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폐기를 놓고 원칙적 합의에 근접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중동 정세가 중대 분수령을 맞고 있다. 다만 핵심 쟁점인 우라늄 농축 중단과 미사일 문제는 최종 합의에서 빠질 가능성이 커 향후 협상이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뉴욕타임스(NYT), CNN, 악시오스 등 미국 주요 언론에 따르면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24일(현지시각)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고농축 우라늄 폐기 문제에 대해 큰 틀의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다만 공식 문서 서명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최종 합의까지는 며칠 더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논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란 최고지도자 측 승인 절차를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측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협상 방향에 원칙적으로 동의한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실제 서명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내용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 약 20%가 지나는 전략 요충지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이라크 등 중동 산유국 원유 수출 대부분이 이곳을 통과한다. 해협 폭이 가장 좁은 곳은 약 33㎞ 수준에 불과해 군사 충돌이 발생할 경우 국제 유가와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직접 충격을 받는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와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등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세계 경제 최대 지정학적 리스크 가운데 하나로 분류해 왔다. 과거 이란 혁명수비대가 유조선을 나포하거나 미군과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이번 협상 역시 핵 문제 자체보다 우선 해상 충돌 위험을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인도 방문 중 가진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은 즉시 재개방돼야 한다”며 “핵 문제는 72시간 만에 종이에 적어 끝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우선 중동 에너지 시장 안정을 확보한 뒤 핵 협상을 장기적으로 이어가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실제 미국과 이란은 종전 양해각서(MOU) 형태로 우선 휴전 연장과 해협 개방, 제한적 제재 완화 등을 먼저 합의한 뒤 향후 수십 일 동안 핵 문제 세부 협상을 이어가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핵 협상의 핵심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이란이 이미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 처리 방식이 최대 변수로 꼽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이란은 무기급에 근접한 수준인 60% 농축 우라늄을 상당량 비축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상 핵무기 제조에는 90% 수준 농축이 필요하지만, 전문가들은 60% 단계에 도달하면 추가 농축 시간은 크게 단축된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을 미국 또는 국제사회가 직접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는 우라늄 폐기 원칙만 담고 실제 폐기 방식과 검증 절차는 추후 논의로 넘길 가능성이 거론된다.
NYT는 미국이 이번 협상에서 이란 핵 능력을 즉각 제거하지 않는 잠정 합의도 수용할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전보다 현실적 접근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란 역시 즉각적인 핵 포기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란은 핵 프로그램이 군사용이 아닌 민간 에너지 개발 목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동시에 미국 제재 해제와 해외 동결 자산 해제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이 실제로 합의를 이행할 경우에만 일부 제재 완화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미국 측은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핵합의 이행 여부를 제재 완화의 전제 조건으로 보고 있다.
이번 협상은 중동 지역 국가들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려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걸프 국가들은 전면전 위험이 줄어드는 것을 반기면서도 이란 핵 능력이 유지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그동안 이란 핵시설에 대한 강경 대응 필요성을 거듭 주장해 왔다. 미국 공화당 내 대이란 강경파 역시 “불완전한 합의”라며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서 “협상은 건설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시간은 미국 편”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미국 대표단에 합의를 서두르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공개했다. 공화당 강경파와 이스라엘 측 우려를 의식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루비오 장관은 협상이 실패할 경우 군사 옵션이 다시 검토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협상은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선택지들을 다시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이란 모두 이번 합의를 최종 결론이라기보다 추가 협상을 위한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 문제와 핵 협상이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국제사회 긴장도는 크게 낮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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