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자동차 생산 현장에 대규모 투입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제조업 지형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단순히 사람 모양 로봇 몇 대를 공장에 들여놓는 수준이 아니라, 자동차 회사가 직접 ‘로봇을 만드는 공장’을 구축하고 수만 대 규모 양산 체제까지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미국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 보스턴다이내믹스 홈페이지
특히 이 프로젝트의 핵심인 아틀라스는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미국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보스턴다이내믹스 경영권을 확보한 뒤 로봇 기술과 자동차 생산 체계를 결합하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업계에서는 자동차 제조기업이 세계 최고 수준 휴머노이드 개발사를 직접 보유한 사례 자체가 드물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SDF) 추진 담당’과 ‘로보틱스부품구매실’ 조직을 신설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실제 생산라인에 투입하기 위한 사전 작업 성격이 강하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연간 3만 대 규모의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이 가운데 2만5000대 이상을 현대차·기아 공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자동차 생산 공정에 사람 대신 사람 형태 로봇이 대규모로 들어가는 셈이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미국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 보스턴다이내믹스 홈페이지
업계는 이 수치를 단순한 시범 운영 수준으로 보지 않는다. 현재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은 대부분 수십 대 단위 시험 운영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미국 테슬라가 ‘옵티머스’를 개발 중이고, 중국 기업들도 양산 경쟁에 뛰어들고 있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 수만 대 규모 투입 계획을 공개한 사례는 많지 않다.
현대차그룹이 확보한 가장 큰 강점으로는 ‘초기 수요’가 꼽힌다. 일반 로봇 기업은 제품을 개발해도 실제 구매처 확보가 가장 큰 문제인데, 현대차그룹은 계열사 공장 자체가 거대한 고객 역할을 한다. 자동차 생산라인이라는 검증된 산업 현장을 로봇 실험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 메타플랜트(HMGMA)를 중심으로 아틀라스 실증을 시작할 예정이다. 초기에는 부품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서열 작업을 맡고, 이후 부품 조립과 물류 이동 등으로 역할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울산 전기차 공장과 인도 푸네 공장 등 신규 생산거점에도 적용이 검토되고 있다.
이번 전략의 핵심은 단순 로봇 제조가 아니라 ‘자동차 산업 방식의 로봇 양산’이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부품 공급망과 대량생산 경험을 그대로 로봇 산업에 이식하려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로봇 관절 역할을 하는 액추에이터 생산을 맡고, 현대글로비스는 로봇 물류 체계를 담당한다. 현대오토에버는 소프트웨어와 시스템 통합 역할을 맡는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미국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 보스턴다이내믹스 홈페이지
특히 액추에이터는 휴머노이드 원가에서 가장 비중이 큰 핵심 부품이다. 업계에서는 전체 제조비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본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에서 연간 수십만 개 규모 액추에이터 생산 체계도 구축할 예정이다. 자동차 산업에서 엔진과 변속기를 직접 생산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던 방식이 로봇 산업에도 적용되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이 별도 조직까지 신설한 배경에는 로봇 산업 특유의 복잡한 공급망 문제도 있다. 휴머노이드는 자동차보다 훨씬 많은 센서와 구동장치,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동시에 필요하다. 특히 사람이 걷고 균형을 잡는 수준의 동작을 구현하려면 실시간 제어 기술과 데이터 처리 능력이 필수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공장 자체를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통합하는 SDF 체계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SDF는 생산·품질·물류 데이터를 AI가 실시간 분석해 공장을 통합 제어하는 개념이다. 로봇은 단순 반복 동작만 수행하는 기존 산업용 로봇과 달리 주변 환경 변화까지 스스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데이터 축적과 학습이 핵심으로 꼽힌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미국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 보스턴다이내믹스 홈페이지
최근 공개된 아틀라스 영상도 업계 관심을 끌었다. 아틀라스는 약 23㎏ 무게 냉장고를 양손으로 들어 옮기고, 상체를 회전해 원하는 위치에 내려놓는 동작을 수행했다. 기존 산업용 로봇은 정해진 위치와 각도 안에서 반복 작업에 특화돼 있었지만, 휴머노이드는 사람처럼 균형을 유지하며 비정형 작업까지 수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휴머노이드 경쟁은 급격히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 엔비디아는 로봇용 AI 플랫폼을 공개했고,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제조사들도 공장 내 휴머노이드 시험 운영에 들어갔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휴머노이드를 차세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해 육성 중이다.
시장조사업체들은 휴머노이드 시장이 향후 수십 년 동안 자동차 산업에 맞먹는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인력 부족과 고령화 문제가 심화하면서 단순 자동화를 넘어 인간형 로봇 수요가 빠르게 늘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미국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 보스턴다이내믹스 홈페이지
현대차그룹이 이번에 별도로 글로벌 통상 전략 조직까지 만든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과 유럽이 자국 제조업 중심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로봇과 AI 산업 역시 관세·보조금 경쟁 영향을 직접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미국 관세 영향으로 수조 원대 비용 부담을 떠안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아틀라스 프로젝트는 단순 신사업 확대 차원을 넘어 자동차 제조기업이 AI 기반 로봇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실험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간형 로봇이 자동차 공장에서 실제 노동을 수행하는 시대가 양산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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