했다. 한 사람은 짙은 갈색으로, 다른 한 사람은 조금 더 밝은 붉은 갈색으로 칠한 것이다. 이 색채 대비 덕분에 우리는 어떤 팔이 상대의 목을 감싸고 있는지, 어떤 다리가 상대의 오금을 걸고 있는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자세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상대를 넘어뜨리기 위해 중심을 낮춘 모습, 깃을 잡기 위해 팔을 뻗는 순간의 긴장감이 화면 밖으로 터져 나온다. 화려한 장식이나 배경을 모두 배제한 채 오직 인간의 몸이 만들어내는 곡선과 직선의 조합만으로 이토록 강렬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대 이집트 미술이 도달했던 높은 수준을 증명한다.

▲ 대련이 깊어지면서 바닥에 완전히 쓰러진 상대를 누르거나 메치기를 시도하는 그라운드 기술의 연속적인 동작들이 벽면 가득 긴박하게 펼쳐진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대련이 깊어지면서 바닥에 완전히 쓰러진 상대를 누르거나 메치기를 시도하는 그라운드 기술의 연속적인 동작들이 벽면 가득 긴박하게 펼쳐진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레슬링 장면을 계속해서 따라가다 보면 기술은 점점 더 격렬해진다. 이제 전사들은 단순히 서서 힘을 겨루는 데 그치지 않고, 바닥에 구르며 치열한 그라운드 공방을 벌인다. 상대의 등 뒤로 올라타 목을 압박하거나 몸을 뒤집어 탈출하려는 순간들이 연속 동작으로 그려져 있다. 이는 흡사 현대의 애니메이션 필름을 한 장 한 장 펼쳐놓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역사학자들은 이 벽화들이 단순한 오락이나 예술적 표현을 넘어, 당시 지방관들이 국경을 지키기 위해 군사들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훈련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눈에는 이 역시 하나의 거대한 신체 무용 예술로 보인다.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벽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색이 바랬지만, 거친 암벽을 뚫고 나오는 전사들의 거친 숨소리와 바닥을 구르는 신체의 마찰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고대의 미술가는 인간 몸의 한계와 가능성을 이 벽면 위에 영원히 고착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 활을 팽팽하게 당겨 사막의 야생 동물을 겨냥하는 사냥꾼의 모습과 화살을 피해 도망치는 가젤, 소 등의 무리가 사막의 풀 한 포기와 함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활을 팽팽하게 당겨 사막의 야생 동물을 겨냥하는 사냥꾼의 모습과 화살을 피해 도망치는 가젤, 소 등의 무리가 사막의 풀 한 포기와 함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무덤 벽화의 화면은 이제 평화로운 강가와 치열한 훈련장을 지나 거친 사막으로 향한다. 사막은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위험천만한 공간인 동시에, 자신의 용맹함을 증명할 수 있는 거대한 사냥터였다. 벽화 속 사냥꾼은 온 힘을 다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곧게 뻗은 팔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는 두 다리는 사냥의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그 화살 끝이 향하는 곳에는 사막의 동물들이 한데 엉켜 도망치고 있다. 반점이 있는 갈색 소와 날렵한 몸매의 야생 동물들이 떼를 지어 달리는 모습은 대단히 사실적이다. 발아래 자라난 작은 사막 식물 한 포기는 이 거친 공간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유일한 단서다. 예술가는 동물의 종류마다 서로 다른 뿔의 형태와 가죽의 질감을 세심하게 구별하여 그렸다. 이는 도감에 가까울 정도로 정확하면서도, 달리는 동물들의 다리 각도를 다르게 하여 화면 전체에 거대한 속도감을 부여하는 미술적 재치를 보여준다.

▲ 여러 일꾼이 길쭉한 아마 천을 양쪽에서 팽팽하게 당기며 작업하는 모습과 그 아래 칸에서 차분하게 앉아 방직 작업에 몰두하는 여인들의 일상이 대비를 이룬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여러 일꾼이 길쭉한 아마 천을 양쪽에서 팽팽하게 당기며 작업하는 모습과 그 아래 칸에서 차분하게 앉아 방직 작업에 몰두하는 여인들의 일상이 대비를 이룬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사냥의 역동성 아래로는 다시 인간들의 차분한 일상 제조업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섬유를 만드는 과정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린넨(Linen)은 의복뿐만 아니라 미라를 감싸는 등 삶과 죽음 전반에 쓰인 가장 중요한 직물이었다. 일꾼들은 길게 늘어진 천의 양끝을 잡고 몸을 뒤로 젖히며 힘을 주고 있다. 그들의 팽팽한 다리 모양은 직물을 팽팽하게 늘리기 위한 노동의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그 아래 칸에는 대조적으로 정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단정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거나 무릎을 꿇은 여성들이 도구를 이용해 실을 뽑고 직물을 짜고 있다. 어두운 피부의 남성 노동자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밝고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된 여인들의 모습은 벽화에 따뜻한 생활감을 더한다. 거친 사냥과 군사 훈련 속에서도 이처럼 묵묵히 돌아가던 일상의 바퀴가 있었기에, ‘베니하산’이라는 거대한 공동체는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어지는 마지막 화면은 이 모든 노동과 생산을 총괄하는 행정적인 풍경으로 마무리된다. 고대 이집트의 사회는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었다. 벽화 속 인물들은 한 손을 앞으로 뻗거나 위로 들어 올려 무덤 주인에게 현재의 작업 상황을 보고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들 앞에는 사막에서 잡아 온 동물들과 장인들이 만든 물품들이 차례로 기록된다. 오른쪽 아래편에는 뿔이 거대하게 자란 소와 양들이 목동의 손에 이끌려 걸어가고 있다. 가축들의 몸을 겹치게 그려 넣어 좁은 공간 안에서도 무리의 풍성함을 표현하려 한 예술가의 공간 구성 능력이 돋보인다. 이 마지막 칸은 무덤 주인이 가졌던 막강한 행정력과 영지의 풍요로움을 최종적으로 증명하는 성격을 띤다.

베니 하산의 바케트 3세와 히티의 무덤 벽화를 모두 둘러보고 나면, 수천 년이라는 시간의 벽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곳의 미술은 왕들의 거대하고 경직된 신전 미술과는 결을 달리한다. 거기에는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땀방울이 있고, 가축들의 울음소리가 있으며, 전사들의 뜨거운 숨결이 그대로 박제되어 있다.

이집트인들에게 무덤은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찬란했던 삶의 순간들을 영원히 붙잡아두는 기억의 방이었다. 그들이 남긴 선과 색은 비록 화려한 수식어나 현대의 복잡한 기법은 없을지라도,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찰만으로도 얼마나 위대한 예술이 탄생할 수 있는지를 묵묵히 보여준다. 이 거친 암벽 위에 새겨진 찬란한 삶의 파편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과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수천 년 전의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일하고, 사랑하고, 즐기며 살아갔던 매력적인 인간들이었다는 사실을 이집트인들은 미술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우리에게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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