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재정 관리 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과도한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본인부담상한제 기준을 최신 보험료 부과 현황에 맞춰 조정하는 한편, 직장가입자 자격 허위 취득과 요양급여비 부당청구에 대한 관리도 강화하는 흐름이다. 고령화와 의료비 증가로 건보 재정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지원이 필요한 가입자에게는 환급 기준을 정교화하고 재정 누수 요인은 줄이겠다는 취지다.
2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본인부담상한액 기준보험료의 산정기준 등에 관한 고시 일부개정 고시안’을 최근 행정예고했다. 본인부담상한제는 환자가 1년 동안 부담한 건강보험 적용 의료비가 개인별 소득 수준에 따른 상한액을 넘으면 초과분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거나 환자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중증질환 등으로 의료비가 급증했을 때 가계 부담을 줄이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이번 개정은 2025년도 직장·지역가입자의 보험료가 확정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정부는 소득 분위별 건보료 경계선과 산정 상수를 조정해 본인부담상한액의 기준이 되는 소득 구간을 새롭게 정했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 최하위 1분위는 월 보험료 1만3850원 이하, 최상위 10분위는 월 21만7540원 초과로 나뉜다. 직장가입자는 1분위가 월 5만7790원 이하, 10분위는 월 28만2570원 초과로 책정됐다.
가입자로서는 자신이 속한 소득 구간에 따라 환급 규모나 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 건보료 기준 조정으로 병원비 상한선이 높아지는 구간에 들어가면 예전보다 더 많은 의료비를 부담한 뒤에야 환급받을 수 있다. 반대로 소득 구간이 낮아지는 경우에는 상한선이 낮아져 환급 혜택을 더 빨리 받을 수 있다. 다만 환급 절차는 공단 시스템을 통해 자동 처리돼 가입자가 별도 신청이나 서류 제출을 할 필요는 없다.
정부가 환급 기준을 손보는 동시에 건보료 부과와 급여 지출 과정의 누수 차단에도 나선 배경에는 재정 형평성 논란이 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적발된 직장가입 자격 허위 취득자는 9202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에게 부과된 소급 지역보험료는 666억원에 달했다. 가족이나 지인 회사에 이름만 올려두고 직장가입자 자격을 얻어 지역보험료 부담을 피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의미다.
직장가입자는 주택 등 재산이 많더라도 근로소득을 중심으로 보험료가 부과되고 회사가 절반을 부담한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소득과 재산을 합산해 산정한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낸다. 소득이 줄었더라도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보험료 부담이 커지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지역가입자들이 직장가입자로 편입하려는 유인이 생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지역가입자 재산보험료 등급제는 형평성 논란의 핵심으로 꼽힌다. 재산과표가 낮은 가입자의 재산 1만원당 보험료 부과 단가가 고자산가보다 높아지는 역진 구조가 남아 있어서다. 지역가입자 소득보험료는 2022년 소득에 비례하는 정률제로 개편됐지만, 재산보험료는 등급제가 유지되고 있다. 국회에는 지역가입자 재산보험료를 정률제로 바꾸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으나 아직 계류 중이다.
급여 지출 단계의 부당청구 관리도 강화되고 있다. 건보공단은 ‘2026년도 제1차 건강보험 신고 포상심의위원회’를 열고 요양급여비 거짓·부당 청구 등을 신고한 16명에게 총 59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번 심의 대상에는 요양기관 11곳, 준요양기관 1곳, 건강보험증 도용 4건이 포함됐다. 적발 금액은 3억5000만원이다.
최고 포상금은 1100만원이었다. 65세 이상 임플란트 시술 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보철물 대신 비급여 보철물을 사용하고도 요양급여비를 부당 청구한 사례다. 건강보험 신고 포상금 제도는 거짓·부당 청구를 줄이고 건보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2005년 도입됐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신고 활성화를 위해 포상금 최고 금액이 30억원으로 높아졌다.
건보공단은 부당 청구 요양기관을 공단 누리집이나 건강보험25시 앱, 지사 방문, 우편 등을 통해 신고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신고인 신분은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라 보호된다. 김남훈 건보공단 급여상임이사는 “점차 교묘해지는 거짓·부당 청구와 사무장병원 문제를 근절하려면 양심 있는 종사자들과 국민의 지속적 관심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료비 부담이 큰 환자에게는 환급 제도를 통해 보호 장치를 유지하되, 보험료를 회피하거나 급여비를 부당하게 청구하는 행위는 줄여 재정 지속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고령화로 건강보험 지출 압박이 커지는 만큼, 본인부담상한제와 보험료 부과체계, 부당청구 관리가 함께 정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Copyright ⓒ 이뉴스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